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료급여 수급자이다. 그리고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아래 '야학')의 학생회장이다. 야학에는 나와 같이 의료급여 수급자인 학생이 많이 있다. 그중에는 병원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서, 한글을 모르는 등 병원을 이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서 병원에 누군가 동행해야만 하는 학생들이 있다. 나 자신도 몸이 아파 병원을 많이 이용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야학 학생들과도 적지 않게 동행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병원에 많이 가게 된다.
'치료'보다 '비용'이 먼저 떠오르는 공간
그중 ㄱ씨와의 동행 경험이 많은 편이다. ㄱ씨와 치과를 다닌 적이 있었다. 이빨이 너무 아프다고 해서, 내가 다니는 치과에 함께 다녔다. 그 병원 의사가 의료급여 수급자를 보면 돈이 많이 나와도 조금 깎아 주는 사람이라 ㄱ씨도 데리고 갔었다. 어느 날 간호사가 ㄱ씨의 이빨을 보더니, 치석도 제거하고, 이빨도 아예 새로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원래 150만 원을 내야 하는데, 100만 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100만 원도 한 번에 받지 않고, 할부로 받겠다고 했다. 단, 선금으로 30만 원을 내 달라고 했다. 괜찮은 조건처럼 보였지만, ㄱ씨는 오히려 성질을 냈다. 30만 원이 ㄱ씨에게는 큰돈이었고, 그 돈을 내라고 하니 화가 났던 것이다. 한 달에 10만 원씩 저축하자고 말해봤지만, ㄱ씨는 그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는 ㄱ씨와 병원에 갈 때마다 ㄱ씨가 의료급여 수급자라는 것을 병원 직원에게 말하게 된다. 요새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니 병원에서는 ㄱ씨가 수급자라는 사실을 컴퓨터에 이름 한 번 입력하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 싶어, 혹시나 병원에서 비싼 비급여 치료를 권하지 않을까 싶어 먼저 그렇게 말한다. 수급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생각하면, ㄱ씨가 수급자라는 사실을 내 마음대로 발설하는 게 옳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또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ㄱ씨가 못마땅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ㄱ씨와의 동행을 시작하기 전 나의 병원 이용 경험을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말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한번은 피부 질환이 생겨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진료를 받고 나니 의사가 효과가 좋은 연고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연고가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연고를 살 돈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의사에게 더 저렴한 연고를, 즉 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연고를 사겠다고 말했다. 나도 더 좋은 연고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생활비를 더 당겨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내분비내과 진료도 받고 있는데, 매일 혈당 수치를 확인하기 어려우니 의사가 한 번 착용하면 보름간 혈당 수치를 지속적으로 확인해 주는 의료 기기를 추천했다. 가격을 물었다. 역시나 비싼 비급여 의료 기기였다. 여기에 돈을 쓰면 생활비가 부족할 것이 뻔해 나는 결국 구입을 포기했다.
나는 뇌경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비용만 50만 원이 넘는다. 나중에 환급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나와 같은 수급자에게 당장 50만 원을 지출하라고 하는 것은 그냥 한 달간 생활을 아예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당장 50만 원 자체가 없다. 매번 야학에서 대출을 받아 검사를 받아 왔다. 이렇게 검사를 받고 나면, 빌린 돈을 수개월간 갚아 나가야 한다. 그러면 또 어쩔 수 없이 달마다 생활비를 조금씩 줄여 나가야 한다. 비급여 크림, 비급여 의료 기기가 아니더라도, 병원에 가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일은 이미 언제나 벌어지고 있다.
수급자 막막하게 만드는 복지부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는 병원비가 싸서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병원에 많이 간다고 한다. 복지부가 직접 이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렇게 말해도 되나 싶다. 수급자들이 왜 '수급자 되기'를 '선택'하는가? 아픈데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까 수급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상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병원에 '많이 가서' 문제라는 복지부에 되묻고 싶다. 수급자들이 병원에 왜 '많이' 가겠는가? 병원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돈을 타다 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가겠는가? 아프니까 가는 것이다. '많이' 아프니까 가는 것이다. 가난하면 더 아프기 쉽고, 많이 아프다 보면 가난해질 수 있는 세상인데, 복지부는 이를 전혀 모른 체하고 있다.
복지부는 또 수급자가 '비용 의식'이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돈 비싼 줄 모른다는 소리다. 그렇게 말한 복지부 공무원에게 딱 1년 동안만이라도 수급자가 되어 살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수급비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 직접 겪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볼 수가 없어서 주로 유통 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파는 거리에 나가 먹을거리를 사 온다. 동네 마트는 식품 가격이 비싸고, 유통 기한이 임박한 식품은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 식재료를 냉동실에 넣어 오랫동안 두고 먹는다. 공과금은 점점 비싸지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어 당장 1천 원, 2천 원이 귀한 상황인데, 병원비가 부담이 안 되겠는가? 가뜩이나 물가가 오르는 것만 봐도 하루하루가 막막한데, 복지부가 내뱉는 말들이 수급자들을 더 막막하게 만들고 있다.
ㄱ씨는 진료가 끝나거나 약 처방을 받고 나면 항상 내야 하는 돈이 얼마인지 물어본다.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인 ㄱ씨는 그간 1천 원 정도의 금액만을 부담해 왔지만, 혹시나 돈을 더 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서 하는 말인 것 같다. 만약 내년에 의료급여의 본인부담금 산정 방식이 '정률제'로 바뀐다면, 원래 1천 원만 내던 것이 3천 원, 4천 원으로 바뀐다면, ㄱ씨가 느끼는 부담이 더 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걱정 없이 병원에 가고 싶다. 나아가, 걱정 없이 밥을 해 먹고 싶고, 걱정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고 싶다. 복지부는 국민의 최저 생활을 시혜와 동정이 아닌 권리로서 보장하겠다는 제도의 목적을 무너뜨리지 말라. 복지부가 의료급여 수급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의료급여를 개편하겠다는 방향 모두가 그 목적을 무너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