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기동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집회, 시위 업무를 주로 하면서 불특정 다수가 많이 왕래하는 곳에서도 자주 근무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광화문광장입니다. 1년 365일 24시간 근무하는 장소입니다. 지난 주말 저도 그곳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 노부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걸어가세요. 왜 이렇게 혼자만 빨리 걸어가시려고 하세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걸으니 늦어요."
"그러니까 더욱이나 같이 걸어가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할머니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뒤를 바라봅니다.)
할머니를 뒤따라오던 할아버지도 할머니 옆에 섰습니다. 할아버지께 저는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할아버지 광화문 나들이 나오셨나 봐요? 오늘 가을 날씨로는 최고네요. 이런 날 맞춰서 나오기도 쉽지 않은데 잘하셨어요."
"그러게요. 날씨가 참 좋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할아버지께서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순간,
할머니께서 지팡이를 짚지 않은 할아버지의 팔 쪽으로 가서 팔짱을 낍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게 들려온 한마디.
"저 경찰 양반 손자 나이쯤 되어 보이지 않아요?"
할아버지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는 두 분의 모습을 뒤에서 한참 동안 지켜봤습니다. 제가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낍니다.
#. 유모차에 탄 아이
"(손을 흔들어 주며) 충성."
아이를 바라보며 인사했습니다.
유모차에 탄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저를 바라봅니다. 유모차를 끌던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아 경찰 아저씨가 인사하네. 너도 해줘야지."
아이의 엄마가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이가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돌립니다. 아이의 엄마가 제게 대신해서 이야기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지구대에 근무할 때도 종종 아이들을 보면 손을 흔들어주거나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경찰관 기동대에 와서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자주 있다 보니 아이들을 더 많이 봅니다. 되도록 아이들에게는 인사를 해주려고 합니다.
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이야기를 건네는 아이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도 더 반갑게 인사해 줍니다.
#. 중학생 손자
광화문광장 앞쪽에 있는 이순신 동상 옆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시골에서 서울 나들이를 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손자가 함께 걷고 있습니다. 두 어르신의 얼굴은 너무도 밝은 반면에 중학생 손자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와, 멋지네.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왔어요? 오늘 완전 제대로 가이드해 드리겠는데요."
"네, 안녕하세요."
손자는 굳은 표정과 함께 짧게 인사하고 맙니다. 옆에 있던 할머니께서 한마디 거듭니다.
"오늘 얘네 부모는 장사를 해서 손자랑 한번 왔어요."
"네, 진짜 잘하셨네요. 손자가 왜 이렇게 잘생겼어요. 요즘 청소년들은 어르신들 모시고 어디 다니려고 안 하는데 정말 착한 손자를 두셨네요."
"그러게요. 우리 손자가 착합니다."
그제야 중학생 손자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어떨 때는 부럽기도 합니다. '나는 휴일에도 일하는데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와 함께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주말에 더 바쁘다는 게 경찰관 기동대의 큰 단점 중 한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주말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모두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날 뒤에 찾아오는 삶의 불청객인 힘듦과 역경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것은 또 극복하면 됩니다. 그럼 다시금 이런 일상의 행복과 여유로운 시간이 분명 찾아올 겁니다.
지난 주말에 이어 이번 주말이 지나면 날씨가 꽤 추워질 듯합니다. 더 늦기 전에 가까운 공원이라도 나가봤으면 합니다. 부모님과 아니면 친구나 연인과 그것도 아니면 혼자라도 좋습니다. 이만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아실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