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면 점심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게 싫었다. 밥과 김치 시장에서 구한 시래기로 끓인 국이 다였다. 부실한 도시락을 싸서 자식에게 들려준 어머니의 마음도 무거웠을 테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8년부터 학교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똑같은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어머니의 심신이 편해져 기뻤다. 그러나 매 학기 눈을 감아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 급식비를 내기 어려운 학생은 손을 들라고 했다. 눈을 감은 채 손을 들었지만 어떤 친구들이 손을 들었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그래도 급식비를 지원받는 게 친구를 사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감사합니다'로 급식노동자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나도 세상도 나이가 들면서 최소한 밥은 평등하게 주자며 무상급식이 도입됐다. 눈치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좋았다. 무상급식 운동을 벌인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 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무상급식이 급식노동자들의 폐와 손목으로 지어진 밥이라는 것을.
이런 현실을 알리기 위해 2024년 7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업재해 피해자 국가책임 요구 및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와 국회의원들이 학교 급식실 노동자 폐암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작품 응원 공모전을 진행했다. 초등학생부터 만24세 이하 청년까지 문학, 그림 등으로 급식노동자 폐암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작품을 제출했다.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고 출근하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고 조리복 입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고 가스 켜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고 땀 흘리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다 김치 하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다 숨 못 쉬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다 목이 쉬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다 열이 나는데
당신은 정말 감사합니까?"
김용현 학생의 '감사합니다'라는 작품이다. 그는 마지막 연에서 당신은 정말 감사합니까? 라고 묻는데, 학교급식 문제를 방치한 국가에게 던진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는 학교급식 노동자의 안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에도 충북의 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노동자 생명안전을 위해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금액 투자해야'
학교급식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학교급식실 인원 충원 및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개선 연구포럼'이 열렸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정인용 본부장은 인사말에서 "학교 급식실에서는 폐암 뿐 아니라 화상, 미끄러짐, 낙상, 베임, 절단 등의 사고에서부터 회전근계파열, 손목터널증후군 등 근골격계질환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도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021년 인천대와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급식실의 노동강도를 무려 39% 낮춰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을 함께 나눌 사람도 턱없이 부족하다. 2022년 10월 기준 서울에서 일하는 급식노동자 1명이 책임지는 학생의 수는 무려 125명이다. 인력을 더 늘려야 하지만 빠져나간 인력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정흥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현행 급식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만 전국적으로 4734명의 급식노동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기는커녕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포럼에 참여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최민 활동가는 '높은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이 인력충원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이것이 다시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급식노동자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지난 4월 26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중학교에서 급식판 위에 밥과 국 깍두기, 순대볶음만 있는 사진이 올라와 부실급식 논란이 일었다. 서초구에 소재한 이 중학교는 급식노동자 2명이 1000명이 넘는 학생의 급식을 책임지고 있다.
학교급식 노동자의 노동환경문제는 오래된 문제이다.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오민애 변호사는 학생의 영양과 급식의 질 향상에만 초점이 맞춰진 학교급식법을 학교급식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학교급식운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참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한 시설투자를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에 폐암을 유발하는 조리흄을 포함하는 등 산안법과 산재보상법도 개정해야 한다. 모두 김용현 학생이 말한 '당신',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답은 나왔지만 실행하지 않는다.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한 초등학생 정하진 학생은 '1억 같은 큰 투자'라는 슬로건이 적힌 그림을 출품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걸 급식노동자와 함께 생활하는 학생은 알고 국가는 모른다.
12월 6일 급식노동자들의 총파업
참다못한 급식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선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전국여성노동조합으로 구성된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10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12월 6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학생들의 밥을 볼모로 파업을 벌이지 말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학생들을 볼모로 삼은 건 노동자들이 아니라 국가다. 국가는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좋은 밥을 제공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묵묵히 밥을 짓게 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아이들의 밥을 짓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갈아넣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인질로 삼아 처우개선과 인력충원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급식노동자들에게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그들이 만든 밥을 먹고 자랐다. 이젠 학교가 아닌 노동조합에서, 급식노동자들이 해준 밥을 먹는 학생이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됐다. 급식 아주머니가 아니라 동지에게, 감사인사가 아니라 '투쟁'으로 연대의 인사를 전한다. 12월 급식노동자의 파업에 모든 시민이 급식노동자에게 연대의 인사를 전해주시길 호소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용균재단 이사이자 공공운수노조 노안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박정훈 님이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