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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다. 여성, 노동, 건강. 이 셋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려면 일단 숨을 한 번 고르고 신발 끈을 고쳐매고, 어디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미 하나하나 쉬운 주제가 아니지만, 한꺼번에 모이면 그 어려움은 몇 배가 된다. 이 문제가 왜 복잡하고 어려운지 살펴보자.

우선 여성 노동자는 일터에서만 일하지 않는다. 퇴근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 번째 출근인 경우가 허다하다. 2019년 조사에서 맞벌이 부부의 가정관리, 가족 돌봄에 소요되는 일 평균 시간은 남편 2시간 16분에 비해 아내는 4시간 9분으로 1.8배나 길었다. 심지어 아내가 외벌이를 하는 경우에도 이 시간은 각각 3시간 47분과 3시간 50분으로 차이가 없었다.

제7차 세계가치조사에 의하면, '엄마가 유급노동에 종사하면 자녀가 고통받는다'라는 문장에 동의하는 응답자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한국(64.7%)이 가장 높았다. 여성 노동자가 동료 남성 노동자에 비해 과도한 가사노동, 돌봄의 부담을 진 상태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력 계발에도 걸림돌이 된다.

업무 자율성이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인 학계에서조차 이 차이는 뚜렷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강도 높은 지역 사회 봉쇄와 재택 근무가 실시된 국가들에서 경력 초기 여성 연구자들의 논문 출판과 연구비 수주 실적은 남성 동료들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가사 노동과 자녀 돌봄의 부담 때문이었다. 우리가 고용조건이나 노동 환경에 대한 연구를 하고 활동을 할 때, 남성 노동자의 경우 '가정'은 크게 고려해야 할 요인이 아니지만, 여성 노동자들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자회견 사진 2022년 3월, 한국노총 여성위원회가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
기자회견 사진2022년 3월, 한국노총 여성위원회가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기자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들과 다른 일을 한다. 예컨대 2020년 조사에서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은 21개 산업군 중 여성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분야였지만, 남성에서는 14위에 불과했다. 더 세분해서 살펴보아도 차이가 크다. 이를테면 같은 제조업이라고 해도 '봉제 의복 제조업'에는 여성의 비중이 높지만, '기계·자동차·선박' 제조 분야에서는 압도적으로 남성 노동자 비중이 높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유해인자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산업과 직종에 편중되어 있다. 이러한 분야에 위험하고 치명적인 물리적·화학적 유해인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성 노동자의 일이 안심해도 될 만큼 안전한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백혈병과 유산을 경험하고, 급식 업무를 담당해왔던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은 폐암에 걸리고 있다. 또한, 빵을 만들다 기계에 목숨을 잃고, 휴대폰을 조립하다 메탄올 때문에 시력을 잃기도 한다. 압도적으로 '여초'인 직종, 대표적으로 유치원 교사, 가사·육아 도우미, 간호사, 돌봄·보건 서비스 직종은 근골격계 부담이 크고 강도 높은 감정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비전통적' 위험요인들은 아직 규제가 불충분하고, 근거가 되어줄 연구 자체도 부족하다.

남성 노동자가 많은 분야에 여성이 진출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근무 표준이나 작업 환경이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건설·설비 분야 여성 노동자들은 몸에 맞지 않는 안전 장비, 부족한 화장실 문제를 호소한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 많은 연구와 개입이 필요하지만, 정작 너무 '소수파'다 보니 연구를 하기도, 사업을 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다.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국적이 어디인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안정성과 급여, 작업장 위험 요인이 달라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에서 안정된 전문직으로 일하게 된 한국인 여성 노동자와 고향을 떠나 한국의 농촌에서 깻잎을 따는 이주 여성 노동자 사이에는 임금, 노동 환경, 사회적 인정, 모든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 막 카페에서 서빙 일을 하게 된 청년 여성 노동자, 가족을 돌보며 파트 타임으로 마트에서 일하는 중년의 여성 노동자, 본인도 고혈압·당뇨를 앓고 있으면서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하는 고령의 여성 노동자 사이에는 많은 것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러한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는 공유되는 보편성이 존재한다. 제도적 성차별, 일상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젠더 규범의 영향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7~2020년 세계가치조사에 의하면, '일자리가 부족한 경우 여성보다 남성에게 권리를 더 주어야 한다'는 문장에 동의하는 응답자 비율은 한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53.0%).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2등 시민이다. 법을 위반해가면서 여성 지원자를 채용에서 고의로 탈락시키는 기업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취업 이후에도 불평등이 심각하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유리 천장' 문제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인 2023년 8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남성 임금 노동자의 70.2%가 정규직인 데 비해 여성은 그 비중이 54.5%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정 노동은 단순히 월급이 적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선 고용을 기반으로 한 사회복지, 기업복지에서의 차이를 낳고, 이는 노동시장을 떠난 이후까지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2023년 기준으로 65~74세 연령군 중에서 국민연금을 받는 남성은 216만여 명인 데 비해 여성은 142만여 명에 불과했다. 여성 노인의 빈곤율이 남성보다 10%p 이상 높은 것은 이와 관련 있다.

또한, 노동시장에서의 취약한 지위는 노동 환경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성차별적 규범은 (비록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학술 연구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안전보건 문제를 인식하고 탐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작업장 안팎의 조건들이 겹쳐지면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것이 한층 어려워진다.

일하는 여성들 사이에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산업, 직종, 심지어 직위를 막론하고 성적 괴롭힘과 젠더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식당과 카페, 지하철역, 공장과 건설 현장, 논밭, 병원, 학교, 군대, 언론사, 정부와 의회… 비록 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거의 모든 곳에 젠더 폭력은 공기처럼 퍼져 있다. 하지만 이는 작업장 유해요인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해 고민할 때에는 더욱 너른 시각이 필요하다. 특정한 화학물질, 물리적 요인, 사회 심리적 유해인자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왜, 어떻게 발생하고 심지어 지속될 수밖에 없는지 제약조건과 맥락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일터의 성평등과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는 여성 노동자에게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해두고 싶다. 남성이라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위험한 작업 환경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차별적 젠더 규범은 남성의 건강과 안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여성 노동자도 기존의 남성 노동자와 똑같이 사고성 재해에 노출되게 만드는 것, 혹은 남성 노동자도 여성과 똑같이 감정 노동에 노출되게 하는 것이 성 평등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유해하고 파괴적인 작업 환경, 제도, 규범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젠더 변혁(gender transformation)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9호에도 실립니다.글쓴이는 김명희 예방의학 전문의,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9호 11, 12월호 '女집합'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여성#노동#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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