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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의 신곡 '아파트(APT)'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90년대생이라면 학창 시절에 지겹게 했을 '아파트 게임'의 멜로디와 리듬을 차용했다. 그토록 많이 게임하며 외친 문구들인데도, 이 단어에 음률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것에 영어가사와 일렉트릭 기타 반주가 섞여 중독성 강한 팝송이 탄생했다. 예상치 못한 전략이었다. 이번 앨범은 그녀가 블랙핑크 전속계약 만료 후 타 소속사와 솔로로 처음 계약한 활동이다.

게다가 세계적 팝 스타 브루노 마스까지 함께 한다. 수많은 자본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마당에 되려 힘을 쭉 뺀 '이지리스닝', 누구에게라도 듣기 편한 곡을 발매하다니! 그녀의 과감함에 난 창작자로서 질투를 느꼈다.

어릴 때부터 창작자였던 나

 로제 아파트 뮤직비디오 중
로제 아파트 뮤직비디오 중 ⓒ 아파트MV

난 어릴 때 돌잡이 때 연필을 잡았다. 그래서인지 이후로 쭉 창작의 길을 걸었다. 학생 때는 매달 글짓기와 UCC 영상 제작 대회에 나갔고, 성인이 되어서도 콘텐츠로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 회사에서는 디자이너이면서 집에서는 유튜버, 또 기사를 쓰는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창작을 하며 나는 늘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왔다. 그러면서 반드시 고수해 온 원칙 또한 있었다. 바로 누군가 만든 템플릿을 활용하지 않고, A부터 Z까지 내가 새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아파트보단 단독 주택을 만드는 방식에 가깝다고 하겠다. 한번 만든 단순한 골조를 재활용하기보다, 매번 지리적 조건에 따라 공사 방법을 새로 선택한다. 영상 하나를 만들어도 자막 스타일부터 색 보정까지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 구상한다.

이 방식은 나의 창의성과 고유성은 지킬 수 있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I니 스마트폰 영상 제작 어플이니 수많은 도구가 쏟아지자 도저히 창작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반면 로제는 '아파트(APT)'를 통해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리듬을 골조 삼아 자신의 매력을 입혔다.

그녀는 누구보다 알앤비나 어쿠스틱 팝을 잘 하는 가수이지만, 모두가 잘 알아서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곡을 택했다. 그러자 감상자들은 곡을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재창작해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온라인 공간에서 '패러디'가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숏폼 영상이 대세인 플랫폼 '틱톡'에서는 아파트 챌린지, 즉 '#APTchallenge' 해시태그를 단 콘텐츠가 하루에 수백 개씩 올라온다. 단순하고 잘 아는 곡이기에 가능한 시도들이다.

하루에도 수백 개... 아파트 열풍

 AI를 활용한 윤수일, 로제, 브루노 마스의 APT 영상
AI를 활용한 윤수일, 로제, 브루노 마스의 APT 영상 ⓒ 유튜브

MZ세대가 주요 구독층인 유튜브 개그채널 '빵송국'에는 곽범과 엄지윤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흥겨운 고갯짓을 따라하는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일부 외국 팬들은 이걸 원본으로 알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팬층들은, 이 영상을 원본인 줄 아는 중년 세대와 외국 팬들에게 댓글로 "이건 재건축한 아파트"라며 웃음 섞인 해명을 해주고 있다.

로제의 '아파트'는 AI를 활용해 재구성하기 좋은 재료이기도 하다. 명확한 리듬 패턴, 단순한 악기 구성, 다수의 반복 구간. 이런 심플한 골조 덕에 AI가 패턴을 분석하기 쉽다. 이 때문에 로제의 아파트는 여느 다른 곡보다도 더 활발한 재구성 패러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곡의 인기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듯한 이유다. 너도나도 층층이 콘텐츠를 쌓아 올린다.

 어떤 유튜버는 AI를 이용해 윤수일과 로제, 브루노 마스를 소환시켜 셋이 함께 하는 '트리오 무대'를 만들었다.
어떤 유튜버는 AI를 이용해 윤수일과 로제, 브루노 마스를 소환시켜 셋이 함께 하는 '트리오 무대'를 만들었다. ⓒ 화면갈무리

그뿐인가. 어떤 유튜버는 AI를 이용해 윤수일과 로제, 브루노 마스를 소환시켜 셋이 함께 하는 '트리오 무대'를 만들었다.

원조 '아파트' 노래로 유명한 가수 윤수일은 만든 지 40년이 넘은 곡인데도 젊은이들이 찾아줘 고맙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MZ들은 이들에게 '재건축 아파트', '구축 아파트', '신축 아파트' 등 애칭을 붙이며 왕성하게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보면 독일 클럽이나 뉴욕 맨해튼 거리에 있는 외국인들도 '아파트' 세 글자를 따라서 부른다. 한국어치곤 비교적 발음이 쉬운 탓인지, 눈을 감고 들으면 이것이 이들의 모국어인지 외국어인 건지 잠시 헷갈릴 정도다.

말하자면 로제가 전 세계에 노래로 세운 '아파트'인데, 이 아파트의 1층부터 100층까지 전부 세대, 인종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골조는 위로 쌓아 올리기가 더 쉽다. 같은 템플릿을 사용하더라도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이 단순한 법칙을 아파트(APT) 노래가 말해준다.

단순해도 괜찮아, 네 색깔만 있다면

나는 어떤 '틀'이나 '형식'이 내 자유로운 창작성을 가둔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벗어나 그걸 되려 활용하고자 하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당장 내 시간을 묶어 놓는다고 생각했던 회사에서도 시도해볼 일이 많아졌다.

미루고 미루던 회사 내 자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창고에 재고가 쌓인 공예품들을 찍어 온라인 스토어에 소개하는 것이었다. 사장님이 내게 제의했던 부업인데, 시간이 없어 미뤄 뒀었다.

하지만 '템플릿'이 있으면 금방이다. 휴대폰으로 찍은 제품 사진을 포토샵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에 넣어 단숨에 상품 페이지를 만들어낸다. 내친김에,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우리 회사를 해외에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도 준비 중이다. 모바일 영상 편집 어플을 이용해 만들어보니 약 5분 만에 감성적인 쇼츠 하나가 뚝딱 나온다.

내심 회사에서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창작 활동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기가 창작의 도구와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템플릿의 기본만 익히면 누구나 금세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지 않은가.

로제의 아파트 노래, 거기서 전환점인 격인 가사가 내 맘에 꽂힌다.

"Hey, so now you know the game. Are you ready?
(자, 이제 너도 게임을 알겠지. 준비됐어?)"

나는 이제 '원래 있던 것'을 다시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창작자로서 이건 반칙이 아니라, 게임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전략일 뿐이었다. 로제의 '아파트(APT)'는 단순한 후크송의 유행을 넘어, 창작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녀가 앞으로 보여줄 여러 가지 게임들은 아직 남아있다. 당신이 회사이든 학교든, 집이든 일단 스스로가 걸어온 길과 지닌 것들을 잊지 말자. 내 안에 지닌 골조들을 활용하되 거기서 뭔가 새로운 걸 고민해보자. 기억하자, 우리도 이 게임을 함께 즐기는 플레이어라는 것을.

#로제#브루노마스#APT#윤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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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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