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아주 옛날 고생대 시기에는 적도 부근의 얕은 바다 밑에 있었다는 말을 다들 한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특히 강원도의 지층이 그렇다.
강원도의 지체 구조는 주로 초기 고생대 시기에 열대 지역의 얕은 바다에서 퇴적된 조선누층군과 후기 고생대에 형성되어 조선누층군 위를 덮고 있는 육성층인 평안누층군, 그 뒤 중생대 시기에 광활한 호수 아래에서 퇴적된 대동누층군과 조산 운동을 겪으며 관입한 화강암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다양한 지질학적 구조를 관찰할 수 있어 지질 여행의 목적지로는 완벽한 곳이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지구과학, 특히 암석에 대한 내용과 한반도의 지체 구조에 대한 내용을 아주 재미있게 공부했다. 그래서 지난 9월 오직 바위 구경만을 목적에 둔 당일치기 강원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 여행 코스를 한 번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른 아침 7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치악산을 지나 88번 지방도를 타고 열심히 달려가면 10시경에 강원도 영월군에 도착한다. 영월에서의 첫 목적지는 무릉도원면 무릉리의 주천강이다.
1. 영월군 요선암 돌개구멍 (천연기념물 제543호)
- 강원 영월군 무릉법흥로 275-25
사자산 미륵암 입구에 주차를 하고 200미터 정도의 숲 길을 느릿느릿 걸어가다 보면 미륵암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강으로 내려가는 작은 돌계단을 통해 주천강가로 접근할 수 있다.
주천강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화강암 암석에 커다랗게 파여 있는 수많은 구덩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돌개구멍이라고 부른다.
돌개구멍(pot hole)
주로 하천의 상류 지역에서 떠 내려온 자갈, 돌멩이들이 하천 바닥의 암석의 틈이나 오목한 부분에 유입되어 소용돌이 치는 물살에 몸을 싣고 회전운동을 하며 주변의 암석을 깎아 내려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
이곳의 돌개구멍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년 전)에 만들어진 흑운모 화강암이 오랜 기간 침식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 규모를 직접 보면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암반이 오랜 시간 마모되어 만들어진 곡선의 미가 우리를 매혹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필자는 다녀오진 않았지만 미륵암에서 가까운 곳에 요선정이라는 정자가 있으니, 정자에 올라 주천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88번 지방도를 타고 영월 시내에 들러 점심을 먹는 것을 권장한다. 가는 길목에 한반도 모양의 지형으로 유명한 한반도 지형과 우뚝 서 있는 기다란 석회암 기암괴석인 선돌,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필자는 청령포에 들렀는데, 매일 빌딩 숲에서 생활하다가 광활한 소나무 숲 한 가운데에 서 있으니 뼛속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영월 시내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15분 정도 달리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다.
2. 영월군 문곡리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천연기념물 제413호)
- 강원 영월군 북면 문곡리 산3
막상 도착해서 보면 커다란 석회암 노출 암벽 하나만 덜렁 놓여 있어 "저 바윗덩이가 대체 뭐라고..." 싶은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거나 핸드폰 카메라의 줌을 당겨서 보면 일반적인 바위와는 다른 뭔가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구과학을 공부하며 열심히 외웠던 퇴적 구조 "점이층리-사층리-연흔-건열"에서의 건열 구조와 "선캄브리아대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바윗덩이에서 관측할 수 있다!
우선 오른편의 노두에 집중하자.
사진 상으로는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측면에서 본다면 바위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가느다란 띠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스트로마톨라이트 구조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 (stromatolite)
얕고 따뜻한 바다에서 남세균으로 이루어진 미생물 막에 의해 퇴적물이 붙잡히고 고정되어 쌓이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어 만들어진 볼록한 모양의 층적 구조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다른 퇴적 구조와는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미생물, 특히 남세균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남세균은 지구 상에 가장 처음 출현한 생물체 중 하나이므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 초기 생명체의 역사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기에 관련 연구에 아주 중요한 단서 역할을 한다.
다만 최근에 문곡리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스트로마톨라이트로 보기 어렵다는 반박 연구가 발표된 바 있으니 참고 용으로 알아두자(이정현. 2020.06. 천연기념물 제413호 영월 문곡리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성인에 대한 예비연구: 비생물기원 구조일 가능성에 대한 논의. 대한지질학회 56 (3) : 363-373).
다음으로 왼편의 노두를 자세히 보자.
바위의 표면이 마치 여러 개의 깨진 도자기 조각들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작품인 듯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건열 구조이다.
건열 구조 (desiccation crack)
얕은 물 밑에서 형성된 미립질 퇴적층이 대기 중에 노출되어 건조해지면서 퇴적층의 표면이 갈라져 굳으며 형성된 구조
건열 구조의 존재는 해당 지층이 과거 얕은 물 밑에서 형성된 후 모종의 이유로 육지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위의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해당 고생대 석회암 퇴적층은 따뜻한 적도 부근의 조간대 환경에서 형성되었고 이후 지각운동으로 현재의 한반도 위치까지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다음 목적지인 정선으로 이동하자.
413번 지방도와 42번 국도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정선읍내에 도착하는데, 정선을 관통하는 조양강에서는 중생대 쥐라기(약 2억년 전) 시대에 형성된 대동누층군 퇴적암을 구경할 수 있다.
3. 정선군 봉양리 쥐라기 역암 (천연기념물 제556호)
- 강원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 919
조양강을 따라 걷다 보면 사진과 같은 바위가 여럿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바위의 모습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바위의 구성 입자의 알갱이 크기가 아주 크다는 점이다.
위의 사진들과 같이 자갈 등 입자의 크기가 2mm가 넘는 것이 우세하게 퇴적되어 만들어진 퇴적암을 역암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지구과학 시간에 열심히 외웠던 '진안 마이산 역암'의 바로 그 역암이다.
역암은 자갈이 강이나 하천을 따라 운반되다가 유속이 느려지는 호숫가의 밑바닥에 퇴적되어 형성된다. 이곳의 역암은 구성 입자의 크기가 아주 크고 입자의 표면이 둥글다는 점에서 강한 유속의 하천을 따라 운반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읍내에 있는 정선 5일장에 들러 허기를 채우자. 콧등치기국수, 수수부꾸미, 감자옹심이, 곤드레나물밥 등 강원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색있는 음식이 많다.
59번 국도와 424번 지방도를 타고 20여분 간 달리면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한다.
4. 정선 화암동굴 (천연기념물 제557호 )
- 강원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 산248
화암동굴은 조선누층군의 석회암 지층에 발달한 석회 동굴인데, 석회 동굴은 이산화 탄소를 포함하는 지표수나 지하수가 석회암 암반에 침투하여 화학적 풍화 작용을 일으켜 만들어진 동굴이다.
앞서 언급했듯 강원도에는 해성 퇴적층이 많아 석회암 지대가 강원도 전역에 산재하여 영월의 고씨굴, 삼척의 환선굴과 대금굴 등 수십개의 석회동굴이 있지만, 이곳 화암동굴이 특이한 점은 금광이 바로 옆에 혼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천포광산이라는 금광인데, 일제 강점기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던 국내 생산량 5위 규모의 금광으로, 1938년에는 금 생산량이 22,000g을 넘기도 했다.
관람을 하다 보면 갱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중 내 마음을 울린 것이 바로 사진 우측에 보이는 수직 사다리인데, 수직 이동 시의 안전을 나무 사다리에만 의존하여 작업을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화암동굴은 금광맥의 발견부터 광석 채취까지의 전 과정을 설명하는 상부 갱도와 석회 동굴을 포함하는 하부 갱도로 나뉘어서, 두 갱도가 고도차 90m 길이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계단이 아주 가파르니 편한 운동화를 신도록 하자.
하부 갱도에 들어서면 거대한 석주와 석순이 우리를 맞이한다. 수 만년 이상의 시간 동안 남들 모르게 조용히 만들어진 걸작들을 보니 절로 겸손해진다.
삼척의 환선굴이나 영월의 고씨굴과는 달리 화암동굴에는 동굴 이외에도 미디어 전시가 많아 개인적으로는 복잡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화암동굴의 석회굴은 다른 곳과는 또 다른 그 자체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번쯤 방문할 가치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소개하지 못했으나 강원도에는 오늘의 여정 이외에도 태백의 구문소, 용연동굴, 금천골 석탄층, 삼척의 미인폭포, 정선의 소금강 등 다양한 지질학적 명소가 산재해있다. 다음 여행은 강원도로 지구의 역사책의 한 챕터를 엿보는 이색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