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터 인근 부지를 매입해 북카페로 꾸미는 방안을 추진한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책 읽는 광주'를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다. 한강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딴 기념물이나 건축물을 사양하고 있어 '한강'이라는 이름보다 5·18을 세계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 '소년이 온다'를 부각시킨 이름의 북카페를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북카페를 건립하는 목적에만 치중돼 조성 이후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은 이뤄지지 않아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4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시는 광주 북구 중흥동에 148㎡(약 45평) 규모의 빈집 터(나대지)를 4억8000만 원에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부지 매입이 완료되면 1~2년 내에 2층 규모의 북카페의 문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광주시는 한강 작가의 부친인 한승원 작가와 면담에서 북카페 조성을 희망함에 따라 인문도시 광주의 저변을 확대하고, 인문 가치 발견·시민 공유를 위한 북카페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당 부지는 한강 작가의 생가도 아니고, 단순히 유년시절 거주지와 인접한 지역에 불과해 상징성이나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강 작가의 생가도 아닌 단순히 유년시절 거주지와 '가까운 땅'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지를 매입하는 것은 의미도 퇴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광주시의 매입 결정 과정에서도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생가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부지 매입은 내년 본예산에 편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비비로 급히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 예비비는 재정활동 수행 중 예측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지출소요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한 예산인데 생가도 아니고, 소년이 온다에 소개된 내용과 밀접한 관계도 없는 부지여서다.
김나윤 광주시의원은 "노벨상 자체가 상징성이 크니까 북카페를 만드는 사업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한강 작가 생가도 아니고 인근 부지에 예비비를 투입하는 것은 목적에 맞지 않다"며 "본예산에서 예산을 세워도 충분한데 예비비를 투입할 정도로 급하면 생가를 사면 되는건데 너무 빨리 추진을 이런식으로 할 정도로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납득이 안간다"고 꼬집었다.
생가라는 상징성이 없는 만큼 접근성이 좋은 장소를 고민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김 의원은 "한강 작가 생가에 북카페 만든다고 하면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라면 좋은 환경에 적절하게 만드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며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빠르게 추진하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한강이라는 이름은 계속 남을테니 조금 더 신중하게 사업을 구상해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광주시는 이번 부지를 북카페로 꾸며 책 읽는 광주를 구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단순히 건립하는 것에만 목적이 치중돼, 이후 운영될 프로그램이나 지속 가능한 활용 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학적 가치를 기념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이나, 이를 지속 가능하고 실질적으로 시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장기적인 운영 계획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명분만 쌓고, 시민이 찾지 않는 건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조성 이후 활용 비전이 명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 동구에서 '소년의 서'를 운영하고 있는 임인자씨는 "한강 작가 수상을 기억할 만한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왜 하는지가 성찰이 되고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든다"며 "항상 보면 제일 먼저 건물을 짓고, 그러고 나서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사업이 항상 이뤄지다보니 본질과 다른 것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막연하게 좋고 기쁘고, 기념하고 이런거를 넘어서 어떤 의미인가를 제대로 간주하면서 사업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생가가 아니라면 대체부지가 소년이 온다 책에 나온 중흥동의 풍경들을 생각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단순히 빈땅을 찾아서 한 것은 취지와 맞지 않다. 그런 맥락이 없이 추진했을 땐 졸속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광주시는 생가는 소유자가 매도 의사가 없어 대체부지로 찾은 사업 부지가 거주지와 25m 근거리에 있고, 철거비 등 추가비용 없이 즉시 사업이 추진 가능한 곳인 만큼 예비비를 투입해 시급히 땅을 매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내년에 설계하고 공사하려면 땅이 확보가 돼야 하는데 부지 매입이 가장 시급해서 예비비를 투입하는 것이다"며 "거주지 땅은 못사도 사업 부지는 한강 작가가 살았다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이 있는 것으로, 여러 상황이 있지만 가깝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고 밝혔다.
이어 "건물을 잘 지어놓으면 10평짜리라도 전국의 명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상징성이 있고, 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보러 오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땅도 안산 상태로, 지금 단계에서는 어떻게 절차도 말할 수도 없다. 일단 지어놓고 보잔 식으로 건물 짓는 것이 아니라 멋있게 꾸미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끔 계획을 하고 건물을 지으려고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