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직업, 쿠팡 배달기사
나는 오랜 기간 쿠팡을 애용하던 회원이었다. 대형마트에 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쿠팡은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대안이었다. 없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빠르기까지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가끔 주말 없이 밤늦게 까지 돌아다니는 쿠팡 배송 트럭을 접하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오후, 빠르면 이른 아침에도 물건을 받을 수 있는 편리함은 정말 컸다. 그렇게 쿠팡은 오래전부터 내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내가 "쿠팡 없이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23년 10월, 쿠팡 배달기사가 극단적 근무 환경에서 일하다 사망한 후 국회 청문회에 나온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대표의 발언을 접하면서부터다.
"쿠팡의 새벽 노동에 종사하는 배송직들의 근로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원하지 않는 새벽 배송을 하는 경우는 없고 대부분 새벽 배송을 다양한 이유로 좋아하는 그런 기사 분들도 있기 때문에..."
과중한 업무 환경에서 시달리다 사망한 배달기사에 대한 쿠팡의 책임을 묻는 청문회 자리에서 그는 쿠팡은 책임이 없다는 자세를 보였다. '배달기사가 스스로 선택해서 그렇게 한 것 일 뿐 쿠팡의 노동 조건은 나쁘지 않다, 기사는 언제든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적절한 노동 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하는 그를 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적으로는 문제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쿠팡은 배달기사에게 극단적 조건의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처럼 뛰어야 겨우 배송 완료
쿠팡의 주장처럼 대리점과 계약해 배송 업무를 담당하고 수수료를 받는 쿠팡 배달기사(퀵플렉스)가 형식상으로는 개인사업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쿠팡 배달기사는 쿠팡의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받으며 일했고,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쿠팡은 업무 과중을 방지하기 위해 배달기사가 영업점과 업무량을 협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택배노조 쿠팡본부 강민욱 준비위원장은 이를 반박했다. 그는 필자와의 통화에 "모든 물량을 그날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을 수시로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업무의 일부를 줄이는 방법은 대체 인력의 적정 수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활용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배달기사가 업무량 조정을 위해 영업점과 협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유를 막론하고 '기한 내 배송완료' 하지 않으면 배송구역을 회수당할 수 있다는, 즉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중압감 속에서 배달기사는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정말 개처럼 뛰어야 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건을 분류하던 작업자가 과로로 쓰러져도 뒤돌아볼 틈조차 없던 것도 캠프라는 이름이 붙은 쿠팡 물류센터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쿠팡 시스템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정말 합당한 것인가? 이런 체제를 문제없다고 간주하는 법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나의 SNS 프로필의 "쿠팡 불매"라는 한줄 메시지 본 사람들로부터 "공감하지만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너무 어렵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만큼 쿠팡은 개인의 삶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쿠팡이 주는 편안함만 생각하며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열악하다 못해 참담한 노동 환경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국민 기호식품인 커피 원두가 극도로 열악한 조건의 저가노동을 통해 생산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적지 않은 소비자들은 노동에 대한 더 나은 보상이 이뤄질 수 있게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한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국의 커피노동자에 대한 연대의식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이용하면서,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쿠팡 배달기사가 살인적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을 외면할 수 있을까?
노동 환경의 악화를 선도하는 쿠팡?
쿠팡은 우리나라 인터넷 상거래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다. 쿠팡의 새벽배송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경쟁사들도 새벽 배송에 뛰어들고 있다. 소비자의 편리함을 무기로, 암을 유발하는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되는 극단적 형태의 야간노동이 하나의 '정상적' 근무 유형으로 노동시장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이러한 움직임이 사회 다른 분야의 노동 환경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 놓을지 가늠할 수 없다.
장기간의 적자 끝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쿠팡은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계속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쿠팡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표현한 쿠팡의 '세기말 노동환경'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일자리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 쿠팡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철학자 매킨타이어는 "개인의 삶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편입되어 있고 개인은 공동체 즉,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나의 일상이 평온히 유지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처한 노동 환경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쿠팡의 노동 환경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쿠팡이 납득할 만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국민 알바라고 칭하는 쿠팡의 노동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개인, 집단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국민의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이제는 포기하기 어렵다고 자만하는 쿠팡에게 쿠팡이 없어도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극단적 노동환경에서 혹사당하는 개별 노동자 뿐 아니라 계속 악화되어 가는 전체 사회의 노동 환경을 지켜야 한다.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쿠팡을 다시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