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해 단풍이 예년만 못하다. 그럼에도 다채로운 단풍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유혹하는 곳이 있다.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조상들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까지 덤으로 들려주는 곳, 그곳은 바로 경상북도 문경과 충청북도 괴산을 연결하는 문경새재이다.
새도 날아 넘기 힘들다는 곳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고갯길이다. '새재'는 한자명 조령(鳥嶺)의 각 글자 鳥(새 조), 嶺(재 령)에 대한 우리말 뜻으로 읽은 것이고, 중요한 군사시설인 세 개의 관문이 문경 지역에 있기에 '문경'을 앞에 붙여 '문경새재'라는 명칭이 탄생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의 도로망을 정비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영남대로이다.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의 최단 거리로 개발된 도로였다. 그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가 바로 문경새재이다. 이 새재길은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관도(官道)로 지정된다.
경상도를 이르는 또 다른 말은 영남(嶺南)이다. 그 이유는 이곳 문경새재, 즉 조령(嶺)의 남(南) 쪽에 위치한 지역이라 하여 그렇게 붙여진 것이다.
이곳 조령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삼국시대 때 신라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을 막는 방어선으로 이곳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은 이곳을 놔두고 평지인 탄금대에서 왜군에 맞서 전면전을 벌이다 전멸하고 만다. 만일 신립이 이곳에 군사를 매복시켜 왜군 선봉 고니시 유키나가를 막았더라면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왜군 장수는 조선이 이곳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지 못한 것을 보고, 조선에 인재가 없음을 비웃었다고 한다. 뒤늦게서야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을 깨달은 조선 정부는 이곳에 세 겹의 저지선을 만들고 방어를 강화하였다. 그 첫 번째 관문이 주흘관(主屹關)이고, 두 번째 관문은 조곡관(鳥谷關), 세 번째 관문이 조령관(鳥嶺關)이다.
조선 초기에 이 길은 관리들의 길이었다. 교통과 통신시설이 미비한 시절, 중앙정부는 이곳에 세 개의 원(院)을 두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조령원(鳥嶺院)이다. 관리들이 쉬어갈 수 있는 숙박시설인 셈이다. 조선 후기에는 선비는 물론 장사꾼들도 이곳에서 묵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새재길에는 교귀정(交龜亭)이 있다. 새로 부임하는 경상감사가 전임감사와 인계인수하는 교인식(交印式)이 이루어진 장소다.
또한 길 주변에는 관리들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바위 위에 새겨진 공적비도 심심찮게 보인다. 얼마나 많은 관리들이 이곳을 지나갔을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일반 백성들에게 이 길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는 유생들이 주로 이 길을 택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은 세 곳이 있었는데, 조령(문경새재) 외에도 추풍령과 죽령이 그것이다.
이 세 개의 길 중 과거 보러 올라가는 선비들이 가장 으뜸으로 치는 길은 바로 조령이었다. 가장 험준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가장 인기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험 보러 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죽령으로 가면 '죽죽 떨어질 것' 같고,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 낙엽처럼 떨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경새재는 말 그대로 '경사스러운 소식(慶)을 듣고(聞), 새처럼 날아오를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에 이곳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문경은 영남의 인재와 문물이 모여드는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유생들이 걸었던 옛 '과거(科擧) 길'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책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작은 돌들이 쌓여 큰 바위를 이룬 것이다. 과거에 급제하기를 소원하는 작은 돌을 놓으며 기도 올렸을 유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곳은 골이 깊고 험하여 산적들도 많았다고 한다. 최근인 1980년대까지도 산적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 재를 넘을 때에는 여러 사람이 항상 함께 모여서 갔다 한다.
11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날씨가 따뜻한 탓에 단풍이 예년만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문경새재는 예외인 것 같다.
직접 가보니 빨갛고 노란 채색옷을 입은 나무들로 장관이 연출된다. 또한 고풍스러운 성벽과 주변의 기암괴석들이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과 축제가 끝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4개의 대형 주차장이 잘 준비되어 있었고, 식당은 물론 편의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관광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거기에다 문경의 자랑거리인 감홍(甘紅) 사과가 외지인의 발길을 잡는다.
제 1관문을 조금 지나면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이 나온다. 이곳은 '태조 왕건'과 같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된 곳이다. 제 1관문에서 제 2관문까지는 약 3km 정도이다. 이곳까지는 전동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제 2관문에서 제 3관문까지는 약 3.5km이다.
왼쪽 계곡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쉴 새 없이 흐른다. 몇 백 년 전 여기를 지나는 나그네가 그의 지친 발을 담그고 있었을 계곡이다.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한양을 향해 가고 있었던 그가 품었던 꿈이 단지 일신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굴곡진 우리 역사를 수백 년 동안 지켜봤을 이 문경새재길이 이 가을의 단풍처럼 아름답게 길이 보전되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