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작은 시골마을에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습니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성공회 온수리성당이 그곳이죠. 성당 공식 명칭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성안드레성당'입니다.
같은 뜰 안에 있는 두 개의 성당 건물이 완전히 딴판입니다. 하나는 2004년에 축성된 유럽풍 현대식 성당이고, 옆에는 1906년 건축한 한옥 옛 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정면 3칸, 측면 9칸 총 27칸의 한옥 성당은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하는 인천시유형문화재 제52호 건물입니다. 두 건물에서 현대와 과거의 기막힌 만남을 느낍니다.
시골마을 한옥 성당... 교우들의 노력이 더해졌다
최근에 다녀온 대한성공회 옛 온수리성당 건물은 강화도 남부지방 선교의 중심으로 영국 선교사 트롤로프(Mark Napier Trollope) 신부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올해로 12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지닌 셈이죠.
천주교가 오랜 박해를 받은 후, 개항과 함께 선교의 자유가 주어진 때 들어온 대한성공회.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의 수난을 겪으며 프랑스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가진 강화도 사람들은 영국인과 성공회에 대해선 비교적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회는 강화도에서 조심스럽게 전파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은 마을 온수리에 진료소를 마련해 의료선교 중이던 영국인 의사 로스(A.F. Laws)가 있었습니다. 연 3천 명 이상 환자를 진료하고 헌신적 봉사를 지속하자 이에 감화되어 성도 수가 증가하고, 성당 건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지요.
이 성당은 영국의 선교자금이 아닌 교우들 스스로 땅을 헌납하고 건축자금을 마련해 세웠다고 합니다. 성공회 온수리성당은 자립적 신앙의 상징으로서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강화지역 소나무로, 향교나 관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통 건축양식의 건물을 지어 위화감 없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오랜 전통의 종교인 불교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건지, 건물 용마루 양옆에 새겨진 연꽃 문양의 십자가는 참 이색적입니다. 십자가가 눈에 띄지 않았다면 아마 성당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성당에 들어서기 전, 계단을 오르니 2층 종루가 멋있습니다. 종루는 교인이 드나들던 대문 역할을 합니다. 솟을지붕 아래 사방으로 벽을 트고, 종을 매달아 미사 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가 퍼져나가게 꾸몄습니다. 아래 줄을 당기면 땡그랑땡그랑 울릴 것 같습니다.
온수리성당은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교회와 종탑, 그리고 한옥 사제관이 인천시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서민적이고 차분한 성당 분위기가 절로 숙연하게 합니다. 들보나 서까래 단청 장식이 없는 전통적 한옥 그대로입니다. 돌과 기와로 쌓아 만든 소박한 성당 외벽이 아름답습니다.
강화도 길상면 출신 수필가 조경희는 수필집 <하얀 꽃들>에서 온수리성당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은 성당은 소녀인 나를 지켜주었다. 학교보다도 오히려 작은 성당이 지나간 날의 전부인 것처럼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 이 작은 성당이 없었다면 나는 어느 곳을 더듬고 다닐 것인가.'
- 고 조경희 수필집 <하얀 꽃들> 중에서
한옥 성당 문이 닫혀 있습니다. 들어가도 되는 걸까? 문을 열자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는 안내문이 눈에 띕니다.
성당 안이 엄숙합니다. 내부는 서양 평면 직사각형 바실리카 양식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십이사도를 상징하는 12개 기둥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가운데 복도를 중심으로 남녀가 나뉘어 미사를 드렸다 합니다. 천정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외부는 우리나라 한옥, 내부는 서양 양식을 절충한 초기 교회 모습을 갖춘 건물이 문화적 가치를 돋보이게 합니다.
독립운동의 숨결이 숨어있다
온수리성당은 건축물로서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919년 전국을 휩쓴 3.1 독립운동의 바람이 이곳에서도 불었습니다. 태극기 높이 달린 온수리성당에 수백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성당 한편에 김여수 마태의 묘가 보입니다. 항일운동으로 대전형무소에서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김여수 성도(1922~1945)의 독립운동을 온수리 성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옆에는 또 한 분의 독립운동가 기념비도 보입니다.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성공회 조광원 노아 신부님(1897~1972)을 기리는 비입니다. 신부님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자금 모금에 앞장서고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했습니다.
120여 년간 작은 마을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강화를 품어온 온수리성당. 2004년 새로 축성한 성당에 미사 공간은 내어주었지만, 여전히 성도들의 정성 어린 손길로 정신적 뿌리를 지켜가고 있으며 깊은 신앙심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