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채계산(華山 화산 343.3m)은 적성강 동쪽 가까이에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11km의 칼날 암릉으로 이어진다. 이 능선 중에 작은 두 봉우리 사이의 협애가 남원과 순창의 통로가 되는 천연 관문인데 작은 여울이 흐른다. 이 작은 여울이 억년의 세월 동안 험한 산줄기를 끊어내고 있었다. 이 협애의 두 봉우리를 출렁다리가 연결하여 관광 명소가 되었다.
채계산은 온통 바위산인데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 이 산은 겹겹이 쌓인 규암이 책을 쌓아 놓은 형상이어서 책여산(冊如山)이라고도 하였다.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赤城山)으로도 불렸는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화산(華山)으로 표기되었다. 이곳 채계산의 수직 암벽이 성벽 같은데, 봄이면 진달래가 바위틈에 붉게 피어서 '적성(赤城)'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지난 5일에 순창 장군목 유원지와 용궐산 하늘길을 탐방하고 섬진강을 따라 내려와서 채계산 출렁다리를 찾았다. 주차장에 이르니 '달 아래 여인을 품은 산'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월하미인(月下美人) 벽화가 맞이한다.
순창의 적성강 지역에서 동쪽 산줄기를 바라보면 비녀를 꽂은 여인이 달을 바라보며 창(唱)을 읊는 월하미인 형상이라고 한다. '비녀 채(釵)'와 '비녀 계(笄)'를 써서 지은 산 이름이 채계산이다. 이 채계산 월하정에서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익혔다고 하는데, 그중에 조선 말의 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3)이 유명하다.
출렁다리 옆의 작은 봉우리 어드벤처 전망대에 올라서 적성강 일대에 탁 트이게 펼쳐진 평야를 바라보니 시원스럽다. 출렁다리에서 북서쪽으로는 임실 방향에서 흘러와 적성강에 합류하는 오수천이 보인다.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무주탑 산악 현수교(懸垂橋)로 2020년 3월에 개통하였다. 출렁다리, 흔들다리, 하늘다리나 구름다리 등으로 불려지는 이 현수교의 길이는 270m이고 높이는 75~90m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상판 틈새로 아래쪽을 얼핏 보아도 까마득하다. 살짝 흔들리는 출렁다리는 짜릿한 맛이 즐겁다.
채계산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모자를 잘 잡아야 하고 옷깃을 여며야 하며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진다. 이 채계산은 하늘을 나는 새도 날카로운 능선과 봉우리를 한 번에 넘지 못한다고 한다. 세찬 바람결에 힘겹게 날아오른 새가 칼날 능선 바위에 조심스럽게 앉아서 쉬었다가 건너 쪽으로 날아서 내려간다.
채계산 출렁다리에서 주인공은 튼튼하고 안전한 출렁다리 구조물이다. 무주탑 출렁다리로서 전체 270m 거대한 구조물이 보행로 좌우에 8줄(보행로 왼쪽 4줄, 오른쪽 4줄)의 긴 케이블 위에 얹혀 있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무주탑 출렁다리는 다리에 주탑과 같은 인공 구조물을 최소화하여 시공한 친환경적인 구조물로서 숲과 바위 등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출렁다리는 안전제일로 다리의 설계수명을 50년으로 한정한다. 출렁다리 보행로의 유효 폭은 최소 1.5m 이상으로 하고, 난간의 높이 1.1 m 이상 설치하여 관광객의 안전을 보장한다. 출렁다리에는 안전요원이 항시 근무하며 보살피고 있다. 출렁다리에서 멀리 풍경을 감상하면서, 발밑의 출렁다리 구조물을 살피는 것도 재미있다.
채계산 출렁다리의 붉은 색 구조물과 채계산의 울창한 푸른 소나무가 선명하게 대조되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온난화 현상으로 소나무가 서서히 밀려나고 있는데, 채계산은 바람이 거세어서 기온이 낮아 소나무가 잘 자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겨울에 거센 바람에 맞서는 소나무 숲이 견뎌야 하는 인고의 계절은 얼마나 추울까? 그래서 추운 겨울을 이겨낸 채계산의 봄은 진달래가 더 붉고 그렇게 아름다운지 모른다.
이곳 채계산에 전해오는 이야기라고 순창군 문화관광 누리집에 한 편의 전설이 실려 있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그의 장인인 오자치(나성부원군)가 살던 장수군 산서면에서 무술을 연마하였다. 그가 치마대에서 화살을 날린 후 바로 말을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오지 않아 화살보다 말이 늦게 도착했다고 판단했다. 이곳에서 불호령과 함께 단칼에 말의 목을 베어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화살이 바로 이곳 바위에 날아와 꽂혔다. 최영 장군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한숨지었다.
순창군 문화관광 누리집에 실려 있는 이 전설의 내용은 상당한 오류가 있는 듯하다. 최영(崔瑩, 1316~1388)은 고려 말의 출중한 장수로서, 고려 말기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고려 최후의 충신이다.
이 전설에 나오는 나성부원군 오자치(吳自治, 1426~?)는 조선 초기 무신으로 이시애난(세조13년 1467)을 평정한 공신이다. 더우기 장수 산서면 치마대에서 순창 채계산까지는 직선으로 약 24km의 거리이다. 이 거리를, 화살을 쏘고 말을 달려 화살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것은 전설이라도 상상하기 힘들다.
남원의 읍지인 용성지(龍城誌, 1752년)에 채계산 전설의 원형으로 보이는 치마대와 시락전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치마대(馳馬臺). 진전방(眞田坊) 팔공산 기슭에 있다. 서쪽으로 뻗어 대(臺)를 이루고 있다. 이름하여 약산(躍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상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장군 최형(崔瀅)이 나성부원군(羅城府院君) 오자치(吳自治)의 사위가 되어 평상시 이곳에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혔다.
그는 매번 한 개의 화살을 쏘아 놓고 말(馬)에게 화살을 따라 뛰어가게 하였는데, 화살과 말이 같이 도착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말보다 화살이 먼저 이르렀다. 장군은 그 말이 화살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하여 말의 목을 베었다. 그런데 이미 말의 목을 베어버렸는데 그때야 화살이 이르렀다. 최형은 후회하고 그 말을 이 대 아래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말 무덤이 있다 .
시락전(矢落田). 지사방에 있다. 최형 장군이 일찍이 치마대 위에서 활로 화살을 쏘았다. 그 화살이 떨어지는 곳을 잃어버렸는데 농부(農夫)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왔다. 화살이 떨어진 곳은 쏘는 곳으로부터 10리 거리에 있었다. 뒷사람들이 이에 그 밭의 이름을 시락(矢落)이라 하였다([용성지(龍城誌, 1752년) 한문 해독).
남원 용성지에 기재된 조선 초기 최형(崔瀅) 장군의 전설이 고려말 최영(崔瑩) 장군으로 오해되어 순창 채계산의 전설로 잘못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순창군 문화관광 누리집에 기재된 채계산의 고려 말 최영 장군 전설에 대하여, 순창군청 관계자는 마을의 구전 설화를 채록한 내용이라고 했다. 관광지와 역사 문화유산에 관련된 정보를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하겠고, 공개된 정보에 오류가 있다면 타당하게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블로그 김진영 '흘러가는'의 '치마대(馳馬臺)와 말무덤, 시락전(矢落田)' 자료를 참조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