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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에 무단 반출되고 6.25전쟁으로 1만2000 조각으로 분리되는 등 역사적 고난과 아픔을 가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113년 만에 복원을 마치고 12일 복원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 안착한 지광국사탑.
일제강점기에 무단 반출되고 6.25전쟁으로 1만2000 조각으로 분리되는 등 역사적 고난과 아픔을 가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113년 만에 복원을 마치고 12일 복원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 안착한 지광국사탑. ⓒ 원주시 제공

12일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113년 만에 복원됐다(관련 기사: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https://omn.kr/2ayby ).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는 석조문화유산이다. 건립연도는 지광국사 입적 후 15년이 지나서 탑비가 세워졌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070년에서 1085년 사이로 추정된다.

사찰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빈터로 남았으며 승탑과 탑비, 당간지주 등 석조물들은 경내에 남았다. 이 승탑은 독특한 구조와 장엄한 장식 등으로 역대 고승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부도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으로 평가되어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됐다.

이 탑은 일제강점기 1911년 일본인의 손을 거처 일본 오사카에 반출됐다가 1915년 다시 환수해 경복궁으로 이전됐다.

이 탑은 1923년에 경회루 동쪽으로 또 옮겨졌다. 이어 6.25 전쟁 중에는 폭격을 맞아 1만 2000개의 파편으로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국립고궁박물관 뜰에 서 있던 탑은 2016년 전면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가 약 5년간 보존 처리까지 마쳤다.

무엇보다 지광국사탑이 고향인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반갑고 기쁘다.

그러나 지광국사탑이 고향에 복원됐다는 기쁨도 잠시, 내 고향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언제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인지 잠시 탄식이 흘러나왔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고려 충목왕 4년(1348년) 시기에 경기도 개풍군(지금은 북한 황해북도 편입) 광덕면 부소산에 있는 경천사에 세워진 석탑이다. 높이 약 13미터인 이 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았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며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으로 가장 화려한 탑으로 알려져 있다.

경천사탑은 지광국사탑과 함께 1962년 국보로 지정됐으며 일제강점기 1907년 일본으로 불법반출됐다가 1918년 환수되는 등 불법반출 - 환수 - 복원 등 비슷한 수난과 복원과정을 거쳤다.

경천사탑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이전할 때 이곳에 전시됐다.

이때 개풍군 실향민들은 경천사지 '10층석탑'을 헤어진 이산가족을 만난 듯 반가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어 해마다 박물관의 경천사탑을 찾아 고향과 조상을 그리며 참배하고 있다.

그러나 실향민이 귀향을 바라듯 경천사탑의 고향 복원에 대한 꿈도 가지게 됐다.

지광국사탑 복원이 역사적 의미를 더하는 것은 원래 위치인 원주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경천사지 10층석탑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미완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개풍군 실향민 윤아무개 전 명예면장은 "경천사지 10층석탑이 이북 고향에서 전시될 때 진정 복원됐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간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회귀하는 본능이 있다. 문화재의 정체성도 '장소성'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지광국사탑처럼 경천사지 10층석탑도 하루빨리 제 고향을 찾아 복원되기를 염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지광국사탑#경천사지#10층석탑#법천사지#개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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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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