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자취생들이 먹는 아침은 기성세대의 ‘아침밥’과는 다르다. 바쁜 사회초년생들에게 아침 식사는 건강 챙기기의 일환일 수도 있고, 소소한 즐거움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해장과 재정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리는 간단해야 하고, 준비 시간은 짧아야 한다. 이 연재는 현대 자취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들만의 아침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즐거움을 어떻게 찾는지 보여준다. ‘극단 간편형’, ‘요리 매니아형’, ‘개성 취향형’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를 통해 자취생 MZ세대의 현실적인 아침 풍경을 담아내며, 그들만의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엿본다.[기자말] |
지난 시간, '요리 정성형' 자취생들의 아침 식탁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수많은 잔소리를 딛고서 자신만의 식단을 구축한 '개성 취향형' 자취생들의 식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의 부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과일덕후부터 오이 샌드위치까지, 취향의 진화
과일덕후 자취생들이 있다. 그들은 아침마다 파인애플, 딸기, 바나나, 청포도 등 과일을 꼭 식탁에 곁들인다. 어떤 날은 오로지 과일만 먹는다. 살면서 내 돈 주고 과일이라곤 사먹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꽤나 충격이다. 과일은 후식이지 않나.
끼니와 끼니 사이에 뭘 먹는 것을 안 좋아하는 난 자연스럽게 과일도 먹을 일이 없었다. 친구에게 왜 그렇게 매일 과일을 먹는지 물어봤다. 간단하고, 신선하고, 원래도 자연스러운 단맛을 좋아한단다. 오늘도 샤인머스캣을 씻어서 회사에 가져와 먹었단다.
원래는 아침을 먹는 타입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도 아침밥 먹고 가라는 부모님과 늘 실랑이를 벌였다. 성인이 되어 헬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왜 아침을 안 먹느냐는 PT트레이너의 질문에 밥을 안 좋아한다고 했다.
과일을 좋아한다면 그것을 아침으로 먹어도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 그 이후로 그녀는 몇 년째 과일을 아침으로 꾸준히 먹고 있다. 아침밥을 '먹어야하는 것'에서 '먹고 싶은 것'으로 바꾼 것은 과일 한 조각이었다.
한날은 다른 친구의 자취방에서 잤다. 일어나자 친구가 아침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오이와 딸기를 곁들인 크림치즈 샌드위치다. 난 기겁했다. 아침부터 이 무슨 해괴한 조합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재료가 오이였다. 그걸 또 뜬금없이 딸기와 조합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크림치즈까지 발라서 빈 속에 먹다니.
이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냐고 전현무가 '나혼자 산다'에 나와서 만들어 먹은 것인데 모르냐고 되묻는다. 영국에서 자주 해먹는 아침 레시피란다. 오이는 도저히 못먹겠다고 하자 친구가 딸기와 크림치즈만 넣고 샌드위치를 해줬다. 생각보다 산뜻한 걸.
집에 와서도 그 묘한 맛이 자꾸 생각난다. 다른 친구한테 '오이 샌드위치'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니 친구가 그것도 모르냐고 되묻는다. 자기도 오늘 아침에 해먹었단다. MZ세대에겐 아침 메뉴도 유행이 있나 보다. 독특한 식사도 개성이 되는 요즘이다.
난 음료가 맞는 사람이야, 마시는 아침의 자부심
음료로 아침을 시작하는 친구도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특정 브랜드의 카페라떼, 단백질 쉐이크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어릴 적 '선식 유행'에 갑자기 꽂혔던 엄마가 한 달 동안 매일 미숫가루만 타줬던 것이 생각난다.
빈 속에 카페인이나 유청 단백질을 먹으면 속이 안 쓰리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든든하게 먹으면 속이 무거워서 불편하단다. 과거엔 부모님이 하도 잔소리를 해 다른 음식도 먹어봤지만, 이상하게 자기에게는 밥이 안 맞는단다.
예전에는 자기가 한국인이 아닌가, 투정을 너무 하는 것인가 고민도 했다고 한다. "이거 아니면 안 돼, 저거 아니면 안 돼." 딱딱 맞게 가르치는 교육을 받은 것이 엊그제인데 당연히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다. 난 음료가 맞는 사람이야. 하도 특정 브랜드의 라테만 고집하는 친구는 이제 편의점 사장님이 알아볼 정도란다. 음료를 사러 가면 "오늘은 다 떨어졌는데 어떡하죠"라며 걱정한다.
다른 친구는 단백질 쉐이크 가루를 대용량으로 사놨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하다고 한다. 밥솥보다 큰 쉐이크통이 위엄 있다. 그 이외에는 아무 식재료도 없다. 참으로 심플한 주방이다. 초코맛 쉐이크를 흔들어 먹는 그의 모습에서 어릴 적 아침시간 우유에 제티를 타먹곤 신나하던 초등학생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시리얼 한 그릇의 정교함
시리얼을 밥보다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시리얼을 줄줄 왼다. 첵스초코, 오레오 오즈, 코코볼, 허쉬 초코 크런치…. 베이스 재료도 흰 우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트밀크, 요거트, 견과류…. 어떤 시리얼엔 어떤 조합이 맛있고, 어떤 것은 우유를 먼저 붓는 것이 맛있고 등등.
최근에는 부모님이 당 가지고 잔소리를 하는 통에 통곡물을 뭉쳐놓은 밀 시리얼에 무가당 요거트를 섞어 먹는 레시피까지 개발했다. 여기에 알룰로스를 듬뿍 뿌린다. 맛은 있으면서 당은 낮추고 위는 든든한 한 끼다.
시리얼 매니아들은 각자에게 황금 비율이 있다. 우유의 온도, 시리얼을 부숴 넣는 정도, 심지어 먹는 순서까지. 나는 시리얼이 대충 먹는 한 끼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깨졌다. 그들이 우유 그램수까지 재어가며 계량컵에 따르는 것을 보면 열성적인 식품연구원과 다를 바가 없다.
'개성취향형' 자취생들은 꼭 한 번씩 역경을 겪곤 한다. 주변 사람들이 잔소리하거나, 남들 먹는 것을 따라 먹다 체해서 가슴을 치기도 하고, 이런 자신이 돌연변이인가 싶어 인터넷에 검색하기도 한다. 이런 방황에도 꺾이지 않고 기어코 자신의 답을 찾아낸다. 그들은 이미 어른으로서 독립에 성공한 듯하다.
한 끼의 식사가 그의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시대다. 아침을 먹는 방식, 그릇을 고르는 취향, 음식을 담는 순서까지. 모든 것이 그들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MBTI보다 더 정확한 'FOOD' 유형. 이제 아침 메뉴를 묻는 건 곧 그 사람을 묻는 것과 같다. 오늘 하루 짬을 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오늘 아침 뭐 먹고 왔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