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예찬과 탈성장
"시린 봄, 겨울을 뚫고 막 올라온 여린 냉이를 캐다가 뿌리 깨끗이 씻어 냉이나물 무치고, 냉이된장국 끓여 밥먹을 때가 저는 가장 행복해요."
'공혜원의 행복한 것들'을 듣는 내내 필자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입속은 난데없이 냉이 향으로 가득했다.
"냉이를 캘 수 있는 밭이 있어야 하고, 뿌리에 잔뜩 묻은 흙을 깨끗이 씻을 시간이 있어야 해요. 마음도 여유로운 상태겠죠. 그리고 냉이를 조물조물 무쳐내고 된장 풀어 냉이된장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어야 겠죠. 그런 조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탈성장 사회로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탈핵잇다' 인터뷰를 위해 10월 16일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공혜원씨는 탈핵과 탈성장, 재생산정의에 대해 공부하며 깨달은 '공혜원의 행복론'을 펼친다.
탈성장이라는 말이 추상적이고 어렵지 않냐는 말에 공혜원씨는 "탈성장은 구체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난다"라고 역설로 답한다. 누구든 탈성장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으니 가능성이 풍부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저는 탈성장 사회를 '재미있고 행복한 것을 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재미와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요. 요리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맛있는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해요. 제철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타인의 노동과 기후, 땅의 조건이 필요하죠. 제게 탈성장은 제철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에요."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과 탈핵, 탈송전탑 연관어에 불쑥불쑥 얼굴 내밀던 공혜원 씨는 대안학교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밀양을 만날 때 만해도 밀양 송전탑 운동이 '지역 님비'라고 생각해 내키지 않았단다. 고등학생 때 밀양 주민인 김영자 총무와 밀양 할매, 할배들을 만나며 송전탑 반대 운동에 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밀양'은 공혜원 씨가 기후정의와 탈성장 운동으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되었다.
'공혜원'에게 '밀양'이 무엇이냐는 질문
"'밀양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많이 받았어요. 그때마다 딱히 답을 못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밀양은 그냥 제 삶인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밀양의 연대자라고만 생각하지 않거든요. 무지막지한 국가폭력에 10년 전 송전탑이 세워졌을 때 주민들과 밀양의 친구들이랑 '송전탑 뽑아서 엿 바꿔 먹자고, 그런데 엿을 얼마나 많이 바꿔줄까?' 하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했어요. 그런데 농담이 진담이 되더라고요. 가끔 지치고 자주 힘들겠지만, 송전탑 뽑을 때까지 계속 함께 싸워나가려고요."
당장 핵발전소를 끄더라도 10만 년, 100만 년 남는 핵폐기물 때문에 인류가 탈핵에 도달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탈송전탑' 또한 만만치 않은 난제다. 석탄, 가스, 석유, 핵발전까지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송전탑' 문제는 남는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중앙집권적인 전력체계를 지역별 분산에너지체계로 바꿔내지 않는 한 '송전탑'은 필수요건이다.
"송전탑은 에너지원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에너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예요. 결국 '정의로운 전력체계'라는 에너지 전환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어요."
탈핵하는 요즘 청년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을 비판하면서 핵발전 진흥정책을 밀어붙였다. '신규핵발전소 추가건설을 하지 않고 노후핵발전소는 설계수명이 다하면 폐쇄하겠다'라던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인 탈핵 정책마저 비판하며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신규핵발전소 추가건설, 소형핵발전소(SMR)까지 기후위기 대안으로 핵발전을 적극 활용하겠다'라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8월 발표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아래 10차 전기본)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핵발전 감소'라는 기본 틀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운동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겠다던 공혜원씨는 밀양에서 만난 청년들과 2022년 '탈핵·탈송전탑세미나(아래 탈탈세미나)' 모임을 만들고 11월 28일 10차 전기본 공청회 저지투쟁을 기획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초기에 진행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부터 탈핵운동이 약화된 이유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탈탈세미나에서'는 문재인 정부부터 윤석열 취임까지 에너지 문제에 대해 공부했어요. 모임 이름에 세미나를 붙인 것은 탈핵·탈송전탑 관련 공부만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윤석열 정부가 '10차 전기본'에서 2030년 핵발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대폭 늘리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30.2%에서 21.6%로 줄이면서 핵발전 위주로 에너지정책을 재편하기 시작했어요. 공부도 해야겠지만 '10차 전기본' 대응이 급했죠."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아는 인맥을 동원해 연락해보았지만, 사람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2022년 11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진행되는 내내 핵발전 비중이 높아진 것에 항의하는 탈핵·환경단체 활동가들과 '탈핵·탈송전탑·기후정의'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손피켓을 든 채 항의 시위를 벌였지만, 공혜원씨는 오히려 무력감에 빠졌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주는 교훈을 탈핵운동 뿐 아니라 시민사회 진영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보성향 정권에 대해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 개입할 것인지, 지켜야 할 원칙과 방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치열하게 이뤄져야 해요. 같은 일이 되풀이되면 안 되죠."
공혜원씨는 '10차 전기본' 대응 이후 일본으로 날아가 '코로나19' 이후 4년여 동안 중단됐던 '반핵아시아포럼' 한국개최 제안을 덜컥 받아온다.
"반핵아시아포럼은 한국, 일본, 대만이 주로 많이 참가하는데 웬만한 나라는 한 바퀴씩 다 돌았고 한국 차례였지만, 국제행사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일본 탈핵운동가 사토 상을 만나러 가서 반핵아시아포럼 한국 개최를 해보겠다고 한 거예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웃음)"
2023년 1월 공혜원씨가 일본을 다녀온 뒤 8개월 만인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서울-부산-울산-경주-삼척' 등에서 반핵아시아포럼이 열렸다. 탈탈세미나와 녹색연합, YWCA 등에서 활동하는 청년 5명, 탈핵활동가 2명 등이 아시아 9개국, 50여 명이 참여하는 국제연대 사업을 치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일본과 대만 탈핵운동의 역사와 교훈은 저한테 매우 중요했어요. 저는 폐기물, 재가동, 핵오염수 등 사후 대응 운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사고 이후 탈핵운동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었고, 대만은 국가차원의 탈핵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철만 돌아오면 핵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겠다는 공약들이 난무하는 것을 봐야 했어요. 끝나도 끝났다고 손 털 수 없는 운동이에요. 저와 같은 청년들이 핵발전, 송전탑과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으니, 청년들의 탈핵 국제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반핵아시아포럼에서 저의 관심은 온통 '청년세션'이었어요."
반핵아시아포럼 마지막 날,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던 '청년활동가 집담회'에 모인 20여 명의 탈핵하는 아시아 청년들은 각국의 탈핵운동을 소개하고 고민을 나눴다. 한국 5명, 일본 3명, 대만 3명이 발표에 나섰고 20여 명이 참여해 향후 '반핵아시아포럼'에서 청년들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조금 친해진 것 같아요. 반핵아시아포럼 실무를 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청년네트워크를 만들자고 제안한 점은 뿌듯해요. 탈핵을 선언한 대만은 좀 나은 편이지만, 일본은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조건이에요. 반핵아시아포럼에서 만난 청년들끼리 서로 토닥거리는 것부터 하려고 해요. 나라별로 사안이 생기면 '공동성명서' 내는 것도 큰 힘이 될 거예요."
2025년 반핵아시아포럼은 5월, 마지막 핵발전소 폐쇄를 앞둔 대만에서 열릴 예정이다. 아시아국가로는 처음 탈핵을 이뤄내는 대만에서 아시아 청년들이 만나 희망 섞인 탈핵·탈송전탑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한 발짝 떨어지니 보이는 것들
큰 환경단체에서의 일이 궁금했던 공혜원씨는 고 3 때 인턴십으로 녹색연합 에너지기후국에서 활동했다. 밀양에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국가폭력과 맞서야 하는 날 선 생활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면 화려한 불빛, 따스한 방에서 죄의식 없이 편히 소비하는 전기들을 마주하며 공혜원씨는 밀양 송전탑 문제와 부정의한 에너지 체계를 서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인권단체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일하면서 탈핵 세션을 만들고 탈핵과 인권관련 영화를 상영했다. 그 후 에너지정의행동,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등을 거치며 탈핵과 에너지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했다.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을 진행하는 부서에서 기간제로도 3년이나 일했다. 밀양은 그렇게 공혜원씨 삶에 스며들었고 에너지 관련 이력들이 쌓였다. 그러나 탈핵과 에너지운동은 하면 할수록, 파면 팔수록 어려웠다. 한 발짝 떨어져 있겠다고 마음먹었다. 공혜원씨에게 탈핵운동의 무엇이 어려웠고, 에너지운동에서 한 발 떨어지니 어떤 것들이 보였는지 물었다.
"에너지문제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요. 활동가가 전공자나 전문가처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연차가 쌓이다 보니 설명을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 알아야 했고, 내용에 접근하려니 어려웠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어려움은 탈핵운동이 지역주민들 이야기나 도시에 사는 전기소비자들의 이야기로 치환되기 어렵고 지역과 도시, 주민과 연대자로 자꾸 이분화되더라고요. 저는 핵발전구조와 기계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탈핵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에너지 전문가인 이헌석, 김현우 선생님 같은 분들이 하면 돼요(웃음).
핵발전소를 겪어온 주민들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야 하고 개인과 지역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피해로 확산시키는 것이 탈핵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높고 삼중수소 등 인공방사능 물질이 소변에서 섞여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요. 우리도 인과관계를 과학적, 의학적으로 입장하라는 식의 핵산업계의 프레임에 너무 오랫동안 길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탈핵잇다' 같은 구술작업은 중요한 운동방식이에요."
공혜원씨는 서울은 중앙이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이라고 말한다. 에너지관련 시설이 없고 생산지의 경험이 없는 거대한 전기소비자들이 핵발전소 주변지역 사람들이 겪는 정신, 육체적 피해를 알기 어렵고 핵산업계가 주민들을 어떻게 길들이고 갈라치는지 세세히 알 수 없다. 핵발전이 위험하고 방사능에 대한 공포와 늘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도 안다. 그러나 그 위험을 인정하면 자신이 딛고 선 삶의 터전을 부정해야 하고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거대한 핵산업계에 길게 저항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1979년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25기의 핵발전소를 생기고 운영되는 동안 지역주민들은 거센 저항, 갈등과 분열, 이주대책 요구, 순응과 종속의 과정을 거치며 핵발전소 주변지역민으로 살아간다. 밀양이나 청도 송전탑 반대투쟁이 마을에 남긴 상처와 일상의 반목과 고립은 새벽별 보면서부터 새까만 밤이 내리도록 산꼭대기 움막을 지키던 때보다 삶을 더 힘들게 한다. 부안, 영덕, 삼척, 영광, 울진, 월성, 밀양, 청도, 봉화, 당진, 홍성 등 핵폐기장반대투쟁과 신규핵발전소 반대, 탈송전탑 투쟁에 나선 지역주민들 가슴속엔 불구덩이가 한 움큼씩 자리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랑 살아서 그런지 할머니랑 친해요. 할머니랑 냉이 캐러 가는 것이 저희 '행복한 것들' 중 하나에요. 그래서 할머니가 노인정에서 크고 작은 다툼 때문에 끙끙 앓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속상해요. 할머니가 '인싸'거든요. 노인정은 할머니 일상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이고 관계들이 모인 곳인데 외면할 수도 없고, 노인정에 나가자니 상대방 볼 생각에 속이 끓고 하는 거죠.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도 찬성과 반대, 갈등과 배신이라는 극단적인 프레임만으로 예단할 수 없는 감정과 갈등들이 많을 거예요. 할머니는 몇 날 며칠 속 끓이다가 스~윽 하고 떡을 내밀며 관계를 정리해요. 마을에서 개인 사이의 다툼도 일상을 지배하는데 이해관계가 첨예한 핵발전소 주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핵발전 인근 지역에서의 갈등만이 아니라 연대하는 다른 지역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기 마련이겠죠. 탈핵 관련 연대단체 회의에 모인 동료들의 지친 모습 보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에너지 운동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보기로 했어요."
한 발짝 떨어지니, 방황도 함께 오더라는 공혜원씨는 회계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회계 관련 자격증을 따며 취업을 준비했다. 밀양대책위는 2019년 '밀양·청도송전탑투쟁'을 담은 아카이브 제작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고 공혜원씨는 밀양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밀양·청도 송전탑반대투쟁 온라인기록관'작업을 하면서 다시 제게 이 운동이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크고 먼 것이 보이는 것 같아요. 지금쯤이면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준비 모임 꾸려야 하고 바로 나아리 이주대책위 상여투쟁 10년, 11차 전기본 투쟁이 쭉 이어져야 하는데 왜 움직임이 없지? 궁금해하고, 참견하다, 현장에 연락하고 기획팀 꾸리고 다시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거죠. 6월 8일 밀양행정대집행 총괄팀장도 참견하다 일을 맡아 버린 거예요."
송전탑을 감각하다
지난 2014년 6월 11일 765kV초고압 송전탑 저지를 위해 송전탑 예정지 이름을 딴 움막을 짓고 저항하던 밀양주민과 연대자들을 막고 무자비한 공권력이 기어코 세운 송전탑을 보며 밀양주민들은 '언 놈이 씨부려도(어느 누가 떠들어도) 탈핵 탈송전탑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을 다시 내걸고 팔도를 돌아다니며 핵발전과 송전탑의 위험을 알려냈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와 함께 '언 놈이 씨부려도'는 밀양 송전탑 투쟁을 상징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2024년 6월 8일, 10년 전 밀양주민과 함께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웠던 '밀양의 친구들' 1500여 명이 '희망버스' 22대를 타고 다시 밀양에 모여들었다. 한 발짝 떨어져 참견이나 하겠다던 공혜원씨는 밀양행정대집행 10년 행사의 총괄팀장을 맡았다.
"'탈탈세미나'에서 올해 전망을 하면서 밀양·나아리 10년과 11차 전기본 대응을 흐름 있게 가져가 보자는 의견을 나누고, 올해 초부터 조직을 꾸렸어요. 밀양지역 시민사회는 밀양 현장이 갖는 상처와 갈등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선뜻 나서기 어려워했어요. 부산, 울산 시민사회 탈핵활동가들이 짱짱하게 현장을 받쳐주고 청년들로 조직, 홍보 실무팀을 꾸렸어요. 기획팀, 조직팀, 홍보팀에 각각 10여 명씩 꾸려졌고 주 1회 점검 회의를 했어요. 저는 총괄팀장이라 일주일에 약 4번 각 팀 회의 참여했어요.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인데 합이 잘 맞았고 일하는데도 신이 났어요."
공혜원씨는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아래 셰어)' 사무국장이다. 현직 업무량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40여 명의 활동가와 신나게 합을 맞춘 총괄팀장의 비결을 물었더니 "밀양이잖아요"라고 답한다. 10년 세월 너머, 빗속을 달려온 1500여 명도 같은 마음이었지 싶다.
"송전탑을 '감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10년 전 밀양에 와 본 사람이나, 10년 후 밀양에 처음 온 사람이나 송전탑을 가까이 보는 것은 처음이니 송전탑을 감각으로 느껴보는 것이 중요했어요. 사전 행사로 밀양시 여수·고정·평밭·용회마을과 경북 청도군 삼평리 등 5개 마을로 나눠 참가자들이 송전탑 아래 서보는 경험을 했어요. 송전탑은 비 오는 날, 더 무섭거든요. 크게 울리는 웅웅 거리는 소리와 비행기 충돌을 막으려고 빨간빛을 내는 송전탑의 기괴함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거예요. 기괴한 풍경을 매일 봐야 하는 마을 주민들의 심정도 조금은 감각하지 않았을까요?"
행사 당일 점검회의를 마친 오전 10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져 5개 마을 송전탑 체험도, 오후 4시 밀양강 둔치공원에서 열린 결의대회 진행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10년 세월 동안 힘 빠진 무릎을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걸을 수 있는 밀양 할매, 할배들의 안전이 걱정이었다. 22대의 희망버스가 출발한 곳으로 떠나자마자 퍼붓던 비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10년 행사가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힘든 주민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지, 비까지 와서 행사장에 나와 계신 것이 힘든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으로 앞에서 사람들을 마주 보는데 밀양주민들과 참가자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는 거예요. 행사에 의무적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이 와 있다고 느꼈어요. 비가 쏟아지는데 웃고 있으니까 미친 사람들 같기도 했어요(웃음). 제가 무대 옆에 서 있으면 팀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 하는 게 다 보여요. 그냥 그렇게 서서 사람들 웃는 것 보고 행사 내내 실무팀과 눈 맞추고 마음 나눴던 그 시간이 모두 좋았어요."
셰어,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공혜원씨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사무국장이다.
셰어 홈페이지에는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누리며 충분한 정보와 평등한 자원을 바탕으로 서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비전을 밝혀놓았다. 셰어와 탈핵 탈송전탑, 기후정의 운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했다.
"셰어는 국내 최초로 성별, 연령, 장애, 인종, 국적,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성 건강 전문 상담과 의료지원, 포괄적 성교육 접근성을 보장하고, 이를 위한 법과 정책을 연구하는 통합 센터를 지향해요. 20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낙태죄 폐지운동'에 관심이 많아 셰어 초창기 때부터 회원가입하고 활동을 팔로우 하고 있었어요. 2022년 사무국장 채용공고를 보고 자신은 없었지만,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지원했어요."
공혜원씨는 사무국장으로 채용되었고 다양한 회원, 활동가들로 구성된 '셰어'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다루기 위해 노력한다. 공혜원씨가 관심 갖고 팔로우했던 '낙태죄' 폐지 운동은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비범죄화 되었으나,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의 구체적인 실행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국가 차원의 의료가이드가 없으니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마치 불법인 것처럼 비밀상담과 시술을 하거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싼 비용을 청구하는 등의 일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공혜원씨는 셰어가 여성단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성과 관련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재생산정의 운동이 저에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임신, 임신중지, 출산, 양육만이 재생산이라는 것은 협의적 의미예요. 재생산은 여성이나, 자궁이 있는 사람만의 문제도 아니고요. 재생산정의 운동은 모든 사람이 폭력, 강압, 차별, 낙인 없이 자신의 몸과 성, 재생산에 관련하여 건강과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불평등과 차별, 착취를 종식시켜 나가는 일이에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하고요. 탈핵 탈송전탑, 에너지전환운동도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이니 재생산정의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셰어도 결국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이고, 기후정의운동이 부르짖는 '체제전환'이라는 공혜원씨는 기후재난에도 배제와 소외가 존재함을 지적한다.
"기후재난을 특정한 사건, 특별한 자연재해로 인식하면 '일상이 재난'인 사람들을 놓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기후재난으로 인한 농민, 여성농민 이야기는 가시화되지만, 이주노동자, 이주여성의 이야기는 많이 나눠지지 않잖아요. 늘 비자 문제를 걱정하며 폭염과 한파, 농업노동, 가부장문화에 시달리는 이주민이 겪는 일상의 재난은 주목받지 못하기도 해요. 셰어는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난민, 성노동자, 성소수자, HIV 감염인 등 사회적으로 취약하다고 불리는 소수자 집단과 많은 활동을 함께 하고 있어요. 기후재난에서 마저도 소수자들이 배제되고 가려지면 '기후정의운동'이라고 할 수 없죠."
'기후와 성은 어떤 관계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공혜원씨는 안전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권리가 작은 문제거나 배제되어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의 행복과 탈핵, 기후정의라는 사회적 담론이 같은 선상에 놓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냉이에서 시작해 탈성장에 이르고, 밀양에서 출발해 셰어에 다다르듯 공혜원씨의 다음 연결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길고 넓어질 그의 행보에 박수와 응원을 잔뜩 보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탈핵잇_다'에도 실립니다.탈핵잇다 시즌 2은 ‘숲과나눔 소규모 연구모임 지원사업 풀씨연구회’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