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보다 깜짝 놀랐다. 이럴수가! 입동이 사흘 남았다니. 올해도 어느 새 후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11월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과 그제까지 태풍에서 약화된 온대저기압이 한반도에 영향을 주었던 걸 보면, 날씨도 바쁘게 사느라 여름 달력 넘기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그러던 날씨가 문득 각성한 것인지 서둘러 제시간을 찾아가고 있다. 오늘 오전 우리나라를 쓸고 지나간 한랭전선의 뒤에 숨어 무시무시한 흑막이 다가오고 있으니 바로 시베리아에서 제철을 맞은 찬 공기 되시겠다.
시베리아에서 힘을 모으다 겨울만 되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 찬 공기는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진하는 길에 칠칠치 못하게 그 흔적을 남기고 다니니 뜬금없게도 '양떼'이다.
찬 공기가 따뜻한 지면 혹은 해면을 지날 때, 불안정이 유발되며 (층)적운을 생성하게 되는데 이때에 찬 공기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적운열 또는 운열로 불리는 '줄지어 선 양떼'가 생겨난다.
지난 10월 19일에도 한 차례 찬 공기가 다가온 바 있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 보듯 하늘을 나는 양떼인 운열이 발생했다. 이번 한기의 남하 역시 유사한 모습이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10월 19일에는 한반도 중부지방 약 5.5km 상공(500hPa 등압면)의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반면, 이번엔 그보다 10도는 더 낮은 영하 25도의 찬 공기가 남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10월 19일에 비해 운열은 더 강하게 발생하고 기온은 더 낮아지겠다.
오전에 한 차례 비와 함께 한랭전선이 빠져나간 이후 이미 창 밖은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북쪽까지 다가온 찬 공기의 본체가 오늘 후반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고 나면 내일부터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지역이 있는 등, 대부분 5도 이하로 추워지겠고 낮 기온도 오르지 못해 10도 전후로 쌀쌀하겠다.
이 추위는 찬 고기압의 중심이 우리나라 동쪽으로 빠져나가며 북서풍이 사그라드는 8일 이후에야 점차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찬 공기를 동반한 고기압의 이동 경로가 한겨울과는 조금 다르다. 만주에 중심을 둔 절기저기압에 등떠밀려 고기압 중심이 중국동안을 따라 급속히 남하하는 한겨울과 달리 아직은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지나 남동진하는 고기압이 우리나라에 다다라 개마고원에 부딪히며 양갈래로 나뉘고 서해상과 동해상 양쪽에서 다가오는 양상이다.
이 두 갈래 찬 공기가 다시 서로를 향해 합류하려는 과정에서 5일까지는 동해상으로 이동한 세력이 상황을 주도, 동풍이 강원영동과 경북해안 지역에 비 구름을 만들겠으며 강원영동의 높은 산지에는 눈으로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6일에는 서해상에서 남하하는 찬 공기 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며, 해상의 운열이 충남과 전북 서해안에 닿아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 그 사이 동해상의 구름대는 육지에서 바다로 밀려나겠다.
겨울의 전반에는 바다가 충분히 따뜻하기에 찬 공기가 남하할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점차 기온이 더 낮아져 운열이 비가 아닌 눈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전국의 방재기관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된다.
일반적으로 내륙에 사는 우리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강원도 영동과 울릉도만을 떠올리지만, 서해안과 인접한 서쪽의 도시들은 서해가 충분히 차가워질 때까지 추운 날이 곧 눈 오는 날일 정도로 지긋지긋한 눈과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위성 사진 속의 양떼는 아름다운 자연현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겨울철 대설을 만드는 대규모 공습인 것이다. 올 겨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악전고투할 기상청과 지자체 등 모든 방재기관의 활약에 미리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