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심초사 단풍 소식이 들리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영주 부석사로 향했다. 가을이되면 늘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부석사를 오랜만에 찾아가는 마음은 설렘으로 한가득이다. 영주 봉황산 중턱에 자리잡은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일곱 사찰 중 한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으로 가는 길, 노란 은행잎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석사에서 은행잎 단풍이 제일 아름다운 곳은 일주문과 천왕문으로 가는 길이다. 온 몸에 노란 물이 들 것 같다.
천왕문을 지나고 높은 계단을 올라 범종루에 이르면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무량수전이 있는 안양루에 닿는다. 부석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산 능선을 따라 거의 일직선으로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숨이 차오를 무렵 무량수전 앞마당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국보 제 18호인 무량수전은 언제봐도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멋스럽고 웅장하다. 현판은 홍건적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왔다가 부석사에 들렀던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한다.
가운데가 약간 불룩한 기둥 앞에 잠시 서 본다. '호젓하고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이라고 했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가 생각난다. 법당 안에는 국보 제 45호인 소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건물은 남향인데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 계신다.
무량수전 뒤쪽에 선묘각이 있고 그 곁에 부석(浮石)이 떠 있다. 부석사가 아름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선묘낭자의 사랑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의상대사를 흠모한 선묘가 대사가 귀국할 때 따라와서 줄곧 보호하며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도적떼들이 의상대사가 절을 짓는 것을 방해하자 선묘가 바위로 변해 도적떼를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한다. 선묘각에는 선묘낭자의 모습과 설화의 내용을 그려놓았다.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선묘를 떠올리며 부석을 바라보는 마음이 애틋하다.
무량수전 마당, 안양루 왼쪽에 있는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부석사 전경이 보이고 그 앞으로 소백산 준령이 넘실댄다. 아직 일몰 시각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사람들은 삼층석탑 주위를 서성인다.
아마도 일몰광경을 보기 위함일 듯하다. 나는 몇 해 전에 보았던 장엄한 해넘이 광경을 떠올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은행잎 단풍이 아름다운 일주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박물관이 있는 후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말고 대형, 또는 소형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