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체 실험했습니다. 도지사 재임 7년째인데요. 7년 동안 안동소주로 생체실험을 했어요. 다른 술, 특히 좋다는 위스키 등을 마셔도 다음 날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찌뿌둥한 듯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는데 안동소주는 그런 사례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좋은 술을 왜 가양주로만 두어야 하나 생각하다 안동소주협회와 함께 세계로 나가야겠다고 계획했습니다."
8일 스탠포드 호텔 안동에서 열린 제1회 안동 국제 증류주 포럼에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격려사를 통해 안동소주야말로 위스키 등 세계 어떤 증류주와도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지사는 2023년 2월 안동소주 제조업체와 함께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 협회를 방문하고 증류소 등을 시찰한 과정을 설명하며 한국의 안동소주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박성호 안동소주협회 회장은 안동소주 세계화 추진 경과보고에서 그동안 가양주 형태로 전해오던 안동소주 제조 비법을 표준화하기로 하고 '안동소주 품질 규격 합의 및 경북도지사 품질인증제' 도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또 집집마다 달랐던 술병도 선비 갓과 도포 자락 형태로 디자인하는 등 새로운 시안을 제시했다.
안동소주협회에서 내세운 품질 인증 기준은 ▲ 안동에서 생산된 곡류 100% 사용, ▲ 쌀 품질 기준 수분 16%, 싸라기 7% 이하 사용, ▲ 알코올 도수 30% 이상 등 6개 조항이다.
"증류주의 품질은 당연히 좋아야 합니다. 품질 못지않게 병 디자인도 애주가들의 눈에 확 띄어야 합니다. 유럽 술집을 가면 바텐더 뒤에 술병을 진열하는데, 애주가들은 아름답게 디자인한 술병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병 디자인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유럽권 증류주 품평회 회장인 독일 위르겐 다이벨 교수는 기조 강연에서 '세계 증류주 시장의 글로벌 트렌드'를 주제로 안동소주가 세계 증류주 시장에 충분히 발돋움할 수 있다며 고품질과 디자인에 이어 환경친화적인 병과 포장재 개발 등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동소주는 발효시킨 술을 소줏고리를 통해 끓여서 만든 술로 위스키, 보드카, 럼 등과 같은 증류주이다. 우리 전통주로서 1200년대부터 만들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몽골군과 고려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안동에 주둔한 적이 있다. 이때 몽골의 증류주 기법이 안동으로 전수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또한 여몽 연합군의 주둔지인 안동에 충렬왕이 방문했고 공민왕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하면서 왕가의 고급술 제조법이 안동 땅에 전수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왕이 두 번이나 안동에 머물게 되면서 신하와 병사, 각종 기술자가 안동 땅에 내려와 왕을 보필하기 위해서 증류주도 따라왔을 것이다.
이 안동소주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안동 종가에서 가양주로 생산됐다. '봉제사 접빈객' 제사와 손님 접대 용도로 가정마다 소규모로 집에서 빚는 정도였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주세법'이 생기면서 명맥이 단절됐다.
또 1963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등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 술을 알리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전통주가 부활하게 됐다.
국제증류주 포럼장에는 안동의 주요 종가와 증류주 제조업체에서 생산한 증류주 수십 가지가 출품돼 포럼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얼큰하고 달삭한 안동소주의 참맛을 느껴보는 시음회가 진행됐다. 또, 인터넷을 통해 품평하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애주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2023년 3월 발족한 안동소주협회는 '안동소주의 세계화'를 위해 글로벌 전략을 추진 중에 있고, 안동 종가 가양주 진흥회는 충효당 서애종가와 진성이씨 노송정 종가, 원주변씨 간재종가, 의성김씨 지촌종가, 학봉종가, 영천이씨 농암종가 등에서 그동안 손님 접대용으로 쓰던 종가 가양주인 '옥연주', '노송주', '숙영주', '이수동주', '금계주' '일엽편주'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시판에 나섰다.
안동 시민들은 지난 10월 월영교 일대에서 열린 '안동소주 박람회'에 이은 이번 포럼을 통해 K-푸드 세계화 열풍 못지않게 K-안동소주가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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