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동안 국회에 이어져 왔던 '불문율'이 깨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4일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최근 불거진 공천 개입 논란에 야권에서 장외집회를 여는 등 대통령 탄핵, 하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자 불참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국정기조를 국민들에 설명하는 자리라는 것만으로 대통령의 참석 이유는 충분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취임 첫해였던 지난 2022년, 자신을 둘러싼 비속어 논란으로 여야가 반목했던 시기에도 국회를 찾아 예산안 통과를 호소했다. 당시 '정치 분열'의 화살을 맞은 건 오히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한 더불어민주당이었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지워진 책임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떠넘기면서 윤 대통령은 스스로를 한층 더 두터운 '불통' 이미지 속에 가두게 됐다. 참고로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9월 열렸던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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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윤석열 대통령 시정연설 불참, 당연한 책임 저버린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에 대해 "삼권분립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데 이 책임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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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에... 국회의장도 "강력 유감"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입니다.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수장으로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앞장서 대통령 불참을 강력 규탄하고 나선 건 그래서다. 우 의장은 이날 시정연설에 앞서 시정연설의 의미를 설명하며 "대통령께서 직접 시정연설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국회에 대한 존중"이라며 "국민의 인식이 그렇다. 불가피한 사유 없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다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비판했다. 또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고, 대통령은 국민께 보고할 책무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우 의장은 또 "대통령께서는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다.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며 "이렇게 계속 국회를 경원시해서는 안 된다, 국회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국민이 위임한 국정운영의 책임을 할 수 없는 현실을 무겁게 직시하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우 의장의 작심 발언에 국회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소란에 휩싸였다. 여당에서는 야유가, 야권에서는 호응이 빗발쳤다. 우 의장은 "잠깐만 있어보라"며 혼란을 잠재웠고 가까스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을 대독하기 위해 단상 위로 섰을 때까지 소란은 계속됐다.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오라고 하세요"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 총리가 시정연설을 읊어내려갈 때는 비교적 잠잠해졌다. 때때로 여야의 호응과 야유가 뒤섞여 터져 나왔을 뿐이다.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가 끝난 뒤 같은 장소에서 곧장 의원총회를 열고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을 강력 규탄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렇게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업신여기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생각인지, 이렇게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묻고 싶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최근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의 윤 대통령 음성 녹음 파일을 공개한 것 관련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국기문란 범죄다.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며 "분노한 국민이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국민은 지금 윤 대통령이 과연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건희 특검법을 오는 11월 14일 본회의에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시정연설이 시작되기 전, 본회의장 앞에서 '공천개입 통화 대통령이 해명하라!', '윤석열 정권 김건희를 특검하라!' 등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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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국회 연속 불참, 윤석열 대통령 규탄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와의 공천 개입 의혹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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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여론 거세진 야권 "대통령, 책임지기 싫다면 물러나라"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에서도 이날 대통령 불참에 '책임 방기'라는 반발이 나왔다. 대통령 탄핵 여론도 한층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을 가리켜 "국민의 대표자를 만날 용기조차 없는 쫄보"라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지리산 도사'를 자처한 명태균씨는 2021년 7월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에게 '취임하면 2024년 총선에 개헌하고 물러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5년을 버틸 내공이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며 "윤석열-김건희 두 사람은 이 '도사'의 말을 이제 듣고 그 자리에서 당장 내려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혁신당은 다음 달까지 전국을 돌며 탄핵 당위성을 알리는 탄핵다방을 연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초안 역시 이달 중 공개한다.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 역시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정연설이라는) 중대한 자리에 총리를 내세운 것은 스스로 대통령의 책무를 포기한 것과 다름 없다"며 "국정을 포기하고, 국민에 대한 의무를 거부한 대통령은 자격이 없습니다. 즉각 물러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