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제(4일) 대통령실에 다녀왔다." -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저는 몰랐다." -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국민의힘 '투톱'이 또다시 충돌 양상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패싱(무시·폄훼)' 논란이 불거지며, 친한계와 친윤계 사이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친윤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에 다녀왔고, 그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이 발표된 것으로 전해진 탓이다. 이 과정을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는 전해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며, 용산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쓴소리'하는 당 대표를 무시한 채 원내대표와의 소통을 과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용산 대통령실에 가서 '기자회견 일찍 하자' 건의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일 오전 당 원내대책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당에서도 이런저런 말씀들이 계셔서 제가 어제 대통령실에 다녀왔다"라며 "(윤 대통령에게) 말씀을 전했고, '가급적 국민과의 소통의 기회를 일찍 가졌으면 좋겠다' (라고 건의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당초에 11월 말경 (기자회견) 이야기가 나와서, 그거보단 훨씬 이른 시점이면 좋겠고, '가급적 해외 순방 이전에 그런 기회를 가지면 여러 사안에 관해서 아마 국정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이런 말씀드렸다"라며 "참모진도 같은 건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고심하시다 어젯밤에 '7일 대통령 대국민담화 겸 기자회견'을 하시는 것으로 최종 결심을 하셨다"라고 설명했다.
4일 늦은 밤, 갑작스럽게 대통령실에서 공지가 나오면서 긴급하게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예고한 배경에 여러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한동훈 대표의 공개적인 요구사항이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는데, 실제로는 한 대표가 아니라 추경호 원내대표의 제안이 먹힌 셈이다.
현장에서 대통령 기자회견과 한동훈 대표의 요구가 별개 사안인지 질문이 나오자, 추 원내대표는 "제가 해석할 영역은 아닌 것 같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다만, 이례적으로 밤늦게 기자회견 사실이 공지된 데 대해서는 "저는 어제 오후에 갔었고,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고, 최종적으로 대통령께서 결심하시고 국민들게, 언론에 알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용산 대통령실이 공지를 하기 이전에 추 원내대표에게 미리 귀띔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추 원내대표가 "여러분(기자)들한테 알리기 전에, 저한테도 연락이 있었다"라고 밝힌 것. 반면, 한동훈 대표는 사전에 이를 전해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 대해 "그건 제가 정확히 알지를 못한다"라며 "여러분께 알린 시점에서 아마 그렇게 멀지 않은 시점에 최종 확정해서 언론에 공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확한 건 대통령실에 취재를 해보시라"라고 에둘러 답했다.
특히, 추 원내대표는 한동훈 대표의 요구사항 중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해야 할 만한 사안이 무엇인지 묻자 "누가 무슨 제안을 했다고 해서 거기 대해서 하나하나 '답을 한다, 안 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한 대표의 요구사항에 대통령실이 답할 의무는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한동훈 "당의 중심이 당 대표가 아니라 원내대표? 착각이고 잘못된 말"
이날 국민의힘 평생당원 초청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한동훈 대표는, 추경호 원내대표의 용산 대통령실 방문 사실과 조기 기자회견 건의에 대해 "저는 몰랐다"라고 답했다. 기자회견 공지에 대해서도 "언론에 보도될 즈음에 전달받았다"라며 추경호 원내대표가 전달받은 때와는 다소 시차가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패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데 대해서 질문이 나왔으나, 한 대표는 "제가 언급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을 아꼈다. 관련해서 비슷한 질문이 반복해서 나왔지만, 한 대표는 "충분히 말했다고 본다"라고 추가적인 답변을 피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가 '당의 중심에는 추경호 원내대표가 있다'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 기자들이 묻자 "그게 만약에 '당 대표가 아니라 원내대표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착각이고 잘못된 말"이라고 직격했다. "그렇지만 그런 취지겠느냐, 설마"라며 "그러진 않을 것 같다"라고 덧붙이기는 했다.
또한, 대통령실에서 '인위적으로 인적 쇄신을 하지는 않겠다'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던 데 대해서 지적이 나오자 "인적 쇄신은 원래 인위적으로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인적 쇄신이라는 것은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인위적이니 아니니 가를 문제가 아니다. '왜 해야 되느냐'에 대한 국민적 필요성과 공감이 충분히 있다"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의 내용과 관련한 질문에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담화가 되기를 기대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후 구체적인 물음표가 계속 던져졌지만, 한 대표는 이 대답을 반복해 상기시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지층에 안 좋은 시그널" - "전향적 카드 나오기 어렵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압도적인 표심으로 선출된 당 대표,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재보궐선거에서도 성과가 좋았고, 지금 전반적인 여론도 '용산과의 디커플링'을 이야기하는 상황"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여기에 올라타도 반등이 될까 말까인데, 지난 면담 때와 똑같은 행동을 용산에서 보이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윤 대통령이 1차적으로 해야 할 것은 민주당 지지층은 몰라도 중도 내지는 보수 지지층의 불안감을 종식하는 것"이라며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해야 하는데, 이처럼 지지층에게 안 좋은 시그널을 보내는 게 맞겠느냐?"라고도 반문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한동훈 대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토로하고 표출한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보았을 때 오는 7일에 있을 기자회견에서도 전향적인 카드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엄 소장은 "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의과대학 정원 문제 등을 한동훈 대표가 언급하면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더 급락했다는 인식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하면서 국정 지지도에는 악영향을, 당 지지율은 선방하는 결과를 낳았다"라며 "용산에서는 불만이 있지만, 역으로 여당 지지율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보수 진영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내고 있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엄 소장은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국정 지지도가 조금 회복되겠지만 크게 반등하기는 어렵다고 보면서 "차라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서로 견제하면서 경쟁하는 게 오히려 여권에서는 좋을 수도 있다. 여권 내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쇄신 경쟁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