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총독‧마산부윤(시장)의 글씨를 새긴 돌(석물, 석각, 금석문)에 대학생들이 붉은 색칠을 하고 망치로 뭉개버린 행위는 결국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이 원인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창원시 문화시설사업소는 마산합포구 추산동 소재 마산박물관 야외 화단에 보호각(지붕)을 지어 봄에도 볼 수 있도록 야간조명시설까지 해 조선총독‧마산부윤의 석물을 받침지지대를 나란히 세워 유독 돋보이도록 전시해 놓았다.
해당 석물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 만들어진 추산정수장에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산명수청(山明水淸, 산수가 맑고 깨끗해 경치가 좋음)', 마산부윤 판원지이(板垣只二)의 '수덕무강(水德无疆, 물의 덕은 너무나 커서 그 끝이 없음)'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 석물이다.
두 석물은 김영삼정부 때인 1995년 민족정기 바로세우기 차원으로 철거되어, 산호공원(용마공원) 화단으로 옮겨졌다. 이곳에는 "일본 헌병의 눈알을 뽑았다"고 하는 김형윤 선생의 '불망비' 바로 앞에 있어, 사람들이 화단을 건널 때 디딤돌로 밟고 다니기도 했다.
이후 2001년 마산박물관이 만들어지면서 박물관 야외 주차장 화단으로 옮겨졌다. 당시에는 박물관에서 문신미술관으로 가는 길 옆 화단에 글자만 보이도록 해서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2022년 5~9월 사이, 지금처럼 전시 형태가 바뀌었다. 받침지지대를 세워 두 석물을 나란히 올려놓았고, 비를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호각이 지어졌으며 밤에도 볼 수 있도록 조명까지 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두 석물 양쪽에는 '어린이 헌장비'와 '3‧1독립운동기념탑 이전 안내판'이 나란히 있다.
'어린이헌장비'는 1966년 어린이날을 맞아 마산라이온스클럽에 의해 세워졌고, 처음에는 3.15의거기념탑 옆에 설치되었다가 산호공원으로 옮겨졌으며, 2001년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3.1독립운동기념탑은 2003년 4월 국제라이온스협회가 이곳에 설치했다가 2010년 10월 양덕동 삼각지공원으로 이전 설치해 놓았고 이곳에는 안내판만 있다.
어린이헌장비와 3‧1독립운동기념탑 이전 안내판이 낮게 되어 있고, 그 가운데 일본인 총독‧부윤의 글씨를 새긴 돌이 더욱 돋보이도록 해서 전시했다.
이같은 사실은 시민 제보로 알려졌고, <오마이뉴스>가 첫 보도한 뒤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기자회견을 열어 철거를 촉구하기도 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창원시의원들이 현장 답사를 벌이기도 했다.
마산박물관은 <오마이뉴스> 보도 직후 야간조명을 중단했고 두 석물 옆에 있는 설명판을 일시 철거했다. 그리고 창원시 문화시설사업소는 지난 7일 운영자문위원회의를 열어 받침지지대를 없애고 두 석물을 화단에 묻어 글자만 보이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문화시설사업소 "교훈을 얻고자 하는 취지"
창원시 문화시설사업소는 "유물의 보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교육을 위해 마산박물관 건립 때 재설치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업소는 해당 두 석물을 '유물'로 판단한 것이다.
사업소는 "현재는 과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역사적 사실을 보전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역사 유물도 보존‧관리하는 추세"라며 옛 목포 일본영사관, 군산 근대건축관,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사업소는 "2022년 마산박물관 야외전시장 정비 사업에 포함되어, 유물 보존과 경관 개선을 위해 지지대와 조명을 설치했다"라고 밝혔다.
사업소는 "역사적 사실 보존과 과거의 상처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취지의 반영이다"라고 했다.
창원시가 밝힌 마산박물관 소개 글을 보면 "지역 주민과 함께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들을 수집, 보관, 전시, 교육"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야외전시에는 월영대, 13인 시비, 몽고정맷돌 , 장승‧솟대가 있다고 해놓았다.
사전적 의미로 '문화유산'은 "앞 세대의 사람들이 물려준, 후대에 계승되고 상속될 만한 가치를 지닌 문화적 전통"이고, '유물'은 "앞선 세대의 인류가 후세에 남긴 물건"을 말한다.
일제잔재청산을위한대학생행동, 두 석물 훼손
우리 민족 수탈‧탄압에 앞장섰던 일본인 일제총독과 부윤(시장)이 쓴 글씨를 새긴 돌을 전시하고, 그것도 유독 돋보이게 해놓는 게 과연 시민정서에 맞느냐 하는 지적이 나왔고, 이에 대학생들이 나섰다.
일제잔재청산을위한대학생행동이 지난 8일 마산박물관 화단에 있는 두 석물에 붉은 색칠을 하고 망치로 글자를 뭉개버렸다.
대학생들은 성명을 통해 "친일정권 윤석열정권 들어 갑자기 일제 잔재인 석각이 전시되고, 그 장소가 1919년 3월 민중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장소인 추산정과 가까우며, 마산박물관이 역사적 사실을 시민에게 알리겠다는 이유로 전시했으나 안내판에 일제 잔재물임을 알리는 제대로 된 내용이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은 "도대체 이러한 흉물이 왜 박물관에 번지르르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인가"라며 "이 석각은 1995년 김영삼 정부 시기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된 후 2001년 마산박물관으로 돌아왔으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들어서 갑자기 전시된 것"이라고 했다.
또 대학생들은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를 역사기관 주요 요직에 앉힌 이 윤석열 정권 시기에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오늘 우리가 하는 행동은 정부의 역사 왜곡에 맞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함이며 대통령이 팔아먹고 있는 민족의 기상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선언했다.
대학생 4명은 마산중부경찰서에 재물손괴 혐의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창원촛불행동을 비롯한 시민들이 경찰서 앞으로 찾아가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창원촛불행동은 "1930년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이 쓴 글이 역사의 산물이라면, 오늘 학생들이 훼손한 것 역시 또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라며 "학생들이 한 행동은 역사와 민족, 그리고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고 이는 아직도 학생들의 역사의식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다"라고 했다. 대학생들은 이날 저녁 석방되었다.
"전시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두 석물은 그야말로 돌덩어리이고, 문화재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을 수탈하고 탄압했던 일본인이 쓴 글씨를 새긴 돌을, 그렇게까지 돋보이도록 해놓았어야 했느냐"라며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전시해 놓은 형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고문은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는 전시에 있어 방법이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해놓은 형태를 보면 두 석물을 받들어 놓았고, 선양해야 하며, 가치를 부여해서 추앙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김영만 고문은 "대학생들의 행동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을 수탈‧탄압하고 심지어 민족말살까지 하려 했던 일본에 대한 시민 정서를 반영해서 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번 일은 애초에 창원시가 두 석물에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해 전시해 놓았던 것이 원인이다. 지금 훼손된 것도 하나의 역사다"라고 했다.
김유철 시인은 "석물에 새겨진 글 문구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 말은 마치 조폭 어깨에 '착하게 살자'라고 새겨 놓은 문신과 같다"라며 "글을 쓴 사람이 조선총독과 부윤이다. 두 석물이 전시할 가치가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도 붓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완용 글씨를 전시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마산박물관 야외 화단에 설치해 놓은 두 석물은 전시할 만한 유물도 아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다 갖다 놓으면 그 곳이 고물상이지 박물관은 아니다. 전시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마산박물관은 붉은색칠에다 글자가 뭉개진 두 석물을 시민들이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하얀색 천으로 덮어 놓았다.
오는 12일 오전 마산박물관 화단 앞에서는 "일제잔재 석물 완전 철거 촉구" 행동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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