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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집에서 우리 가족은 2006년부터 무려 18년 동안 살았다. 새집으로 이사해서 기쁜 마음으로 집을 꾸미던 기억이 난다.

베란다에 마루도 만들고 보조 주방에 타일도 붙이고 창마다 시트지도 붙였다. 베란다 창고 문도 만들어 달고 거실에 놓을 의자도 만들었던 기억이다.

그래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어려서 벽에다 낙서하던 아이들은 다 자랐다. 지금 큰아이는 군에 입대하여 일병이 되었고, 둘째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났다.

당연히 그 동안 집도 낡아서 손봐야 할 곳이 늘어났다. 10여 년을 살고 나면 새로 짓는 아파트로 갈아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들 가운데 낯선 사람들, 이전엔 보지 못했던 이들이 점점 늘어 간다.

몇 해 전 아내는 미분양인 인근 아파트를 사자고 했지만, 나는 미분양인데 뭐 하러 큰돈을 쓰냐고 타박하며 말렸다. 그런데 웬걸 지금은 1억이나 올랐다.

이래저래 아무래도 당분간 새로 지은 아파트를 사기는 어려울 듯하여, 논의 끝에 우리는 헌 집을 고쳐서 쓰기로 했다.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해보기로 한 것이다.

약 26만 원, 근 2주 걸려 이뤄낸 변화... 집이 더 환해졌다

 싱크대 상부장 인테리어필름 시공을 마치고
싱크대 상부장 인테리어필름 시공을 마치고 ⓒ 박영호

먼저 싱크대 상부장에 인테리어필름을 덮었다. 유튜브를 보며 머릿속으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하니 비슷하게 해낼 수 있을 듯했다. 인테리어필름과 도구까지 샀더니 약 6만 원. 그 돈으로 이 정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니 가성비 최고다.

뿌듯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보니 깨끗해진 상부장과 지저분한 천장이 너무 뚜렷하게 대비된다. 특히, 화구가 있는 쪽은 기름때가 찌들어 있다.

내친걸음에 도배나 페인트 칠을 하기로 했다. 아마 전문가에게 맡기면 완성도도 높고 편할 것이다. 하지만 시공을 맡기면 비용 같은 가성비도 문제지만, 도배나 페인트 칠을 하면 그렇게 하는 동안 내내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손수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조금 불편은 해도, 나나 아내가 집을 그대로 쓰면서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까지 직접 고치고 수리하는 디아이와이(DIY)를 취미로 몇 번 해본 터라, 이번에도 직접 해보면 재미 있을 것 같아 일단 용감하게 나섰다. 초보자에겐 도배보다도 페인트 칠이 쉬울 듯했다.

 페인트 칠을 마치고
페인트 칠을 마치고 ⓒ 박영호

요즘은 벽지 위에 바로 칠할 수 있는 페인트가 나오고 있다. 당연히 1급이 좋겠지만 비용도 비싸고 해서 가성비를 생각해서 2급으로 샀다.

4L짜리 4통을 샀는데 한 통에 1만 6200원이다. 1급인 것은 5만 원대이고 외국산은 6만 원도 넘는다. 대충 계산해 보니 붓을 비롯한 부자재까지 약 20만 원쯤 들었다.

페인트칠, 말로 하기는 참 쉽다. 커버링 비닐과 마스킹 테이프를 꼼꼼하게 붙이고 페인트칠하면 끝이다. 근데 몸으로 직접 해보면 엄청 힘이 든다.

 아이들낙서가 남아 있는 거실 벽
아이들낙서가 남아 있는 거실 벽 ⓒ 박영호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특히 저 천장을 칠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 한편으론 면벽수행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두 시간 칠하다 보면 무념무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색상은 '리넨'인데 처음 듣는 이름이다.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 느낌인데 칠하고 나니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더 밝은 느낌이다. 1급 아닌 2급이라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냄새가 약하다. 칠을 마치고 이틀쯤 환기를 하니 일부러 냄새를 맡으려 하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에 거실만 하려고 했는데 페인트를 너무 많이 샀다. 거실 벽과 천장을 2번씩 칠하고 남은 걸로 작은 아이 방의 벽과 천장, 현관 벽과 천장도 모두 2번씩 칠했다.

 하기 전에 꼼꼼하게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끝난 다음에 고생할 수 있다
하기 전에 꼼꼼하게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끝난 다음에 고생할 수 있다 ⓒ 박영호

듣던 대로, 페인트는 방 벽지 위에 그냥 칠해도 쉽게 칠해져서 좋았다. 참고로 우리 집은 85제곱미터, 약 25평이다.

나 혼자서 약 2주간 주말마다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꼬박 4일씩 걸려 두 번, 그렇게 내부를 새로 바꿨다. 금요일 퇴근해 그날 저녁 먹고 두세 시간 일한 것까지 따지면 그래도 넉넉히 5일은 잡아야 한다.

'엄마아빠 미워'... 아들이 쓴 낙서 지워진 게 아쉽다

 아마도 아들 글씨가 아닐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아들 글씨가 아닐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 박영호

아들이 제대할 때쯤엔 아들 방도 칠해야 서운해하지 않을 듯하다. 아들 방 스위치 옆에 '엄마 아빠 미워'가 쓰여 있었다.

아들은 자기가 쓴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아들 글씨처럼 보인다. 깔끔해진 벽을 보니 기분은 좋은데 아이가 남긴 작은 추억이 지워진 것이 아주 조금은 아쉽다.

추억을 휴대폰 사진으로 담으며 생각한다. 무엇이든 이야기를 담아 기억하면 좋은 추억으로 쌓인다. 추억이 쌓인 물건은 아이의 애착 인형처럼 좀처럼 버릴 수 없게 된다.

아내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하지만, 나는 곳곳에 손때 묻은 이 집을 쉽게 떠나고 싶지 않다. 무엇이든 낡으면 버리는 세상에 낡은 것을 고쳐 쓰는 이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회 칠을 마친 거실 벽
1회 칠을 마친 거실 벽 ⓒ 박영호

 거실이 넓어진 느낌이다
거실이 넓어진 느낌이다 ⓒ 박영호

로제가 부른 '아파트' 때문에 윤수일의 '아파트'가 다시 새로 뜨고 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낡고 헌 아파트, 그냥 이사만 갈 게 아니라 고쳐서 쓰면 어떨까? 나같은 '완전 초보'라도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오는 주말, 심심하다면 벽지에 페인트칠은 어떠한가. 혹 내 집이 아니라서 칠하기 어렵다면, 꽃병이나 화분이라도 새로 하나 놔둔다면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인테리어#집꾸미기#벽지페인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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