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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등 느린학습자 대상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최유현 강사
초중등 느린학습자 대상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최유현 강사 ⓒ 느린IN뉴스

금요일 저녁,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찬 구로구의 한 복지관. 기자가 찾은 프로그램실에서는 초등학교, 중학생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6월부터 서울 구로구 구로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초중등 느린학습자 학생을 대상으로 맞춤형 성교육을 진행했다. 성교육 전문기관 푸른아우성과 연계한 이번 교육은 '나이스 가이 되기!'라는 제목으로 10회기에 걸쳐 이뤄졌다. 당초 여학생, 남학생으로 나눠 동성수업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수요가 많았던 남학생만을 대상으로 초등학생 5명, 중학생 6명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됐다.

*느린학습자란 평균지능과 지적장애 사이 지능을 가진 이들로, 경계선지능인이라고도 불린다. 정확한 현황은 파악된 바가 없으나 지능지수 정규분포에 따라 전체 인구의 13.59%, 약 7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느린학습자는 학업, 정서, 대인관계, 취업 등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법적, 제도적 지원이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난 25일은 5개월 간 진행된 성교육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지난 회기 동안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목격자 교육'이 열렸다. '만약 내가 ~한 상황이라면?'이라고 가정해보고 상황에 맞는 대처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날에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찾아볼 수 있게 부모와 아이가 함께 교육을 듣도록 구성됐다.

 '만약 내가 ~한 상황이라면?'이라고 가정해 본 상황에 맞게 아이들이 적은 답변 내용
'만약 내가 ~한 상황이라면?'이라고 가정해 본 상황에 맞게 아이들이 적은 답변 내용 ⓒ 느린IN뉴스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는데 여자친구가 자꾸 내 몸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상황을 가정해보고, 아이들은 배운 내용을 토대로 저마다 답변을 준비한다.

"싫어. 그러면 너랑 안 사귈래!"
"고민되는데… 내 카메라가 안 된다고 할래요."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단호한 거절의 말이 이어진다. "엄마들이 좀 더 꼬드겨 볼까요?"라는 강사의 말에 상황극이 시작됐다.

"내가 라면 사줄게~ 보내주면 안 돼?"라는 엄마의 꼬드김에도 아이들은 "싫어!"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느린IN뉴스

요즘 문제가 되는 딥페이크에 관한 이야기도 다뤘다.

'친구가 재미있는 사진이라고 보내줬는데 아는 친구 얼굴에 BTS 지민을 합성한 사진이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나쁜 것도 아니고 잘생긴 아이돌 사진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강사의 물음에 아이들은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나는 중립!"이라고 외치기도 하고, "합성하면 범죄야!"라고 똑 부러지게 답하는 아이들도 있다. "친구에게 안 된다고 말하고 안 지키면 똑같이 보낼 거예요"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정해진 답이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수업을 통해 바람직한 대처 방법을 하나 둘 배워나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사자의 의견이다.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받거나, 가지고 있거나, 보내거나 모두 처벌받습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배운 내용들을 함께 확인하고 선언문에 지장을 찍었다.
아이들은 그동안 배운 내용들을 함께 확인하고 선언문에 지장을 찍었다. ⓒ 느린IN뉴스

마무리에는 마지막 수업이니만큼 그간에 배운 내용들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배운 내용을 소리 내 읽으며 선언문에 지장을 찍었다. 지장을 찍기 전에는, 계약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는 점도 배웠다.

해당 성교육은 보통 길어야 2차시 정도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느린학습자들의 특성에 맞춰 10차시로 늘려 구성됐다. 최유현 강사는 "일반 교과 과정과 마찬가지로 배우는 속도가 느린 거지 시기는 같다"며 아이들이 성에 대해 인식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같은 내용이라도 '권리를 침해하는 거야'라는 표현을 '다른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거야'라고 바꿔 표현하는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전달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클레이로 만든 자신의 성기 모습. 여자의 몸을 배우는 시간에는 직접 자궁을 만들어 보고 생리혈도 흘려보며 수업 내용을 익혔다.
아이들이 클레이로 만든 자신의 성기 모습. 여자의 몸을 배우는 시간에는 직접 자궁을 만들어 보고 생리혈도 흘려보며 수업 내용을 익혔다. ⓒ 느린IN뉴스

단순 지식 전달에서 나아가 직접 느끼며 체화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1차시부터 5차시까지 수업에는 몸에 관련된 이야기를 배웠다. 성에 대한 개념,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 성관계는 어떻게 이뤄지는 건지를 배운 것이다. 이때 클레이로 직접 성기를 만들거나 임산부 체험복을 입어보는 활동 프로그램이 함께 이뤄졌다.

김판길 강사는 "그냥 그림을 보고 하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만든 걸 보면서 했을 때 체화되면서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 활동 프로그램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최유현 강사는 "지식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쪼개 규칙을 넣고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과정을 구성했다"며 "수업 내용을 체험하고 발표해 본 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지키는지를 함께 묶어 교육했다"고 전했다.

1회기에 2시간씩 진행되는 수업 중 30분은 부모들이 배우는 시간이다. 1시간 30분 동안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그날 배운 내용을 부모들도 함께 익힌다. 수업은 하루면 끝나지만 가정에서 지속해서 일관성 있게 지도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업 내용을 가정에서 함께 연계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12살 느린학습자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가정에서 교육하기 어려운 부분을 수업에서 배우고 나니 가정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아이가 동생한테도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해준다"며 "내용을 줄줄 읊진 못하지만 배운 내용들이 실생활에서 나오더라"고 이야기했다.

느린학습자는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도치 않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시기에 맞는 적절한 성교육이 꼭 필요하다. 최유현 강사는 "부모님들이 '이건 안 돼', '저것도 안 돼'라는 단도리하는 방식으로 자녀를 지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성애적인 존재로 보고 무조건 금지만 하는 것은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우려했다.

안 된다는 걸 많이 들어서 외우고는 있지만 막상 상황에 부딪히면 적응 능력이 없어 엉뚱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안전한 장소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대처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사자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성교육은 2024년 구로구청 느린학습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느린학습자에 대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는 구로종합사회복지관 위주환 사회복지사는 학부모들의 꾸준한 요청이 있어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5개월 동안 성교육 수업을 맡아 진행한 푸른아우성 김판길, 최유현 강사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최 강사는 "단발성으로 끝나는 프로그램들이 느린학습자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며 "이번 프로그램이 연계되면서 처음에 만났을 때와 그다음 만났을 때 아이들이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느린IN뉴스에도 실립니다.(https://www.slowlearner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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