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전통문화의 중심지 안동에 대한 여행은 오래전부터 갈망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된 병산·도산서원이나 하회마을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을 회돌아 가는 강이 너무 아름다웠다.
막상 안동에 와서 보니 놀라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동은 전국의 시 중에서 면적이 제일 크다. 광주시의 3배, 서울시의 2.5배 크기다. 유형무형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유산이 107개, 도문화유산이 232개나 된다. 안동은 우리나라 역사·문화의 보고라 할 만하다.
국보가 봉정사 극락전, 봉정사 대웅전, 하회탈 및 병산탈, 징비록, 안동칠충전탑 등 5개다. 무형문화유산은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8 개가 있다. 특히, 이러한 유무형 유산과 함께 한국 최다 독립운동가를 배출 '독립운동의 성지'라고도 불린다.
안동 여행 마지막 날인 10월 12일, 이날의 여정은 임청각, 경상북도독립기념관, 내앞마을 등 유적답사다. 안동 지역의 부자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쳤을 뿐 아니라,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임청각은 안동시에 위치한 고성 이씨 종택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이곳은 석주 이상룡을 비롯해 11명(9명이 건국 훈장을 받음)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임청각에 가기 전에 국내 제일 긴 나무다리라는 월영교를 다시 찾았다. 오가며 들르다 보니 벌써 네 번째다. 안갯속에 묻혀 있는 다리가 눈에 익었다. 차를 돌려 '안동법흥사지 칠 층 전탑'으로 향한다.
법흥사지 칠 층 전탑은 통일신라 시대 법흥사에 있던 탑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아 올린 탑)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법흥사는 18세기 이후 문은 닫았고 탑만 남아있다.
고성 이 씨 종택을 거쳐 '안동 임청각'으로 발길을 옮긴다. 임청각은 조선시대인 1519년 이명이 건립한 가옥이다. 낙동강을 앞에 두고 영남산 기슭에 있다. 규모가 99칸 가옥이었다고 전한다.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해서는 군사를 길러야 한다."
석주 이상룡은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친족 50여 가구를 이끌고 중국으로 향한다. 99칸 임청각의 풍족함과 안락함을 뒤로 했다. 중국에서는 독립기지인 경학사를 만들고, 군사를 기르기 위해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자 등 독립군 양성학교를 설립했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일제는 항일 정신을 억누르기 위해 임청각 앞마당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건설하여 가옥의 일부를 훼손하였다. 현재는 철도 이전으로 당초 모습대로 복원하기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다.
군자정은 임청각의 별당으로 조선 중기에 지은 '丁' 자 평면의 누각형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보물로 지정되었다.
임청각을 둘러보고 다음 행선지인 내앞마을로 향한다. 석주로에 들어섰다. 석주로는 낙동강 법흥 육거리에서 상아교차로까지 도로다. 석주 이상룡의 공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그 유산을 기억토록 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경상북도 독립기념관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위치한다. 안동 시내에서 15km, 30여분 거리다. 오전 10 시, 독립 기념관 입구에 도착했다.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열사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통로 우측으로 겨레마당, 추모벽이 있다. 추모벽에는 경북 출신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기념관 내부는 여러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전시관은 독립운동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다.
당시의 의병 항쟁과 임시정부의 활동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맨 처음 독립운동이 일어난 곳, 순국자가 가장 많은 곳,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경북이란다. '그리운 조국에게', '이달의 독립 운동가' 등에서는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독립기념관을 나와 내앞마을로 발길을 옮긴다. 내앞마을은 의성 김씨 김진의 후손들이 600여 년 역사를 이어온 곳이다. 나라가 무너지자 150여 명이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에 나섰다. 이곳 마을 출신 독립 유공자가 18명에 이른다.
안동 의성 김씨 종택은 김진, 귀봉 종택은 김수일의 종갓집이다. 백하구려는 독립운동가 김대락이 1885년에 건립했다. 이곳은 1907년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인 협동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다.
나라가 망하자 150명이나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투장에 앞장섰다. 백하 김대락, 일송 김동삼, 김락, 만원김병식, 김후병... 내앞마을은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