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특별법은 과거사 청산 모범사례로 나아가고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국회 토론회에서 제기되었다. 이 같은 문제제기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2대국회 제주4·3특별법 개정 2차공동토론회'에서 제주4·3범국민위원회 백경진 이사장에 의해 제기되었다.
국회 위성곤·김한규·문대림·김정호·한준호·정춘생·신장식 의원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연구소, 제주도민연대, 제주민예총,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범국민위원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공동으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22대 국회,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2차 공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제22대 국회에 발의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아래 '4.3특별법') 개정안의 주요쟁점과 추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쟁점들'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는데, 주요 쟁점들로 ① 정명, 제주4·3에 대한 정의 ② 피해범주의 확대 ③ 희생자의 배제 문제 ④ 군사재판과 특별재심 ⑤ 왜곡비방죄 신설 ⑥ 가해자 상훈박탈 ⑦ 의료복지재단 ⑧ 4·3트라우마센터 ⑨ 위원회의 투명성 확보 ⑩ 신청인보호와 권리행사기간 등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제주4.3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 규정 신설과 더불어 상훈 박탈과 국립묘지 안장 배제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승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5.18특별법은 왜곡비방의 조사 대상을 규정하고 5.18민주운동법은 처벌 규정을 도입했다"며 "반면 제주는 독자적 처벌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역사적 진실과 법적인 평가를 왜곡하거나 특정한 피해자나 집단의 인간존엄성을 부정하는 부인주의(negationism)에 대해서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한 "4.3에 대한 정치적·법적 평가가 먼저 확립된 이후 상훈 박탈도 가능하다"며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명령한 지휘자에 대한 상훈 박탈을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 교수는 "제주4·3위원회의 초기 조건 중 헌법재판소의 2001년 결의는 위원회의 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강산이 여러 차례 변했다. 각급법원은 그 후 부역자든 좌익이든 자의적 약식 처형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해왔다. 따라서 위원회의 결정이 이러한 피해자 권리와 국가책임을 인정한 판결의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엄중히 감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위원회가 진실규명의무를 저버리고 각하결정이나 진실규명불능결정을 내린다면 한국정부가 비준·동의한 UN 강제실종협약상의 국가의무(특히 제12조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피해자는 강제실종위원회에 집단적으로 청원할 수도 있고 UN강제실종위원회도 방문조사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밖에 위원회의 정치적이고 차별적인 결정은 새로운 인권침해에 해당하므로 배제된 피해자는 기존의 유엔인권이사회나 자유권위원회에 청원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주제발표에 뒤이어 토론이 이어졌는데, 백경진 제주4·3범국민위원회 이사장은 "제주4.3특별법은 과거사 청산 모범사례로 나아가고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로 토론에 임했다.
백 이사장은 먼저 특별법의 목적 조문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법 제정당시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돼 있고, 개정 특별법의 목적 규정에는 위와 같은 사항 외에도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목적으로 추가됐다고 했다. 그는 "목적에 규정된 국민화합을 이루려면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이사장은 또한 "법률의 목적 규정에도 지금까지 시행된 내용에서도 과거사 정리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정의실현(가해자 처벌)이 누락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제1조(목적)에 '정의로운 과거사 청산' 또는 '정의 실현'이 추가되고, 별도의 조항에서 정의 실현 조치가 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이사장은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가해자 처벌이 없는 상태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면서 그 사례로 ▲ 이승만의 동작동 현충원 안장, 이승만 기념관 설립 시도, 광복절 <기적의 시작> 방영 ▲ 조병옥이 천안시에서 호국인물로 선정되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거나 ▲ 김두찬 이름을 딴 해병대 교육관 이름 명명했다가 4·3단체들의 항의로 취소 ▲ 박진경에 대한 현충원에서의 거대한 추모행사 등을 예로 들었다.
백 이사장은 이재승 교수가 발제에서 제기한 10 가지 쟁점사항에 대해서는 동의함을 보이면서도 특히, "제주4.3 왜곡비방행위에 대해서는 해당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과 더불어 공직자 임용 시 적용 기준, 특히 4·3위원회 자격 조건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상징적 처벌로서 상훈박탈 및 국립묘지 안장배제를 주장했다.
그는 또한 '반인권적 국가폭력 행위에 대한 시효 배제'와 관련하여 21대 국회에서 시효 배제에 관한 법률들이 발의되었으나, 폐기된 바가 있으니 이번 4·3특별법 개정안에 이러한 내용을 포함시켜 "진상조사,명예회복-정의실현(처벌, 사과 등)-배보상-화해와 기억-재발방지의 과정이 상설적으로 진행되도록 규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했다.
백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미국의 책임문제와 관련하여 '4·3의 정의' 부분에 최소한 "미군정하 1947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4·3사건..."로 명시하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4·3사건 처리가 과거사 청산의 모범사례라고들 한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으며,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고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재심 등 다른 과거사 사건들과 비교해 보면 대단한 성과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앞서 있기 때문에, 모범사례라고 불리기 때문에 기본을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밖에도 박현민 변호사, 김윤숙 제주4·3희생자유족회 여성 부회장, 고의숙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부위원장, 김지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국제위원장, 안효철 행정안전부 제주4·3사건처리과장 등이 토론에 임했다. 대부분의 토론자들이 발제자의 주제발표에 동의했으며, 특히, 김윤숙 제주4·3희생자유족회 여성 부회장은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유족의 입장은 제주4·3사건의 정의와 4·3왜곡 및 명예훼손 처벌에 관한 규정 신설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또한 고의숙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22대 국회에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이 입법화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제주4·3의 완전하고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막바지 4·3특별법 개정 작업에 22대 국회는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지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국제위원장은 "제주4·3트라우마 치유사업과 트라우마센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연구 및 조사 기능의 강화, 제주4.3의 국제화와 지속가능한 연구 체계의 구축 등을 주장했다.
정부측에서 참석한 안효철 행정안전부 제주4·3사건처리과장은 "제주4·3사건 보상과 관련하여 매달 약 200명에 대한 보상 심의를 하고 있다. 광범위하고 신속한 보상을 원하지만 아직까지도 법이나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법이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 재정상황과 연계해서 제주 분들의 염원을 담아서, 잘 소통을 해서 가능하다면 치유·보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과장은 이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다. 이번에 저희가 전체 회의에 그 안건으로 올려놨는데 이번에 사실혼 관계, 사후양자에 대한 요건 등이 작년에 법안심의과정에서 빠졌다. 그래서 세칙에 담아서 해보려고 하는데, 문제는 그 세칙에 들어가도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그런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을 법률개정안에 담을 수 있도록 검토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국회 위성곤·김한규·문대림·김정호·한준호·정춘생·신장식·이훈기·부승찬 의원 등이 참석하여 각각 인사말을 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4.3 희생자 유족은 "이런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바람직한데, 지금 현재 법안으로 발의된 국회 위성곤·김한규·문대림·정춘생 의원 등의 4.3특별법 개정안에서 공통점이 무엇이고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규명하여 종합적으로 하나의 법률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다음 기회에는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