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국가는 무얼 했는가? 대구형무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흔한 독립기념관 하나 대구에는 없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결심하노니,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재현할 것이다.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을 반드시 만들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삼남(경상도·전라도·충청도) 지방의 투사들이 투옥되고 순국한,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던 대구형무소는 현재 대구 삼덕교회로 바뀌어 있다.
이곳은 이육사 시인이 투옥돼 수인번호 264번을 달고 첫 옥고를 치른 곳이다. 경북 안동 출신인 저항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 지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가담한 죄목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3년 여간 옥고를 치렀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는 판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경술국치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일제의 관리자는 되지 않겠다"며 판사직을 사임하고 대구에 상덕태상회를 설립해 독립운동 거점으로 삼았다. 박 의사는 비밀결사단체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세워 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냈다. 그는 1918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심산 김창숙 선생, 전수용 의병장, 안규홍 의병장 등 많은 독립지사들이 대구형무소를 거쳐갔다.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지사는 216명에 이른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서대문형무소보다 이곳에서 더 많은 애국지사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형무소 터에는 지금 커다란 교회가 들어서 있다. 대구형무소가 있었다는 표지판만 남아 과거를 짐작케 할 뿐이다.
대구형무소를 복원하고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시민들이 2일 오후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공연장에서 순직한 독립운동가 216위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와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추모식은 광복회 광주지부와 대구지부, 따오기춤보존회, 사단법인 청소년꿈랩이 함께 했다.
추모제는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와 김능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의 추도사, 박지극 시인의 추모시, 추모영상, 추모공연 등 순으로 진행됐다. 마지막에는 모든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아리랑'을 제창했다.
독립운동가인 백산 우재룡 선생의 장남이자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인 우대현 선생은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애국지사가 216명이고, 이들 가운데 국가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212명"이라며 "대구형무소는 삼남지방은 물론 전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사형집행 또는 수감으로 희생을 치르면서 국권회복의 길을 걸었던 현장이자 이를 명실상부하게 증언하는 뼈아픈 역사 현장"이라고 말했다.
우 선생은 "통한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대구형무소를 더 이상 묻어둘 수는 없다"면서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순국 선열들을 위로하고 후세에게 독립운동희생정신을 교육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건립하라"고 촉구했다.
김능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은 "어딘가에 숨어있다 나타난, 모양은 새로운 보수이지만 내용은 친일인 뉴라이트 인사들이 대거 정부 주요 기관장에 임명되어 친일 언동을 일삼고 있다"며 "독립 후손으로서 죄송스러운 감정"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그 역시 "대구형무소는 경상도는 물론이고 호남, 충청, 제주, 강원도까지 전국에서 잡혀온 독립운동지사들을 가두고 사형시킨 장소"라며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세워 후손들에게 애국정신을 배우는 장소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박지극 시인은 "진정한 진혼은 이들을 정중히 모시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독립운동의 성지,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 대한광복회가 창설된 고장 대구는 무얼하는가"라고 대구시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