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나는 인권운동을 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었다. 반대하던 이유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면 한국 교회가 망한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이 된 이유
교회에 나간 지는 꽤 됐다. 처음 교회에 간 것은 2015년 어느 여름 일요일,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 집은 조부모님과 큰아버지를 제외하고는 교회와는 큰 연이 없었다. 오히려 옛날에는 절에 갔을 정도로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 교회를 다니다 일요일에 쉬지 못 하는 것이 싫어서 교회를 안 다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2019년쯤 어머니의 지인분이 대전에 있는 한 대형 교회에 같이 가자고 전도했다. 교회 친구들과 친해질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교회 예배는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었고 유년부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면서 점점 교회에 대한 기억을 잊었다.
2023년 말, 교회에 안 나간 지 몇 년이 지나 큰아버지께서 본인이 다니는 개척교회에 나와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마침, 교회에 그리움이 남아있던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교회에 다니던 나는 2024년 1월 어느 날 "수요예배는 뭐 하는 예배인 거지?" 라는 궁금증에 2019년에 다니던 교회를 다시 찾았고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지금은 교회에서 찬양단도 하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던 나
교회에 다니던 날 1월은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기까지 얼마 남지 않던 때였고, 중학교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교복을 입어야 할 건데, 교복은 왜 입는 걸까?" 이런 궁금점을 가지고 인터넷을 찾아보던 와중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약칭 '지음')이라는 단체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가 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교회를 다니던 초반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권 활동가인 내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던 사실이 부끄럽다.
그 당시 내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던 이유는 내가 다니던 교회에 목사님과 교회학교 전도사님께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대한민국은 망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그때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의 일부 내용을 반대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와 임신을 조장한다'는 어떤 교회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다.
이제는 차별금지법을 찬성합니다
교회를 다닌 지도 반년 정도 됐을 때 내가 사는 대전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지음 활동가분이 부스 운영을 한다는 소식에 한번 만나 뵐 겸 퀴어축제에 가게 되었다.
가서 부스를 체험하고 운영하다 보니 차별금지법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퀴어축제에 가기 전에는 악법으로 생각했지만, 퀴어축제에 갔다 온 후에는 차별금지법이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안 된다고 세뇌한 교회 사람들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할 목사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오히려 혐오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정말 어이없는 현실이다.
"나는 계속 걸어갑니다. 수 없이 넘어져도 사람들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해도 내가 가는 길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
홍이삭의 <하나님의 세계>라는 찬양의 한 구절이다.
이 찬양을 듣고 눈물이 났다.
꼭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아니 어쩌면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을 찬성하는 모든 이들이 겪고 있는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을 반대하더라도 우리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