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납골시설인 '세종 추모의 집'(세종시 전동면 봉대리)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임시 안치하고 있지만 휴일과 법정휴무일에는 이용할 수 없어 유족들을 비롯한 추모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유족들은 수년 동안 개선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행안부는 지난 2016년 세종시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임시 안치를 위한 협약을 맺고, 세종 추모의 집 2층에 전국 각지에서 발굴한 희생자 유해를 임시 안치하고 있다.
현재까지 안치한 유해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수습된 1441구의 유해를 비롯해 모두 4000여 구에 이른다. 수만 점의 유품도 이곳에 임시 보관 중이다. 행안부와 세종시가 맺은 협약서를 보면 '민간인 희생자 유해·유품의 안정적인 보존과 사후관리, 임시 유해 안치 시설의 효율적인 관리·운영'으로 돼 있다.
하지만 유가족 등 추모객들이 공휴일에 이곳을 찾았다가 추모조차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되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공휴일에는 근무자가 없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시민들이 세종까지 와서 발길 돌린 이유
지난 10월 9일 제주 4.3 유족회 회원들과 제주시민 40여 명은 세종 추모의 집을 방문해 추모행사를 하려다 포기했다. 세종 추모의 집 측에서 '공휴일이라 근무하는 사람이 없어 문을 열지 않는다'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제주 4.3 유족회 회원들은 대전까지 왔다가 가까운 세종 추모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근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한 30여 구의 희생자 유해 안치식 행사를 오는 11월 30일 개최하려다가 근무자가 없어 문을 열 수 없다고 해 할 수 없이 평일로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유족들은 또 세종 추모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문의하는 전화를 해도 전화 연결이 안 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실제 기자가 13일 여러 차례 세종추모의 집 대표전화로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수년째 개선 요구했는데... "중장기적으로 방안 찾겠다"라는 행안부
세종시 관계자는 "세종 추모의 집 민간인희생자유해안치실(2층)은 행안부로부터 국비 보조사업으로 기간제근로자 1명의 인건비를 받아 관리하고 있다"라며 "그러다 보니 휴일과 법정 휴무일 인건비를 마련하지 못해 부득이 공휴일에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사전 예약을 하는 경우 공휴일에도 문을 열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안을 행안부 등과 협의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는 "공휴일 근무자가 없어 유가족이나 추모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걸 알고 있다"라며 "중장기적으로 개선 방안을 찾아보겠다"라고 답했다.
유족들은 행안부와 세종시의 이런 답변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수 년째 개선해 달라고 했는데도 답이 없더니 또다시 개선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찾아보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죽 답답했으면 '우리가 휴일근무수당을 줄 테니 문을 열어달라'고 했겠냐"며 "'시급히 개선하겠다'는 답변을 기대한 게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했다.
'꼬꼬무' 방영 이후 골령골-세종 추모의 집 찾는 발길 이어져
행안부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 평화공원이 건립되면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안치한 유해를 옮겨 안장할 계획이다. 2020년까지 건립하기로 했던 평화공원은 2024년으로 연기했다. 하지만 아직 한 삽도 뜨지 못했다.
최근 이같은 내용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약칭 '꼬꼬무')에서 '죽음의 골짜기'라는 부제로 방영되자 골령골에는 방송을 접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세종 추모의 집'을 방문하기 위한 문의도 부쩍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