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쏟아지던 비가 동대구역에 가까워지자 잦아들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이른 저녁인데도 하늘은 벌써 어둑했다. 우산을 쓴 채 짐가방을 끌고 택시정류장으로 갔다. 부모님께 먼저 차에 타시라 한 뒤, 트렁크에 짐가방을 싣고 나도 택시에 올랐다.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말씀하셨다.
"아까 걸어오다가 큰일 날 뻔했어."
"왜요?"
나는 놀란 눈으로 아빠를 보았다.
"걸어오다가 쭐떡 미끄러질 뻔했는데, 겨우 중심을 잡았다."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요. 아빠는 연세가 있으시니 낙상을 조심하셔야 돼요."
몸의 균형을 못 잡으시는 아빠
아파트에 도착해 지하주차장에서 짐가방을 꺼내 앞장서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탁'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아빠가 또 미끄러질 뻔해 균형을 잃었고, 그 바람에 잠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옆에서 걷던 엄마가 아빠를 잡아 주셔서 다행이었다. 핸드폰도 다행히 멀쩡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중심을 잘 못 잡아요? 다리에 힘이 없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네."
아빠가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 발 들어서 운동화 밑창 좀 보여주세요."
아빠는 짐가방 손잡이에 한 손을 짚고 균형을 잡으며 한쪽 발을 들어 밑창을 보여주셨다. 밑창을 보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빠, 이게 뭐예요! 신발 밑창이 다 닳아 있잖아요. 그래서 계속 미끄러지셨던 거예요. 집에 들어가서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요."
집에 도착해 현관에서 아빠가 벗어 놓으신 운동화를 살펴보았다. 앞축과 뒤축의 밑창이 닳아 일부는 떨어졌고, 밑바닥까지 닳아 있었다.
"아니, 아빠는 어떻게 운동화가 이렇게 될 때까지 신고 다니셨어요? 밑창이 이렇게 다 닳았으면 느끼셨을 텐데."
"글쎄, 나는 잘 못 느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이고, 밑창이 이런 줄 몰랐네. 깨끗하게 닦아 신어서 겉으론 아직 멀쩡해 보이더니."
"엄마는 참, 아빠 운동화 닦으실 때 밑창도 가끔씩 확인해 보셨어야죠. 이렇게 될 때까지 신으시면 어떡해요."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에게 괜히 화풀이를 해버렸다. 신발장 안에 있는 다른 운동화들도 하나씩 꺼내 보니 한 켤레를 제외하고는 밑창이 다 닳아 있었다.
"휴, 여기 있는 건 모두 버려야겠어요. 다 버리고 새로 두 켤레를 사드릴 테니, 이 신발들은 절대 신지 마세요."
아빠는 당뇨를 앓고 계셔서 매일 평균 7,500보를 목표로 식사 후에는 꼭 걷기 운동을 하신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나가시니 운동화가 빨리 닳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닳고 닳은 운동화를 신고 매일같이 걸으셨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이렇게 밑창이 닳은 운동화를 신고도 다치지 않으신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방에 앉아 있자니 마음이 아렸다. 얼마 전 별생각 없이 주문한 내 은빛 운동화 두 켤레가 부끄러웠다. 싱가포르에서 구할 수 없어 한국에서 주문한 운동화였다. 은빛 운동화를 바라보자 아빠의 닳아빠진 운동화가 겹쳐졌다.
건강하게 지내는 게 자식들 고생 안 시키는 거라며 열심히 운동하신다는 아빠의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아빠의 닳은 운동화는 우리 가족을 위한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비가 와서 새 운동화 안 신었다는 아빠
다음 날, 아빠 운동화를 사드리러 시내에 나갔다. 즐겨 신는 브랜드가 있어 미리 알아본 매장으로 갔다. 워킹용 운동화 두 켤레를 골라 약간 여유 있는 사이즈로 신어 보시게 했다. 아빠는 매장에서 몇 번 걸어보시더니 발이 더 편한 운동화를 골랐고, 아이보리와 회색 중 고민하다가 회색으로 결정했다.
집에 와서 아빠의 낡은 운동화들은 한쪽에 모아두고,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걸어 보시라고 했다. 택을 떼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아빠는 몇 번 걸어 보시더니 발이 편하고 좋다고 하셨다. 택을 떼고, 신발장에 있던 검정 운동화도 현관에 꺼내 두 가지를 번갈아 신으시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설거지를 하는 중 아빠가 서실에 다녀오신다고 하셔서 현관까지 나가지 못하고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만 드렸다. 설거지를 마친 후 현관에 가보니 내가 사드린 신발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또 낡은 운동화를 신고 나가셨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아빠가 돌아오시자마자 새 신발을 왜 안 신으셨냐고 물으니, 비가 와서 헌 운동화를 신으셨다고 하셨다. "아빠, 비가 오니까 새 신발을 신으셔야죠! 그러다 또 미끄러지면 어떡해요. 안 되겠어요, 당장 큰 쓰레기봉투 사 와서 헌 신발들은 다 버려야겠어요." 내가 강하게 말하자 아빠는 "알겠다. 이제부터는 새 신발만 신을게"라고 하셨다.
아빠는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 끝에 가까스로 대학교를 졸업하셨다. 너무 배가 고파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하시니, 그 어려움을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후에도 본인을 위해서는 철저히 아껴 쓰셨다. 아직도 휴지는 반 장씩 쓰시고, 로션도 새끼손가락으로 아껴 펴 바르신다. 새 신발도 아끼시며, 딸이 사준 거라 소중하게 여겨 비 오는 날 선뜻 못 신으셨던 게 아닐까 싶어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싱가포르에 돌아온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새 운동화를 잘 신고 계신지 물었다. 검정 운동화와 번갈아 신으시지만, 내가 사드린 운동화를 더 즐겨 신으신다고 하셨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빠는 이제 팔십대 후반을 바라보신다. 매일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하셔서 아직은 나와 부산 여행도 다녀오시고, 외식도 하고 차도 마실 수 있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작은 운동화 한 켤레쯤은 갈 때마다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는데, 그저 지금처럼 오래도록 곁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에 가서 뵙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그리운 마음이 차오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