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을 따라 무안과 함평을 지나 영광에 도착해서 놀란 것이 세 가지다. 첫 번째 놀란 것은 관광안내도에 백수해안도로가 영광 1경이고, 며칠 전 머물렀던 염산면의 기독교 순교 체험관이 영광 2경이다. 아내에게 거기가 영광 2경이네? 했더니, 2경이 여러 곳이라고 한다. 다시 관광안내도를 보니 '영광 2경'이라고 돼 있는 게 네 곳이라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영광은 '깨달음의 빛'이라는 뜻인데, 이름에 걸맞게 우리나라 4대 종교 유적지가 있다. 마라난타 존자의 발자취를 따라 백제불교가 최초로 들어온 곳이다.
믿음을 위해 순교한 영광 순교자 기념성당, 염산교회와 야월교회가 있다. 민족종교인 원불교가 피어난 영산성지가 있다.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의 상징적인 곳을 공평하게 영광 2경으로 붙였다.
도올 김용옥은 동학혁명이 실패하고 나서 원불교와 증산도의 두 가지 종교적 운동이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이중 원불교 영산성지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던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탄생지다. 원불교는 수행과 생활에서 도덕 훈련을 실천하는 종교로 정신개벽을 강조한다. 그러고 보니 두 종교 모두 동학이 못 이룬 개벽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는 통상적으로 활기를 잃어가는 다른 지역과 달리 활기가 넘친다. 높은 건물이 많은데도,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으며, 젊은이가 많이 보인다. 이유가 궁금해서 주민 몇 사람에게 "원자력 발전소가 경제적 활력 요소냐"라고 물어보니, 광주나 발전소 부근 홍농읍에서 돈을 쓰고, 영광읍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확신을 못하던 차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보궐 선거운동을 하는 젊은 진보당 여성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발전소에서 지역 발전 기금으로 매년 300억 원을 지원하고, 영광 예산이 8천8백억이라고 설명한다. "군수는 짭짤하겠네요?"라고 농담을 했더니, "그러니 보궐선거를 하겠지요" 한다. 이로써 두 번째 의문은 풀렸다.
세 번째는 주민에게 물어서 찾아간 맛집이 버스정류장 부근 송죽회관이다. 큰 상이 반찬을 가득 채우며, 생선이 두 가지나 나오는 굴비 정식이 겨우 만원이다.
앞 지역에서는 낙지를 먹고 공깃밥을 시켰더니, 2만 원짜리 낙지비빔밥을 주문하라고 해서 밥은 안 먹고 나왔었다. 송죽 주인에게 수지가 맞냐고 물었더니, 재미로 하고, 직접 키운 채소라서 단가를 맞출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 왔을 때 일부러 두 번이나 찾아갔다.
어느 곳에 가든지 오래된 큰 마을에는 향교가 있다. 영광향교를 찾아가는데, 도동리와 교촌리 경계 부근 당산 거리의 당산나무 밑에 돌 장승이 한 쌍 보인다. 전라도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하는데, 여기는 '벅쇠'라고 부르고 있다.
순조 32년(1832)에 세웠는데, 왕방울 눈과 주먹만 한 코, 넓적한 네모꼴 입에는 위아래로 이빨을 그려 해학적이다.
동쪽 벅쇠는 동그란 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으며, '동방대장' 중 '대장' 글자는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서방대장'은 머리 위가 세모꼴로 위가 좁고 아래는 사다리꼴 모양이며, 서방대장 글씨가 다 보인다. 동방과 서방을 바라봐야 하니, 두 벅쇠가 등을 지고 있는 특이한 형태다.
영광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가마미해수욕장은 영광 5경이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최초로 해수욕장을 경험했고, 두 번 왔던 곳이라서다. 어릴 때 봐서인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해수욕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억과 다르게 커서 가보니 조그마하며 아기자기하고, 많은 소나무와 경사가 완만한 해변은 기억 그대로다.
많은 관광지가 현대식 숙박시설로 상전벽해가 되었는데, 여기는 발전소 옆이라서 그런지, 고급 호텔과 모텔은 보이지 않고 모두 민박 시설이다. 성수기가 지난 9월이라 문을 연 식당이 없지만, 옛 추억을 되살려 하룻밤을 잔다. 다음 날 버스를 타는데, 도회지 버스처럼 그냥 정류장을 지나쳐버리거나, 기사가 어르신께 큰소리를 치기도 하는 대중교통 모습이 보여 영광에서 옥에 티다.
영광 9경은 천연염전인데, 염전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주변에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돌고 있다. 태양광발전소도 많이 있는데, 해(태양)를 소금 만드는 것에서 전기 만드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많은 풍력 발전기가 실제로 돌아가고 있는 곳은 처음 본다. 영광 9경을 '염전과 풍력 발전기'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관광지로 새롭게 떠오르는 물무산 황톳길에 가서, 처음으로 긴 시간 황톳길을 걷는다. 현지 돕는 이가 "영광 사람을 위해 만들었는데, 전국에 소문이 나서 '맥없이' 사람이 많이 와요. 길과 화장실이 불편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맥없이 보다는 '무담시'가 더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어쨌거나 관광버스가 찾아오는 이 황톳길은 성공한 지역 사업이다.
굴비와 불교 도래지로 유명한 법성포는 지면상 생략한다. 올 5월과 9월, 두 번에 걸쳤던 영광 여행을 매간당 고택까지 보고 마무리한다. 아쉽게도 보지 못한 도동리 무지개다리(홍교)는 다음 기회로 넘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영암일보에도 실립니다.영광에는 매간택 고택, 굴비 본산 법성포, 순조 때 세워진 돌 벅쇠(장승) 등 유전과 문화유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