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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몽심재 문간채 옆의 호족시 감나무
남원 몽심재 문간채 옆의 호족시 감나무 ⓒ 이완우

남원 수지면 홈실 마을의 조선 시대의 고택 몽심재(夢心齋)는 남향의 경사지에 개울을 앞두고 고즈넉하게 자리 잡았다. 이 가옥은 박동식(朴東式, 1753~1830)이 지은 사대부가의 전통 한옥으로 민속 문화재이다.

작년 6월에 이 전통 한옥을 한 번 방문했었다. 몽심재 가문은 부와 권세보다 나눔과 배려를 소중히 여기며 실천한 명문대가였다. 그때 이곳 한옥을 찬찬히 둘러보며 전승해 오는 의미 깊은 가풍과 기상을 하나씩 확인했다.

조선시대 양반집에 하인을 위한 정자가 있었다. 이 집의 사랑채는 길손을 위해 방을 8개나 넉넉하게 마련했었다 한다. 이 양반집에는 하녀들을 위해 부엌 마루를 주인 안채 등지게 외따로 냈었다.

만석꾼 고택 마당 바위에 호랑이 발 모양의 호족시(虎足枾, 밑등걸이 호랑이 발 모양의 감나무)가 있다.

 남원 몽심재 사랑채 기단 석축
남원 몽심재 사랑채 기단 석축 ⓒ 이완우

이 몽심재 가옥은 현재 원불교 종교 재산이다. 민속 문화재인 이 전통 한옥을 찾은 방문객에게 원불교 장덕원 교무가 반갑게 해설과 안내를 해 준다. 작년 6월에 장덕원 교무는 예스러운 한옥 집무실에서 이곳 몽심재에 보관된 열 폭짜리 병풍 한 채를 펼쳐 보여주며 해설과 설명을 했다.

한 해가 지나 다시 남원 몽심재를 찾아 여행하였다. 이번엔 서리가 내려 호족시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감들이 가을 햇살에 주황색으로 반짝이는 11월 초순의 계절이다.

1년 반 전에 본 몽심재의 열 폭짜리 병풍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몽심재 높은 기단을 이루는 다섯 층계 석축이 이 전통 한옥의 높은 품격과 자긍심을 말없이 간직하고 있었다.

 남원 몽심재 사랑채 편액과 주련
남원 몽심재 사랑채 편액과 주련 ⓒ 이완우

이 가옥의 '夢心齋' 몽심재 편액이 보였다. 중심 건물인 사랑채의 두 주련 사이 방문 위에 걸려있다. 편액 좌우 기둥 칠언대련(七言對聯)의 글귀를 읽어 보았다. 이 글귀는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의 충신으로 손꼽히는 박문수(朴門壽)가 고사리를 캐서 정몽주에게 보내면서 함께 지어 보낸 시구라고 한다.

격동류면원량몽(隔洞柳眠元亮夢)
등산미토백이심(登山薇吐伯夷心)

마을을 저만치 두고 늘어선 버드나무는 도연명을 그리워하고,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숙제의 마음을 이야기하는구나.

'몽심'은 충신 정몽주를 염려하는 충신 박문수의 마음이 영원히 변함없는 것일까? 약 400년이 지나서 박문수의 14세손인 박동식이 이곳에 한옥을 짓고 이 대련에서 끝의 '夢'과 '心' 두 운(韻)을 따서 '몽심재'로 가옥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남원 몽심재 나무 마루
남원 몽심재 나무 마루 ⓒ 이완우

투박한 듯 정겨운 나무 마루에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머물렀다. 뒷마당에는 구절초가 한창이고 오손도손 항아리가 모여있는 장독대에는 한가롭게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장덕원 교무가 열 폭 병풍을 펼쳐 보이고 정성스럽게 병풍 안의 정신과 학문 세계를 쉽게 풀어 설명한다. 열 폭 병풍은 정성스럽게 도면을 그리고 검은 글상자에 금박으로 정성스레 글씨를 썼다. 몽심재의 열 폭 병풍은 퇴계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같은 내용을 정성껏 도표와 도식으로 그린 성학십도(聖學十圖) 병풍이었다.

 남원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
남원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 ⓒ 이완우

몽심재의 聖學十圖(성학십도) 병풍은 太極圖(태극도), 西銘圖(서명도), 小學圖(소학도), 大學圖(대학도), 白鹿洞規圖(백록동규도), 心統性情圖(심통성정도), 心學圖(심학도), 仁說圖(인설도), 敬齊箴圖(경재잠도)와 夙興夜寐箴圖(숙흥야매잠도)의 내용이 열 폭의 병풍에 단정하게 그려져 있었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와 몽심재 성학십도는 '인설도'와 '심학도'가 순서가 바뀌어 있다.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은 직사각형 검은색 글상자에 금니( 金泥,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가루)로 정서하였다.

몽심재 성학십도 1편에서 10편까지 병풍 윗면은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도식화 했다. 그러나 병풍 열 폭마다 아랫면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상징 부호와 도식이 추가로 그려져 있어 특별하였다. 이 부분은 새롭고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았다.

조선 시대에 전라 좌도와 경상 우도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이곳 남원 몽심재에 들렀다고 한다. 이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을 읽어보며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고 성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위) 남원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 (아래) 남원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 여러가지 상징 부호와 도식
(위) 남원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 (아래) 남원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 여러가지 상징 부호와 도식 ⓒ 이완우

장덕원 교무가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 앞에서 진지하게 말했다.

"이곳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에는 높은 정신문화와 교육적 가치가 담겨 있는 듯해요. 몽심재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 나눔과 사랑을 우선 가치로 삼는 전통이 가득해요.

이 시대에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과 가치관이 되살아나길 바랍니다. 서로 존중하고 돕고 화합하는 정신이 계승되기를 바랍니다."

남원 몽심재 전통 가옥에 보관된 성학십도 병풍은 심오한 이치와 추상도가 높은 도면으로 보였다. 평범한 방문객의 식견으로는 이 도면을 작성한 이 가문 학식 높은 분의 학문 수준과 정신세계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남원 몽심재 성학십도 병풍이 널리 알려지고, 우리 조상들의 학문 수준과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보존되기를 바란다.

 남원 몽심재 뒤뜰 구절초와 장독대 풍경
남원 몽심재 뒤뜰 구절초와 장독대 풍경 ⓒ 이완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조선시대 양반집에 하인을 위한 정자가 있다니'(2023.06.11), '길손 위해 방을 8개나 마련한 넉넉한 사랑채'(2023.06.13), '하녀들을 위한 부엌 마루를 외따로 낸 양반집'(2023.06.14)와 '만석꾼 고택 마당 바위에 호랑이 발모양?'(2023.06.15)의 기사와 관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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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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