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심(恒心)이란 말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금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있듯 사람의 마음도 변하지 않을 때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무릇 정월 초의 마음이 섣달 그믐날까지 가야만 믿음이 갈 때가 있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일상에서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마음 바뀌는 사람을 좋아할 리 없다. 세네카도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천착했다. 그는 자신의 현실적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이성과 덕을 통해 평정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평가한다. 세네카식 항심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 한만도 못하다는 말이다. 항심도 과유불급이 있다. 다리 밑까지 물이 차올라 죽을 판이 되어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리를 붙잡고 있는 미생을 보라. 그 상황에서 약속을 지키고자 한 미생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항심은 커녕 그저 미련하게 보일 뿐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다. 융통성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켜보겠다는 태도이다.
일상의 삶 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국가 정책에서도 항심의 명분을 지키고자 미생지신의 우를 범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컨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개혁적으로 공약 된 정책들을 연구하여 속도감 있게 이행하고자 한다. 현 정부의 연금, 노동, 교육, 의료 분야 4대 구조 개혁 정책 공약들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4대 구조 개혁 정책들은 선거 과정을 통해 검증된 공약이기 때문에 모두 실천적으로 입법 되었으면 한다.
다만, 현시점에서 그 정책들을 흔들림 없이 이행하기에는 여야로 구성된 국회 환경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 정책들을 순조롭게 입법화하기엔 산 넘어 산이다. 여야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정책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정책들을 선별 우선하여 입법화하는 것이 어떠한가 싶다. 특히, 여야·의정협의회를 통해 발등에 떨어진 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등, 지난 국회에서 합의 직전까지 갔던 국민 연금 개혁만이라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입법 되었으면 한다.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여야의 불협화음 속 국회 상황에서 항심의 명분만으로 선거에서 공약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과욕으로 비칠 수 있다. 오히려 국민을 위해 이 정부에서 반드시 입법되어야 하는 의미 있는 정책들마저 미생지신에 빠질 우를 범하지 않을까 두렵다. 상황이 급변했는데 약속을 고집하려는 것은 미생지신의 전형일 수 있다. 차라리 정책 우선순위의 유연성을 보였으면 싶다. 기대해 본다.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보면 교육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아이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는 '퍼블릭케어 시대'를 열고 AI디지털 교과서나 지역 혁신 중심의 대학 지원 체계를 통한 융합형 미래인재 양성을 하는 것들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행했으면 한다. 다만, 교육 정책이나 단위 학교 조직에서 아무리 명분 있는 의사 결정도 효율과 효과성의 시기를 놓치게 되면 미생지신의 누를 범할 수밖에 없다. 기왕의 의사 결정이 해결해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기다려보는 것으로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잘못된 정책이나 의사 결정이라면 과감히 속도감 있게 유연성을 보이는 것이 잘못된 항심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 하던가. 일정한 생산적 효율의 가치가 없으면 조직이나 국민의 마음을 얻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게다가 모든 개혁은 기본적으로 타자를 설득해야 하므로 달리는 기차 바퀴를 갈아 끼우듯 어렵기까지 하다. 역대 정부에서 보더라도 어떤 개혁 정책이 국민 눈높이에 맞게 잘 이루어졌다는 소리가 자주 들리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정책 의사결정자들이여, 항심이 때론 아집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