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다큐 영화 <괜찮아, 앨리스>를 세 차례 봤다. 반은 기자, 반은 관객의 시선으로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영화다. 교육을 주제로 했지만 '교육 밖의 이야기'가 여운처럼 남는다. 얼핏 남의 집 이야기인 듯 하지만, 보고 있다보면 내 집 이야기와 판박이다. 영화 속 과거의 기록 영상은 오래 전 LP를 틀어놓은 듯 '칙칙' 거리지만, 내용은 지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시사회를 통해 <괜찮아, 앨리스>를 먼저 본 관객들의 반응도 색다르다. 영화를 보고난 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학부모로서, 학생으로서 겪었던 아픔과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또다른 관객들은 자신이 겪는 문제처럼 공감한다. 이 영화 관객들은 <괜찮아, 앨리스>가 던진 물음을 자신의 문제로 치환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도록 하겠다며 '전도사'를 자처한다.
<괜찮아, 앨리스>는 '꿈틀리인생학교'의 학생·졸업생·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6년에 문을 연 꿈틀리인생학교는 '행복지수 1위 국가'인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를 모티브로 삼은 1년짜리 인생설계 학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CGV 아이파크몰에서는 정치인, 문화예술인, 언론인과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 관객추진단, 제작진과 출연 배우 등 140여 명이 모인 VIP 시사회가 열렸다.
네 살배기 손주, 중3인 딸을 떠올리게 만든 영화
이들은 75분 동안 숨죽이며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가 끝난 뒤 함께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따로 또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극장에 온 건 오랜만이라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잠깐 쉬어가더라도 내 삶을 살아야지, 강요된 젊은 시절이 얼마나 아프겠냐"면서 아빠가 아들에게 마음을 전한 편지를 읽어줄 때 자신의 아들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두 아들의 아빠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봐도 봐도 행복한 네 살배기 손주를 떠올렸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행복한데, 아이가 커가면서 불안감이 든다는 거다. "이 끔찍한 한국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이 아이가 불행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다.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민주당 의원은 16살인 중3 딸을 생각하면서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 속 아이들 모습 속에서 딸이 오버랩된 거다. 강 의원은 "정치하는 분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된 입법 활동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꿈틀리인생학교 5기 졸업생이자, 이 영화의 배우 중에 한 명인 황하름 학생이 등장하자 박수 소리가 커졌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바빠서 이날 처음 영화를 봤다는 그도 대한민국 고3으로 살면서도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면서 그 모습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거창연극고를 졸업한 뒤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그는 대학 면접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큐 감독이기도 한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언론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 교육 시스템이 정말 문제가 많다는 걸 느꼈지만,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못 해봤다"면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응답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장해랑 DMZ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저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괜찮아, 앨리스>는 의미있는 다큐 영화"라면서 (교육 시스템을 바꿔낸다는 게) 힘든 일이지만, 계속 두드려야 한다고 응원했다.
<괜찮아, 앨리스> '100개의 극장 상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김성환 <미디어나무> 대표는 관객과 직접 만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해보니까 '배급'이 아니라 전선에 식량을 잘 전달하는 '보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런 영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챙겨주는 거니까 '보급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학생과 학부모, 정치인들 모두가 보고 토론하면 좋겠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저자인 편성준 작가는 영화 관람 후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렸다. "청소년들이 대입 준비 대신 춤이나 악기를 배우고 연극을 만드는 학교가 있다고 하면 미쳤다고 할텐데, 진짜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가 있다. 그런데도 낙오되기는커녕 졸업 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인정받고 살고 있다"면서, 그러한 '꿈틀리인생학교'의 이야기를 담은 <괜찮아, 앨리스>를 꼭 보라고 추천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라면서.
임그린 작가도 페이스북에 올린 소감을 통해 "학습에만 매진하는 게 아니라 1년 동안 오롯이 나를 들여다 볼 시간을 주는 건 대안학교만이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내 아이도 (꿈틀리인생학교와 같은) 저런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는 임 작가는 "이런 게 특별한 교육이 아니라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처럼) 누구나 선택하면 받을 수 있도록 학생과 학부모, 정치인들 모두가 보고 토론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괜찮아, 앨리스>를 만든 양지혜 감독은 "30회 정도 시사회를 다니면서 (<괜찮아, 앨리스>)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이렇게 공감하고 변화를 원하는구나, 라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꿈틀리인생학교' 설립자)는 "엔딩 크레디트에 '스페셜 땡스' 명단에 오른 '100개 극장 관객추진단'과 꿈틀리인생학교 교장·교사·학부모님들 덕분에 200여 명의 학생들을 배출할 수 있었고 우리 교육에 새로운 화두를 던질 수 있었다"면서 관객들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