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소위 '상습체불 근절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은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에 대해 신용제재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고 노동자가 임금체불로 인한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사업주에 대하여 체불금액의 3배 이내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임금체불에 대한 제재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임금체불, 약한 노동자에게 더 강력한 고통
취약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로 인해 더욱 고통받는다. 특히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 노동자가 그 대상이 된다. 청년에게 올바른 사회 경험을 제공해야 할 어른들이, 오히려 그들의 경험 부족을 악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
노동자 A의 사례를 보자. A는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결심한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던 그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주말 이틀, 1일 7시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조건의 구인공고를 발견했다. A는 사업주에게 연락해 면접을 보았고, 그 주 주말부터 근무하기로 했다.
첫 근무일, 사업주는 A에게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그런데 사업주는 A에게 매장 사정상 최저임금을 맞춰줄 수 없으니 시급을 9천 원으로 책정하겠다고 말한다. A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지만, 사업주가 근로계약서 서명을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서명한다. 사업주는 A가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자, 곧바로 이를 챙겨 매장을 나갔다. 근로계약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 1부씩 나눠 가져야 하지만, 사업주는 A에게 근로계약서를 주지 않았다.
A는 열심히 일하면 사업주의 태도가 바뀔 것이라 기대하며 성실하게 일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월급날, A는 생애 첫 월급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하며 설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월급은 입금되지 않았다. A가 사업주에게 언제 월급을 받을 수 있는지 묻자, 사업주는 본사에서 돈을 주지 않아 월급을 줄 수 없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A의 첫 월급은 그렇게 체불됐다.
한 달이 더 지나 다시 월급날, 이번에는 사업주가 수표밖에 없어 월급을 줄 수 없다고 변명한다. 또다시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고, 세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A는 여전히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했다.
결국 A는 부모님께 이 사실을 털어놨다. 이에 부모님이 사회 경험이 부족한 자녀를 대신해 사업주와 이야기하려고 편의점을 방문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세 달치 임금을 체불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A의 부모를 영업방해로 신고한다며 협박했다.
A는 결국 임금을 하나도 받지 못한 채 퇴사했다. A가 퇴사하자마자 사업주는 최저임금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구인공고를 올렸다. 퇴사 후, A는 임금체불로 사업주를 노동청에 신고했으나 신고만으로 체불임금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A는 결국 소송이나 대지급금과 같은 추가 절차를 거쳐야만 이를 받을 수 있다. 결국 A는 세 달 치 임금을 받기 위해 언제 끝날지 모를 기다림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체불 사업주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 필요
'상습체불 근절법'을 통해 기존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임금체불은 체불 사업주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없다면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많은 노동자가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노동청에 신고해 체불임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임금체불로 진정이나 고소를 경험한 사업주는 임금체불에 대한 제재 등의 조치가 미온적인 것을 알기에 이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으며 개선의 의지도 결여돼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매년 약 27만 명의 노동자가 임금체불 피해를 겪으며, 체불 발생액도 약 1조 8000억 원('23년 기준)에 이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불 사업주들의 인식은 여전히 '신고 당하면, 임금을 주면 그만이다', '벌금이 체불액보다 적으니 감수할 만하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금체불에 대한 제재가 형사처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더라도 대부분 체불액보다 현저히 적은 소액의 벌금형(체불액 대비 벌금액이 30% 미만인 경우가 77.6%)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체불 사업주에 대한 신용제재 및 명단 공개와 같은 추가적인 불이익한 조치 역시 요건이 엄격해 그 효과가 미흡한 상황이다(2회 이상 반복 체불 사업주는 30%에 불과하지만, 그 체불액은 80%에 달함)1). 따라서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함과 동시에 단순 체불 사업주가 상습체불 사업주로 변모하지 않도록 적절한 예방조치 또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1) 고용노동부, 상습체불 근절대책 (2023.05.03.)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1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임혜인 님은 공인노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