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이야기가 있는 대전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11월 10일에 개최됐다. 대전현충원을 걸으며 해설사로부터 주요 묘역에 대한 해설을 듣고, 묘비 닦기 봉사활동까지 진행하는 행사로, 대전지역 평화통일 단체들이 지난 2018년부터 시작해 매년 가을에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걷기 행사는 이날 오후 3시에 대전현충원 현충문과 장병 2묘역 사이 잔디밭에 모여 시작했다. 걷기 행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4개의 코스를 참가자들이 선택해 참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코스별로 10명~20명가량씩 선택했다.
1코스 '역사정의실현' 코스는 장군1묘역과 국가사회공헌자묘역, 독립유공자1-1묘역을 다녀오는 경로였다. 걷는 거리가 약 2.5km로 가장 많이 걷는 코스다. 1코스에서는 장군 1묘역 69호에 안장된 김창룡 묘를 제일 먼저 찾았다. 김창룡은 이승만 정권 당시 이승만의 오른팔로 불렸으며, 백범 김구 암살의 배후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전쟁 전후 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의 책임자여서 희생자 유족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본 관동군 헌병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조직을 정탐해 조직을 색출하고 조직원을 체포해 일본군 헌병 오장까지 특진했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려 국립묘지 안장에 부적절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은 국가사회공헌자묘역 민복기의 묘와 독립유공자1-1묘역 이재상의 묘였다. 특이하게도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1묘역은 국가사회공헌자묘역이 샌드위치처럼 위아래로 자리하고 있어 국가사회공헌자묘역 18호에 안장된 민복기의 묘와 독립유공자 제1-1묘역 497호의 이재상의 묘는 직선거리로 불과 60m 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런데 대법원장 등을 지낸 공로로 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된 민복기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판사였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그때 민복기 판사는 독립운동가 이재상을 유죄로 판결한 재판에서 배석판사로 참여한 바 있다. 민복기도 일제 판사 경력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2코스는 지난 해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서울의 봄'을 상기하며 '대전현충원과 서울의봄'이란 제목으로 장군 제2묘역을 다녀오는 코스였다. 2코스에서는 전두환과 노태우에 이어 보안사령관이 되었던 박준병의 묘(장군2묘역 383호)와 12·12군사반란 당시 반란군 진압에 나섰지만 부하에게 체포된 육군본부 김진기 헌병감의 묘(장군2묘역 6호)를 찾았다.
이어서 12·12군사반란 당시 보안사 보안처장을 지낸 정도영의 묘(장군2묘역 131호)와 12·12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반란군에 맞서다가 고초를 당하고 강제전역 당했던 장태완의 묘(장군2묘역 132호)를 찾았는데, 이들 묘는 나란히 안장되어 있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 이유는 국립묘지 안장 순서가 사망 또는 이장하는 순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정도영 장군은 2010년 7월 24일 사망했고, 장태완 장군은 이틀 뒤인 7월 26일에 사망했다.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서는 쿠데타 당시 반란군과 진압군이 함께 잠들어 있는 모습에 이야기를 듣는 참석자들이 씁쓸해 했다.
3코스는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이란 주제로 독립유공자2묘역과 독립유공자3묘역을 다녀오는 1.6km 가량의 코스였다. 이 코스에서는 을미의병의 최초의 주역 문석봉 의병장의 묘(독립유공자2묘역 168호)와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주역 중 한명인 김옥련 지사의 묘(독립유공자3묘역 167호),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묘(독립유공자3묘역 917호) 그리고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투탄의거'의 주인공 중 한명인 조문기 지사의 묘(독립유공자3묘역 705호)를 찾아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해방은 되었지만 분단으로 귀결되어 현재까지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도 하는 코스였다.
'오래도록 기억할 이들'이란 제목으로 기획된 4코스는 순직 및 의사상자, 민주화 운동 열사 희생자를 찾아가는 코스였다. 4코스에서는 독도의용수비대묘역을 비롯해 공무원 묘역에 안장된 세월호 순직교사와 의사상자 묘역에 안장된 세월호 선원들, 소방관 묘역에 잠들어 있는 세월호 참사 지원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등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4코스에서는 철도인들의 헌신과 희생을 알리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호국철도기념관과 87년 대선 당시 부정 선거 공작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지키다 군대 내에서 의문사 했던 정연관의 묘(장병 1묘역 103-3230호)도 찾았다.
제7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는 대전자주통일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역위원회, 유성겨레하나,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대전모임, 진보당유성구위원회, 현충원평화해설단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공동주최 단체를 대표해 인사말에 나선 추도엽 유성겨레하나 공동대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요즘처럼 절실하게 와 닿은 적이 없다"며 "오늘 행사를 통해서 역사의식을 더 바르게 갖고 나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밑받침을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자"고 말했다.
진경모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대전모임 운영위원은 "독립유공자를 비롯해 나라를 위해서 돌아가신 분들과 함께 12·12군사 반란자와 5·16 군사 반란자들, 일본을 위해서 살았던 김창룡 등이 묻혀 있다"며 "그런 사람들의 묘를 하루 빨리 파묘시켜서 독립유공자를 비롯해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분들을 편히 모실 수 있게 힘을 합쳐 나가자"고 호소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한 제7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는 묘비 닦기 봉사활동을 마치고 오후 5시 경에 끝마쳤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