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검찰개혁의 방향은 검찰의 수사권 제한과 검사를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설치·보강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을 통해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시민참여 확대 및 정치적 중립 확보라는 과제도 절실하다.
수심위는 기소, 검찰은 불기소로 엇갈려
먼저 시민참여 확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검찰 업무에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견제하는 제도로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아래 '수심위')와 검찰 시민위원회(아래 '시민위')가 있다(두 위원회에 대해서는 이 글 끝에 설명을 붙여 두었습니다). 수심위는 대검찰청에 두며 150명 이상 30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구체적인 안건이 생기면 수심위 위원 중에서 무작위로 15명을 뽑아 '현안위원회'(아래 '현안위')를 구성한다.
최근에 주목받은 현안위에서는,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백을 비롯한 몇 가지 선물을 받은 사건의 기소 여부를 다루었다. 같은 사건인데도 두 당사자의 현안위가 따로 열렸는데, 9월 6일 김건희 현안위에서는 불기소 결정이 나왔지만 9월 24일 최재영 현안위에서는 기소 결정이 나왔다.
김건희 현안위에는 불기소를 원하는 검찰과 김건희 여사 변호인만 참여했고 위원들의 표결에 관해서도 공개되지 않았다. 반면, 최재영 현안위에는 불기소를 원하는 검찰과 기소해서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자는 최 목사 측 변호사가 같이 참여했고, 위원들도 의견이 나뉘어, 표결 결과 기소 의견이 8대 7로 우세했다고 한다. 검찰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었으나 둘 다 불기소로 처리하고 말았다.
수심위 폐지론이 아니라 강화론이 되어야
검찰의 이런 모습에 많은 국민이 실망하였고 어떤 이는 수심위 무용론 내지 폐지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재영 현안위가 검찰 측 의도와 다른 결론을 낸 것만 해도 수심위 제도가 검찰 독주를 견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심위 무용론·폐지론이 아니라 더 잘 기능하도록 강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심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정부에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가 있지만, 장식용이라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구성과 심의를 중립적으로 하고 그 과정도 공개해야 한다. 수심위 위원 후보자를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로부터 추천받을 수 있고, 수심위 전체에서 무작위 추첨하여 현안위윈회를 구성하는 현재의 방식은 바람직하다. 다만, 수심위 위원 후보자를 어느 단체에서 누구를 추천했는지, 추천된 후보 중에서 어떤 기준에 의해 수심위 위원으로 최종 선정했는지를 공개하여야 한다.
심의 과정에는 상반된 의견을 가진 양측 당사자가 모두 참여해야 한다. 이번 김건희 현안위처럼 불기소를 원하는 측만 참석하여 위원들에게 사건을 설명한다면 당연히 검찰이 원하는 결론으로 낙착되기 쉽다. 심의는 위원들이 안건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도록 숙의를 거쳐야 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심의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
특히 검찰이 현안위와 다른 결정을 할 때는 그 이유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해명해야 한다. 이번 불기소 결정에 대해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증거와 법리"에 따랐고, "국민 법감정에는 맞지 않을 수 있으나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고 해명해 봤자 믿어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수심위의 근거 법규인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은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폐기할 수도 있는 대검찰청 예규에 불과하므로, 법률 또는 대통령령으로 격상해야 한다.
검찰 인사에 대통령·장관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확보는 더 중요한 과제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결론이 옳건 그르건, 많은 국민은 검사가 정치권력 앞에 무력하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수사팀은 검찰총장에게 사전 보고도 하지 않고 (소위 '패싱'하고) 대통령 경호처 건물에 가서 김건희 여사를 '출장 조사'하였다. 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 시작 후 4년 넘게 시간을 끌다가 서울중앙지검 검사들만 모여서 10월 17일에 불기소 결론을 냈다.
검찰이 아무리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변명해도 국민의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과 검사 보직 인사권을 가진 현행 제도에서는 검사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총장 인사는, 정치적 중립이 필요한 다른 고위공직자 인사와 함께, 정치권이 아닌 '시민의회'에서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민의회란 국민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하여 구성하는 의회로서, 선거로 선출되는 의회 외에 추가로 두는 기구다(시민의회에 대한 설명은 필자의 다른 칼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omn.kr/24mm5). 다만, 시민의회는 헌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므로 당분간은 법률로 시민의회 비슷한 공론화 기구를 두고 헌법의 범위 내에서 고위공직자 임명 동의를 포함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좋겠다.
이 글의 제안대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법무부 장관이 가진 수사지휘권은 폐지해야 하며, 검사 보직 인사권도 검찰총장에게 일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외치던 '공정과 상식'의 검찰을 보고 싶다.
참고 -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와 검찰 시민위원회 |
1.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수심위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지면서 2018년에 도입된 제도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의하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외부 전문가가 계속 수사할지, 기소 또는 불기소할지 등을 심의한다. 수심위는 대검찰청에 둔다. 수심위 위원은 150명 이상 300명 이하이며,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각계의 전문가를 검찰총장이 위촉하며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추천받을 수 있다. 구체적인 안건이 생기면 수심위 위원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15명을 뽑아 '현안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한다.
2. 검찰 시민위원회
시민위는 2010년 검사 성 접대 사건 이후 실추된 검찰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2010년에 도입된 제도다. <검찰 시민위원회 운영지침>에 의하면,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 국민의 의견을 직접 반영하여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각 지방검찰청과 지청에 둔다. 시민위 위원은 11명 이상 60명 이하이며 지방검찰청장 또는 지청장이 만 19세 이상의 국민 중에서 건전한 상식과 균형감을 갖춘 일반 시민을 위원으로 위촉한다.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위촉될 수 있도록 직업, 연령, 성별, 거주지 등을 고려한다. 위촉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지역 사회의 각 분야로부터 위원으로 위촉될 사람들을 추천받거나 공개 모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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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구지역 인터넷 매체 <평화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