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 갈 때면 마음이 여유로워지면서 괜스레 흐뭇해진다. 오히려 결혼식 당사자일 때는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말이다. 누군가의 첫 발걸음을 응원하기 자리이기 때문일까. 앞으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힘껏 박수를 친다.
축하하는 마음에 축의금이 빠져서는 안 된다. 축의금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축하 방식이다. 기사에는 자주 '축의금 논란'이 뉴스로 나올 정도다.
축의금은 대체 얼마를 내야 할까. 마음껏 박수를 치듯 마음껏 두둑하게 챙겨주고 싶으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어쩌면 마음 씀씀이가 가난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가보다 더 급하게 뛴 예식장비
얼마 전에도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 결혼식에 와줬던 손님이기도 하고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관계이기도 했다.
내 결혼식에 와준 손님의 결혼식이라 축의금 금액도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었다. 받은 만큼 돌려줬다. 받은 것에 조금 보태어 돌려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아직은 그런 마음씨가 못되나 보다.
그런데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는 길에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 한구석을 축의금 금액이 자꾸 간지럽히는 기분이었다. 필자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나는 2019년에 결혼했다. 어느덧 5년이 흘렀다. 5년 동안 오른 물가를 고려하지 못했다.
한 사람에게 두 번 보낸 축의금
5년 동안 물가는 얼마나 올랐을까? 통계청에서는 소비자물가조사를 통해 매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한다. 아직 2024년 소비자물가지수가 나오지 않아 2019년에서 2023년까지 4년간 물가상승률을 계산해 봤다. 약 15% 정도 올랐다.
그렇다면 5만 원의 15%를 더한 6만~7만 원이 적당한 걸까? 필자는 경조사비를 5의 배수로 한다. 5의 배수가 아니면 알레르기라도 생긴 듯 이상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결혼 당사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서는 축의금을 한번 더 송금했다. 결혼을 두 번 한 것도 아닌데 한 사람에게 두 번이나 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물가는 15% 정도 올랐는데 결혼 비용은 얼마나 올랐을까? 결혼정보주식회사 듀오는 매년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2024년 예식홀 비용은 2023년 1,057만 원에 비해 약 21% 정도 증가한 1283만 원이다.
2024년 웨딩패키지 비용도 2023년 333만 원에 비해 약 8% 정도 증가한 360만 원이다. 1년 만에 예식홀은 21%, 웨딩패키지 비용은 8% 올랐다. 예식홀 비용 1년 상승률이 4년간 증가한 물가상승률보다 높다. '웨딩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결혼과 관련된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결혼식은 코로나 전과 후로 구분돼. 코로나 전에 결혼한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거야."
최근에 올해 결혼한 친구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다. 서울 도심지를 벗어나 경기 근교 지역으로 가면 가격은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소회를 나눴다.
친구는 서울권을 기준으로 공장식 예식장은 식대만 5만~6만 원대, 야외와 같은 특별한 곳은 식대만 8만 원 이상이라고 했다. 결혼식 비용이 증가하는 속도가 물가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받은 만큼만 돌려주었다가는 염치없는 이가 되기 십상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일하면서 버는 노동 수입이 오르는 속도보다 물가 속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물가 속도보다 결혼식 비용이 오르는 속도가 빠르다니. 마음 맞는 짝을 만나 결혼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마음만으로 할 수 없는 게 결혼식이라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결혼식 비용 때문에 결혼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는 청년들의 푸념도 이해가 되고, 결혼식을 준비하며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여러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부부의 이야기도 공감이 된다.
물론 식을 올리지 않고 가정을 꾸려가는 방법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부부들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결혼 문화를 보면 결혼이 단순히 둘만의 일은 아니다. 집안의 거사다. 우리 부부도 우리 의지와는 달리, 집안 사정으로 인해 예식을 올렸다.
내년 결혼을 앞둔 친구도 있다. 이 친구는 예식장 상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예식장을 결정하고 예약하기 위해 예식장 플래너에게 재방문했다. 그런데 첫 방문에 이야기한 금액과 전혀 다른 금액을 제시했다.
플래너는 기한을 정해두고 그때까지 예약할 경우 얼마에 해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지만, 막상 예약하려고 하자 시치미를 뚝 뗐다. 계약서를 작성한 상태가 아니라 별다른 대처를 할 수 없었을 뿐더러 당시 마음에 드는 예식장이 많지 않아, 그 예식장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5년 전 필자의 결혼 준비 과정을 돌아보면, 친구의 일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 부부도 당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 몇 가지 있었지만 결혼식은 일생일대의 한 번 있는 것이니, 크든 작든 갈등을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기보다는 부드럽게 넘어가려고 했다.
저출산만큼 결혼을 위한 지원도 있어야
국민권익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3월 접수된 '웨딩업(결혼 관련 서비스업)' 민원이 전년보다 약 32% 상승했다. 특히 예식장업 민원이 가장 많았는데 전체의 50.9%를 차지했다. 할인 금액에 판매하고 계약 해제 위약금은 정가로 산정하는 편법, 본식 끼워 팔기, 보증 인원에 소인 불포함 등 다양한 유형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에서 여러 모양으로 결혼식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결혼 서비스 제공업자가 가격표시 대상, 항목, 방법 등을 의무화하는 '가격표시제'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지자체가 공공예식장을 대관해 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북서울꿈의숲, 선유도공원, 세종문화회관 등 다양한 공공공간을 무료 혹은 저렴한 금액으로 대관하고 있다.
문화의 변화로 인해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경제적인 이유로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결혼 시기가 늦춰지거나 못하는 사람도 늘었다.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결혼이 어려워지면 당연히 저출산 현상이 뒤따라올 수밖에 없다. 저출산이 국가 중대 문제라면 결혼을 위한 지원 방안도 다각도로 준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결혼식은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부부로서 약속하는 공식적인 자리이지만, 결혼식 준비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부부는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한다. 예식장 분위기, 대관시간, 예식 구성 등을 함께 결정한다.
우리 부부는 긴 시간 동안 대관할 수 있는 장소로 예약했다. 발걸음을 해준 손님들의 얼굴을 보며 여유롭게 인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혼인서약서를 작성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서로의 생각을 잘 버무려 결혼식장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낭독했다. 결혼 준비 과정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이해하고 확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사랑을 권하지만, 실은 연애마저 포기하는 시대다. 더구나 코로나 이후엔 예식 비용이 전보다 훨씬 올랐다.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겠는가.
애초에 돈 때문에 의지부터 꺾인다는 게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려고 소망했던 이들이 돈 때문에 다시 둘로 쪼개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보다 돈이 강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brunch.co.kr/@rulerstic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