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있어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사연과 함께 음악을 신청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진행자의 진행 솜씨가 능숙한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이런저런 사연들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세상에는 나 말고도 참 많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를 기분 좋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수험생의 사연이 귀에 들어왔고, 현 고3 수험생의 엄마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볼륨을 높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수시 원서를 다 등록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수험생입니다. 이제 마음 놓고 좀 놀아도 되겠죠? 무얼 하고 놀지 고민입니다."
그러자 염려를 담은 진행자의 말이 이어졌다.
"아, 벌써 마음을 놓아도 되나요? 수능 최저 준비 안 하나요? 이제 곧 수능이고, 마음 놓고 놀기에는 좀 빠른 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진행자의 난감함이 이해됐다.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입시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아직도 집중하며 준비해야 할 시간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연의 주인공인 그 수험생의 마음 또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개인마다 선택한 전형이 워낙 다양하니, 수능이 필요치 않은 학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 아이만 해도 단 하나의 전형만 수능 최저가 필요할 뿐, 나머지 5개는 내신과 면접으로만 당락이 결정된다.
"저는 수능을 보지 않아도 돼요. 그래서 놀아도 괜찮아요."
진행자의 진행하는 말을 듣고 수험생이 실시간으로 답을 달았나 보다. 진행자가 그 말을 전해주었을 때, 나는 '역시나'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이어진 진행자의 말이 좀 불편했다.
"아, 수능을 보지 않는다? 그러면... 음... 놀아도 된다고 말을 해줘야 할까요? 허허... 저라면, 이 시기에 마냥 놀기보다는 책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험생을 대하는 고정된 시선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수험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는 모양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진행자가 그 수험생의 신청곡을 틀어줬는지의 여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연을 보낸 수험생의 기대하는 바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입시 준비를 끝냈으니 조금 쉬어도 된다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장도 풀 겸 신청한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놀아보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수험생에게 바라는 게 많은 것 같다. '네가 지금 야구 보러 갈 때야? 네가 지금 연애할 때야? 네가 지금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야? 네가 지금 핸드폰 볼 때야?' 오로지 강조한다. '공부에 집중해!'
수험생이라는 자리. 물론 미성년자의 끝자락이니 성인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 건 맞다. 하지만 수험생도 사람이고, 좋아하는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는 모두와 똑같은 존재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기에는 입시 기간이 너무 긴 게 아닐까?
꼰대 같은 말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약 25년 전) 2년은 좀 놀았더라도 고3 한 해 바짝 집중하면, 어느 정도의 성적이 보장되던 시기였다. 수시라는 제도가 없었고, 수능 점수로만 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기에, 평소 학교 시험 성적은 미래를 결정할 만큼 큰 영향력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좀 이른 친구들은 유치원 때부터, 보통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무리 늦어도 중학교 졸업하는 시기부터 입시 준비에 돌입한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부터 대입에 반영이 되어, 적어도 2년 반에서 3년 동안은 꼼짝없이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 시험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 중간고사 겨우 끝났나 싶으면 수행평가가 이어지고, 돌아서면 기말고사에 또 돌아서면 또 다른 수행평가. 애쓰고 애쓰다가 채점이 끝나면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일렬로 줄 세움을 당해야 한다. 한 문제 차이로 해당 등급의 문을 열기라도 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을 달래야 한다.
생기부를 채우기 위한 갖가지 활동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필독서를 읽어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보고서를 써야 한다. 그나마 자소서(자기소개서)가 사라지고, 봉사활동 점수가 사라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발성이 사라진 봉사 활동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방학이라고 해서 숨을 고를 수나 있을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학원 가는 시간은 두 배, 세 배로 늘어난다. 가지 않고 쉬면 되지 않느냐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간 태평하게 그저 놀았다가는 다음 학기가 얼마나 힘들지를 알기에 마냥 쉬지 못한다. 주말이라고 다를까?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대한민국 입시라는 쳇바퀴 안에서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먼저 달리기를 마친 아이에게 우리는 왜 너그럽게 수고했다고, 이제 좀 쉬어 가라고 말해줄 수 없는 걸까?
시험 점수보다 도전에 박수를
수험생이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편견 속에서 아이들을 '쉬면 안 되는 존재'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정말로 응원해야 하는 것은 좋은 점수라기보다, 도전 자체여야 하지 않을까?
입시의 성공이 백프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입시의 실패가 백프로 실패한 인생이라 단정할 수 없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더 노력하지 않음을 비난하지 말고, 더 노력하지 못한 자성은 각자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그저 기꺼이 그 무게를 감당하며 입시라는 터널, 수능이라는 문을 지나는 것을 응원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인생은 이제 시작되고 있을 뿐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우리 집 아이 역시 수시 등록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하나는 예비합격, 또 하나는 탈락이라는 결과가 이미 나온 상태다.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어서 아이도 우리 부부도 많이 상심해 있다. 남은 4개의 전형이 워낙 변수가 많아서 불안에 떨고 있기도 하다.
처음 결과를 만났을 때,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에서는 아이를 나무라는 말이 마구 솟구쳤다. '그러니까 핸드폰 그만 보라고 했잖아. 영어학원도 가라고 했잖아.' 그런 말로 아이를 다그친다면 아이의 상심한 마음은 어떻게 회복이 될 수 있겠는가.
나는 더욱 나의 입단속을 철저히 할 생각이다. 결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아이를 다독일 수 있는 말을 연습해 둘 작정이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당연히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칭찬하고 기뻐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를 대비해서 부지런히 연습해 두려 한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우리 아들"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모든 수험생들에게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결과가 어떠하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늘 기억하고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