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을 발견한 뒤 사랑에 빠져 미국에서 하나 둘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먹는 한식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고, 한식의 기본이 되는 채소들을 농장에서 어떻게 키우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지난 봄에 미국에서 제빵사로 일하는 포레스트(30)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10월부터 11월까지 한 달 동안 백화골에서 팜스테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무려 7개월 전에 예약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래도 11월에 우리가 김장을 한다는 것을 알고, 김장의 전과정을 함께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국은 한국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나라다. 유행이나 사회 문화가 금방 금방 전파되고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김밥과 김치, 떡볶이,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이 최근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뉴스는 종종 보았기에, 포레스트가 만들어보았다는 한국 음식도 그 정도 수준일 줄 알았다. 그런데 농장에 도착한 포레스트와 직접 얘기를 나누어보다 깜짝 놀랐다.
"된장, 고추장, 간장은 한국 음식의 기본이잖아요. 그래서 모두 제가 직접 만들어보았어요. 된장을 만들 때는 콩을 끓이고 으깬 다음 메주로 빚었습니다. 도시의 아파트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나름 제한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볏짚을 구하지 못해 빨래줄에 메주 세 덩이를 메달아 베란다에 걸어 놓았어요. 이 모든 과정이 완료되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만큼 풍부한 발효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 깊은 풍미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특히 된장을 거르며 나온 집 간장의 맛이 훌륭했어요."
"고추장의 경우 메줏가루, 고춧가루, 엿기름을 가게에서 사서 조심스럽게 재료를 섞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3개월 이상 숙성시키니 맛이 나더라고요. 직접 만든 고추장은 슈퍼마켓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맛이 났어요.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세상에, 1년의 세월을 투자해 직접 메주를 빚어 된장을 만들 정도의 정성과 열정이라니. 지금까지 또 어떤 한국 음식을 만들어 보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더욱 입을 떡벌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 콩국수, 약과, 송편, 떡볶이, 쫄면, 비빔밥, 도토리묵, 오징어젓, 멸치볶음, 약식, 막걸리, 두유, 순두부찌개, 짜장면, 잡채, 호떡, 미역국, 보쌈, 김밥, 김치, 수제비... 지금 기억나는 것들만 얘기한 거고, 아마 더 많이 만들어봤을 거예요."
정확한 발음으로 한국 음식의 이름들을 나열하는 포레스트가 미국에서 요리해봤다는 한식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요즘 포레스트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 중에서 직접 장을 만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농장에서 포레스트에서 점심 식사를 부탁했더니, 맛있는 된장찌개와 채소전을 요리해주었다. 된장찌개 맛을 보니 역시 한두 번 끓여본 솜씨가 아니다.
한식은 정직한 음식, 요리하기 쉽지만 풍요로운 맛
"고향인 플로리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다가 학업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한 뒤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음식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친구의 소개로 떡볶이를 처음 먹어보고 이후 한식에 반해버렸습니다."
대학에서 중국어와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제빵과 요리를 좋아하게 되어 5년간 제빵사로 일했다. 피아노를 공부하며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과 친구로 지냈는데, 자연스럽게 한식을 소개 받고 좋아하게 되었다.
"한국 음식은 누구나 만들고 즐길 수 있습니다. 쉽게 요리할 수 있지만 매콤하고 다양하며 풍요로운 맛이 나요. 건강에도 좋고요. 한 마디로 말하면 '정직하다'고 할 수 있어요. 한식은 허세를 부리지 않아요. 예를 들어 서양음식 중에는 전문 요리사만 요리할 수 있는 어려운 요리라든지, 부자가 아니면 맛볼 수도 없는 음식들이 있는데, 한식은 대체로 요리법이 명쾌하고 누구나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음식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지요."
포레스트도 어릴 때는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 십대 시절까지만 해도 인스턴트 소스를 데워 스파게티를 만드는 것마저 두려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교에 다니며 독립해 살기 시작한 이후 요리를 시작했다. 다양한 레시피를 읽고 따라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제빵사 겸 요리사로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직업으로까지 삼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여러가지 한식을 맛보며 더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최근에 발견한 음식 중 하나는 고구마라테예요. 전통 음식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말 훌륭한 맛이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요? 항상 바뀌지만 지금은 비빔국수입니다."
미국에서 먹었던 한식과 한국에서 먹은 한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에서 고품질의 수제 장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김치와 장 만드는 유기농 농부가 되고 싶어
포레스트의 꿈은 플로리다의 고향 마을로 돌아가 유기농 농장을 차리고, 농장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이용해 미국과 한국 음식이 적절히 조화된 퓨전 농가 식당을 여는 것이다.
"앞으로 유기농 농부로 살고 싶어서 한국의 유기농장을 찾아왔어요. 땀흘려 농사지으며 작물이 자라는 것을 관찰하고, 자급자족 하며 신선한 채소로 음식을 만드는 일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김치 그릴 치즈 샌드위치처럼 한국 음식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식 음식을 판매하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제가 직접 재배한 콩과 채소들을 이용해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도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포레스트는 대부분의 한국 채소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국말을 조금은 하지만 유창하게는 못하는데, 채소 이름과 한국 음식 이름 만큼은 모르는 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함께 고구마, 가을무, 배추, 생강 등을 수확하고 한 해 농사 정리를 하고 있다. 자신의 관심사인데다 일머리가 너무 좋아서 척 보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해나갔다. 농사 일을 참 잘했다. 기후변화 때문에 한 해 농사가 힘들었는데 포레스트 덕분에 마무리를 즐겁게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막바지 농사 정리가 끝나면 우리는 포레스트와 함께 김장을 담글 계획이다. 한식에 관심 많은 미국 제빵사와 김장을 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된다. 몇 년 후 미국 플로리다의 포레스트 농장에 가서 맛있는 김치와 된장찌개 맛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대박난 김치 그릴 치즈 샌드위치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