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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학습자란 평균지능과 지적장애 사이 지능을 가진 이들로, 경계선지능인이라고도 불린다. 정확한 현황은 파악된 바가 없으나 지능지수 정규분포에 따라 전체 인구의 13.59%, 약 7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느린학습자는 학업, 정서, 대인관계, 취업 등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법적, 제도적 지원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어느 날 느린학습자 시민회 카페에서 기자의 눈길을 끄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느린학습자 청년 당사자 활동가 계신가요?' 본인을 청년 활동가라고 밝힌 작성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쪽지를 보냈다. 그러자 지금은 대전에 있지만 곧 서울로 이사를 가니 이달 말에 만나자는 답이 돌아왔다.

대망의 인터뷰 날. 만나기로 한 카페의 문을 열고 모자를 쓴 한 청년이 들어왔다. 인터뷰 하는 내내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지만 눈에서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느린학습자 청년 당사자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25살 청년 수관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난 29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난 느린학습자 청년 당사자 수관씨.
지난 29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난 느린학습자 청년 당사자 수관씨. ⓒ 느린IN뉴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느린학습자 활동가 수관이라고 합니다. 수관은 활동명이고, 이름은 장영걸이에요."

- 본인이 느린학습자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됐나요?

"2021년에 군대 병역판정검사를 받았어요. 우울증으로 공익 판정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때 한 웩슬러 지능검사에서 지능지수가 72로 나왔어요. 그때 소견서에 BIF(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경계선 지적 기능)라는 약자가 쓰여 있긴 했는데 별다른 말씀은 없었어요. 지능이 평균보다 너무 낮길래 의사분께 여쭤보니까 그제서야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상처받지 않도록 약간 돌려서 말해주셨죠. '결과가 절대적인 건 아니고 언제든 바뀌어 나올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셨어요."

- 느린학습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지적장애는 알았지만 경계선지능에 대해서는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해도 한 만큼 성적이 잘 안 나왔던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안심이 되긴 했어요. 그렇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다 보니 현실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보통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느린학습자 활동가가 되기로 한 계기가 있을까요?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부터 3, 4년 정도 은둔을 했어요. 그러다 은둔고립 청년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됐고 그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두 분야에 공통 분모가 많더라고요. 은둔고립하시는 분 중에 경계선지능인 분들도 꽤 있고요.

저는 가정환경이나 우울증 때문에 지능지수가 더 낮게 나온 것 같아요. 이런 경우 환경을 바꿔주면 좋아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관계를 통한 치유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느린학습자 안에서도 그런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 은둔생활에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집에서 나올 결심을 하게 됐나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서 나갈 수밖에 없었거든요. 회피하고, 또 회피하다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서 나온 거지 결심을 했다고 보진 않아요. 프로그램을 찾아봤는데 대전에는 그런 프로그램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은둔고립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에 살면서 서울로 왔다갔다했죠. 그러다 보니 비용도 많이 들고 지치더라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독립도 시도해 볼 겸 서울로 가자 싶어서 이사도 하게 됐어요.

- 당사자 청년들이 나서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실 느린학습자 부모님들은 활동을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말을 잘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너는 경계선 지능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일지 대해서 과연 부모님들이 아실까요?

그런 아픔을 설명하기 위해서 당사자들이 나설 수밖에 없어요. 우리 당사자들만이 말할 수 있는 게 있고, 가족이니까 말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각각 다른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당사자 활동가분들이 거의 없으니까 제가 나서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거죠.'

 수관씨가 운영하는 인스타툰 계정(@sukwan_isfp)
수관씨가 운영하는 인스타툰 계정(@sukwan_isfp) ⓒ 느린IN뉴스

- 동료들이 모이면 하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활동가 양성을 하고 싶어요. 은둔고수(은둔, 고립 상태에 있는 청년들을 위한 기업 '안 무서운 회사'는 '은둔고수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과정을 통해 은둔이 스펙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한다. 교육을 수료한 청년들은 당사자 활동가가 돼 또 다른 은둔고립 청년들과 부모를 돕는다) 같은 거죠. 당사자 출신 활동가를 양성하면서 저희 나름대로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저도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인스타툰을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최근에 올린 편에는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요. 성장하고 싶은 나와 부정적인 인격이 나뉘어서 대화하는 형식이에요. 지금은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그냥 끄적이는 정도인데 기회가 된다면 느린학습자에 대한 정보들도 올리고 싶어요."

- 유튜브 운영도 시작하셨더라고요.

"제 기록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기도 했어요. 저를 통해서 은둔고립이나 느린학습자 문제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편집은 맨땅에 박치기로 그냥 배웠어요(웃음)."

- 말씀하신 것 말고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내일부터 인턴십에 참여하게 됐어요. 은둔고립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단체에서 소개받아서 참여하게 된 인턴십이에요. 한 달 정도 일을 하게 됐는데 이게 끝나면 청소나 환경미화 같은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이전에 일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웩슬러 지능검사를 했을 때 제가 언어이해는 평균 상 정도 나왔어요. 그런데 나머지는 지표가 제대로 기억이 안 나긴 하는데 두 개는 경계선, 나머지 하나는 지적장애 수준으로 나왔어요(언어이해 외 나머지 세 지표는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담배 이름을 외우고 재고 관리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어렵더라고요. 순간적으로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부분도 어려웠어요.

사단법인 시즈라는 단체에서 카페 일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어요. 서비스하거나 인사하는 건 괜찮았는데 손님이 많을 때 우선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조용하게 혼자 할 수 있는 청소나 환경미화 같은 일을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느린학습자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실 경계선지능을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일반적인 사람들과 녹아들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조금은 삶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경계선지능이라는 틀 자체에 너무 자신을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허무맹랑한 말일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도전을 하면서 이런 걸 증명해 보고 싶어요. 제가 증명해 보이면서 당신들도 여러 가지 시도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에요.

'다중지능'이라는 이론을 인터넷에서 봤어요. 우리가 공부나 일머리는 없을 수 있지만 분명 꽃피울 수 있는 분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가능성을 보고 싶어요. 이런 이론이 존재한다는 거 자체가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조심스러운 부분은 저는 활동가이지만 느린학습자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느린학습자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니까 고민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수관씨는 느린학습자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 부모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나요?

"부모님들이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갈 거니까요. 제가 처음 알게 된 이후 부모님에게 '왜 날 태어나게 만들었냐'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성장했거든요. 부모님께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당신들의 자녀들도 이렇게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은둔고립 활동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변화하게 됐어요. 활동을 하면서 '나도 사회에서 쓸모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경험을 똑같이 재현해 줄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느린학습자이지만 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다'라는 걸 찾아주고 싶어요."

은둔, 고립의 시간을 지나 수관씨는 세상으로 나왔다. 이제 본인의 이야기, 그리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느린학습자 청년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관씨는 본인이 내성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전달하는 수관씨의 모습을 보니 그가 동료들과 함께 원하는 일들을 잘 해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관씨와 함께 목소리를 낼 동료들이 생기고, 또 이 동료들과 한 걸음씩 나아가며 수관씨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느린IN뉴스에도 실립니다.(https://www.slowlearner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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