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속 의료 대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의료 개혁에 대한 논의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근거 없는 '2000명 증원'을 둘러싼 논쟁과 의료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의료는 모두의 권리이자 복지다. 지역의료, 공공의료, 일차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앞으로 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물어본다.[기자말] |
10월 30일 조승연 인천의료원장과 공공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인천의료원장으로 있는 조승연입니다. 2010년부터 쭉 인천의료원 원장직을 맡아오다, 중간에 성남의료원 초대원장으로 일했고 2018년에 다시 인천의료원장을 맡았습니다. 35개 지방의료원 연합단체인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공공의료 확충강화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외과전문의입니다."
- 현재 한국의 공공의료나 공공병원 현황이 대략 어떠한가요?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공공병원의 현황은 매우 취약합니다. 통계로 봐도 2022년 기준 전체 의료기관 중 5.2%, 병상 수 중 8.8%를 차지해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꼴찌입니다. 일본의 공공병원 비율이 20% 가까이 되는데, 병원 자체의 규모가 커서 해당 지역 보건의료 시스템의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미국도 휘황찬란한 사립병원들이 아주 많지만, 그 기반에는 굉장히 튼튼한 공공병원들이 있어요. 공공병원들이 지역의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므로 미국의 의료가 유지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은 대학병원 몇 개를 빼놓고는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기 어렵습니다. 인력도 적고 하다 보니 대도시 같은 경우는 특히 존재감이 없죠.
올해도 사실은 지금 큰 걱정이에요. 코로나19에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 전담병원으로 운영된 이후 지금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들 재정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병상가동률도 낮아졌고요. 올해까지는 손실보상금으로 버텨도 내년부터는 인건비도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한 지자체에서는 구조조정을 하거나 폐쇄, 매각, 위탁 등의 시도들이 나타날 수 있어요. 그래서 내년 전반기가 아마 위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공공병원은 한국 의료에 있어 어떤 존재인가요?
"일단은 이제 공공병원은 공공의료의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질병과의 전쟁,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정규군 같은 존재죠. 아무리 돈으로 용병을 수입해 온다 한들 전쟁에서 이기려면 튼튼하고 기반이 닦인 정규군이 중요합니다. 공공병원이 강할수록 정부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실행할 수 있고, 그만큼 국민의 요구를 잘 반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때, 초창기에는 민간 병원들이 전혀 개입을 안 했기 때문에 공공병원들이 어쩔 수 없이 원래 환자를 다 내보내고 코로나 환자를 받았습니다. 민간병원들은 그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죠."
- 코로나19 시기에 공공병원의 희생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 정부가 의료기관에 8조 1400억의 코로나 지원금을 풀었는데 그중에 공공병원에 들어온 건 1조 5900억 원가량입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4조 9900억 원이 민간 병원으로 흘러갔어요. 둘을 합치면 6조 원이 넘는데 이 돈을 공공병원에 투자했다면 아마 이들이 질적으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됐을 거예요. 민간병원으로 들어간 엄청난 돈이 다음 제2의 팬데믹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하면 전혀 아니죠. 재정적인 측면에서 공공병원이 없으면 엄청난 비효율과 낭비가 초래될 거고, 그 비용 투자가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공공병원은 입지가 안 좋습니다.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단골들이 있어 운영됐어요. 하지만 코로나 때 거의 2년 이상을 급성기 진료를 접다시피 한 공공병원들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단골들이 다 떠난 거예요. 문제는 이런 오기 힘든 위치에 있는 병원에 새로운 환자들이 안 온다는 거예요. 허허벌판에 개업한 병원처럼 된 거죠. 또한, 코로나 때 민간병원은 인력을 감축해 예산을 아꼈지만, 공공병원은 인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이후 병원 정상화에 투입할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코로나 이후에 공공병원이 민간병원에 비해 회복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공공병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오히려 민간이 이익을 얻고 공공병원은 피해를 입었네요. 공공병원의 다른 역할도 있을까요?
"당연하죠. 공공병원이 병원 진료의 표준적인 모델을 제시해줘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과잉진료나 비급여 진료의 문제가 심각하죠. 특히 광범위한 실손보험으로 인해 비급여를 더욱 마음껏 활용합니다. 결국 공공병원들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적정 진료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봐요. '공공병원에서 하지 않는 거는 나쁜 진료야'라는 프레임을 만들 수가 있어요.
민간 병원이 공공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개념적으로는 분명히 맞는 말인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민간병원의 이익추구적 성향을 당장은 개선하기 어려워요. 공공병원들을 제대로 키워서 롤 모델을 만들어내고 의사들이 근무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 좋은 사람들이 모이게끔 하는 것도 민간기관을 공공적으로 이끄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공공병원이 겪고 있는 어려움 중 하나가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방만하다, 잘 안 돌아간다 등으로요. 이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국외 및 국내에서 공공병원이 진료의 질이나 효율성에 있어 민간병원보다 더 뛰어나거나 최소한 떨어지지 않는다는 연구가 다수 있습니다. 공공병원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말은 그를 관장하는 공무원들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얘기와 같아요. 1970년대 이전에는 공공병원이 강했는데, 1970년대부터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정부는 공공병원을 키우는 대신 민간병원을 지원했고, 그러다 보니 공공병원들은 점점 쇠락해 갔어요. 그 결과 국민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그런 취급을 받는 공공병원에 좋은 인력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공공병원의 오너십을 가진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죠. 정부가 마치 사돈 남 말 하듯 공공병원을 비난하고 그러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 공공병원에 닥친 어려움으로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병원에 대한 비전이 없는 것이에요. 공공병원이 앞으로 5년, 1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될 것인지 청사진이 없어요. 청사진은 물론 내부 조직원들이 만들기도 하지만, 정부나 시민사회에서도 제시를 해줘야 하는데 그에 대한 합의가 없습니다. 오히려 원장인 제가 어떠한 비전을 제시하면 공무원들은 갸우뚱거리고, 정치인들은 '돈 없어' 그러고, 시민들은 무관심해요. 현실적인 문제들이 거기서 다 나타납니다. 공공병원에 항상 최소한의 투자만을 하고 새로운 변화를 엄청나게 거부하죠. 민간 병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병원의 규모를 키우고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잖아요. 자꾸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재정 문제가 제일 어렵습니다. 재정 문제를 극복하려면 환자 수를 늘리거나 이익을 늘려야 되는데, 지방의료원들이 이런 규모와 인력과 입지 조건을 가지고는 환자를 늘릴 방법이 없어요. 입지가 안 좋으니 병원 이용자들이 오기 어렵고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태생적 한계를 안고 계속 경영 개선을 외쳐봐야 어렵죠. 병원을 지을 때도,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은 장소에 지으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것도 정부의 책임입니다."
- 비전이 없고, 정부도 정치인도 시민들도 관심이 없는 게 문제로 보이네요.
"정부가 공공병원을 볼 때 비전과 사명을 만들어놓고 그에 필요한 재정은 무조건 지원을 해주는 게 맞죠. 지금 정부가 공공병원을 보는 시각은 민간 병원과 같은 개념에서 머물러 있어요. 어느 지방의료원에서 말이 나오고 있는 위탁 같은 경우, 군대의 역할을 민간경비업체에 맡기겠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지방의료원이 규모확충을 위해 인력과 재정 지원을 요청하면, 지자체에서는 환자부터 늘리라고 얘기합니다. 의사도 채용하고 시설이 보강되어야 환자가 늘 수 있지요. 해결이 어려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어요.
또한, 지자체장 선거할 때마다 공공병원에 대한 입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문제예요. 공공에 개념이 있는 지자체장이 오면 공공병원을 지원하다가 지자체장이 바뀌면 다시 원점이 되기도 해요."
-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공공병원이 좌우되는 측면이 있어 아쉽습니다.
"정치인들이 공공병원을 우습게 본다는 뜻은 시민들이 공공병원을 우습게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정치와 시민은 같이 발전합니다. 공공병원이 내 병원이고, 이 병원이 발전해야 시민들이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는 시민들이 매우 적어요. 그런 시민사회를 설득하고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될 텐데,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공공병원을 짓고 제대로 만드는 것이에요. 일단은 뭔가 분명해야 시민들이 관심 가지니까요. 성남시 같은 데가 시민운동을 통해서 병원을 지은 경험이 있는 곳이지요."
- 인천의료원이 지역 사회에서 공공병원으로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대도시와 지역에 있는 공공병원은 많이 달라요. 군 단위의 지역에서는 공공병원이 2차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인 경우가 있어요. 반면 대도시에 있는 공공병원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수준이에요.
대신 도시의 공공병원들은 외국인이나 의료급여 환자들 등 취약계층들에 대한 진료를 많이 합니다.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환자들이 우리 병원에 많이 오시는데, 민간 병원에 가면 비급여 진료가 포함돼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해서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비 감면 혜택사업도 많이 있습니다. 의료분야에서 사회적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셈이지요.
또한 전국을 70군데로 나눈 중진료권에 책임의료기관을 선정해서, 지역보건의료기관과 연계 및 조정을 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 공공병원이 있는, 또는 없는 한국 의료의 미래는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한국사회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잖아요. 정부가 이를 해결하고 보건의료를 제대로 방향 잡는 데 도구가 필요합니다. 행안부가 화재를 잡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소방서이듯이, 보건의료의 중심은 공공보건의료기관이 될 것입니다. 국립대병원도 필요하고, 지방의료원도 필요하고, 보건소도 필요하고, 1차 의료기관인 공공의원까지도 필요할 수 있어요. 의료교육기관인 공공의대도 물론 필요하고요.
지금 지방의료원들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역을 민간 영역이 담당하죠. 민간 영역은 수익성이 떨어지면 안 하므로 응급실 뺑뺑이 이런 게 나타나는 거예요.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치적, 사회적 역량을 포함한 모든 역량이 모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지표로 공공병원을 발전시키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수를 늘리는 것이 될 수 있어요. 공공병원이 지금처럼 망가져 가면은 백약이 무효일 거예요."
- 오늘 말씀 중에 특히 비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기억에 남네요. 현재 상황에서 나아가 공공병원의 미래를 그리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주역이 될 공공병원이 더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