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오전 11시, 제54주기 전태일추도식과 제32회 전태일노동상 시상식이 전태일재단 주최로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묘역에서 진행됐다. 이날 추도식에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권영길·이수호 전 위원장, 남상헌 지도위원,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과 김동만 전 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 150여 명이 참여했다.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2시 청계천 인간시장(평화시장) 앞에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온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했다. 이날 전태일의 분신은 노동의 긍지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역사의 디딤돌이 되었다.
이정기 지회장(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은 민중의례에 이어 전태일 약력 소개, 추모기도, 인사말, 추도사, 추모 공연(종합예술단 봄날, 래퍼 권도엽), 제32회 전태일노동상 시상식, 유족 인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 기도에서 4.16 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박승렬 목사는 "서로 종교는 달라도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모아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한다."면서 "지금도 장시간 노동과 해고를 강요하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새로운 힘으로 채워주옵소서. 옥상에서, 천막에서, 공장에서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노동자가 고난을 이겨내고 해방과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또한, "이 자리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늘 특별한 사랑과 은총으로 함께 하옵소서."라고 마무리했다.
인사말에서 임현재 이사장 직무대행은 "이사장·사무총장 직무대행이 재단을 이끌어 가고 있지만, 계획된 사업들은 최선을 다해 진행했고 전태일 기념관 수탁도 이어가게 됐다."면서 "전태일재단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이 중심이 되는 기본 사업과 장학 사업 등에 더욱 매진할 것이며 전태일 친구와 가족이 앞장서겠다.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아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지난 주말 집회에서 연행되었던 조합원들이 어제 다행스럽게 4명의 구속영장이 기각, 석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하며 자신을 포함한 지도부 7명에 대한 소환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자신을 내던진 전태일 열사의 투쟁을 돌아본다. 차비를 나누어 서로의 배고픔을 달랬던 열사의 삶을 돌아본다. 우리는 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해 무엇을 걸고 싸우고 있는가? 민주노총은 울타리 밖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내놓고 있는가? 열사의 영전에서 겸허히 돌아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서 "기후의 위기가 AI와 플랫폼노동의 도입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탐하며 노동 기본권마저 위협받는 시기다. 윤석열 정권은 변화의 시기, 퇴행의 폭주 기관차가 되어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정권에 의해 노동 현장은 유린당하고 민중의 생존은 위협받고 있다. 날로 격화되는 전쟁의 위기는 공멸을 불러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고, 삶이 힘겨운 민중들은 희망을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참혹한 사회다. 민주주의가 언론이 공공성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히 파탄 나고 있는 지금"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며 "열사의 외침이 노동자 민중에게 저항의 불씨가 되었듯, 우리의 투쟁이 윤석열 정권의 퇴진과 한국 사회 대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하루하루를 싸워나가고 있다."면서 "열사의 정신을 잇고 계승하는 것은 지금 시기 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해 헌신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민주노총답게 열사의 뜻에 따라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추모했다.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은 추도사에서 "정부가 말하는 노동 개혁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고, 임금 유연화 정책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 시도 등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끌어내리는 한편, 노동조합 회계 공시로 노동조합을 비리 집단으로 매도하여 노동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했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노동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노동법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며 "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노동 개혁을 비롯한 반노동 정책을 단호히 거부하고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한국노총은 버스비를 아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며 몇 시간을 걸어서 집에 갔던 청년 전태일의 따뜻한 나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 플랫폼 프리랜서 동지회를 설립하여 노동법과 사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 약자 보호와 권익 증진에 힘쓰고 있다."라며 "노조법 2·3조 개정 재추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플랫폼,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사회보험 전면 적용 등 하청노동자,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노동권, 노동 기본권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김용균재단)은 "아들(김용균)이 부당하게 목숨을 잃은 뒤 노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데다 싸울 줄도 모르는 제게 힘낼 수 있도록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들이 손잡아주셨다."면서 "그래서 용균이의 죽음이 대부분의 사고사처럼 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 전태일과 이소선의 노고로 민주노조가 활성화하게 되었고, 그것이 마중물 되어 아들 용균이의 부당한 죽음으로부터 부족하나마 산안법(산업안전법)과 중처법(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태일 이소선 열사의 정신 계승은 노동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현안에 밀접하게 다가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라며 "오늘 전태일 54주기 추도식을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한다."고 추도했다.
전태일재단과 매일노동뉴스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32회 전태일노동상 시상식에서는 김태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공동대표가 수상했다. 또한 특별상은 오자와 다카시와 오자와 쿠미코 부부에게 수여됐다.
한계희 심사위원(매일노동뉴스 대표)은 심사평에서 "저희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세 분을 선정했다. 또 많은 분이 한꺼번에 추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그만큼 훌륭하신 분이라는 걸 말씀드린다"고 평했다.
이어서 "올해 노동상의 주인공은 김태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다. 6월 24일 23명의 생명을 앗아 간 아리셀 공장 화재가 발생한 이후 지난 4일 이들의 장례를 치르기까지 무려 132일이 걸렸고 지금도 에스코넥 본사 앞에서 농성 중이다. 김태윤 공동대표는 불법파견이라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군납 비리처럼 얽히고설킨 이권 카르텔을 폭로하고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여전히 투쟁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태윤 공동대표는 현재 청주노동인권센터 소장이자, 충북 시민사회단체 연대의 공동 집행위원장이고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충북본부 공동대표"라면서 "그는 청주 그리고 충북에서 오랜 기간 노동뿐만 아니고 여성과 돌봄, 언론, 문화예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여성 노동운동가이자 마당발 시민운동가로 불린다. 경계를 넘어 연대를 실천하며 상생 공동체를 지향한 그에게 전태일 노동상이 힘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어서 "특별상은 오자와 다카시와 오자와 쿠미코 부부에게 드린다. 1989년 한국수미다노조의 일본 원정 투쟁부터 오자와 부부는 일본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지역사회를 조직해 한국 노동자와 함께했다. 온갖 혜택을 누리고는 단물이 빠질 즈음 한국에서 철수하는 일본 자본에 맞서는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언제나 오자와 부부는 연대했고 그 과정에서 구속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이제 한국 사람이, 한국 노동자들이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오자와 부부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전태일노동상 특별상을 수여한다."고 말했다.
노동상을 수상한 김태윤 대표는 "여기에 계신 유가족분들은 전태일 열사가 누군지 잘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11월 13일 이곳에 모이는지도 잘 알고 있지 못하다."며 "근데 저는 여기 계신 우리 유가족들이 살아서 실천하는 전태일 열사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며 "참사가 벌어지고 나서 살아가기 위한 143일째의 투쟁의 과정에서 부패하고 무도한 정부와 탐욕스러운 자본이 만들어 낸 기업 살인이고 사회적 참사라는 것을 우리 유가족들이 밝혀냈다"면서 "저희 유가족들은 우리만의 투쟁이 아니라 실제로 다시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일하러 나갔다가 죽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에스코넥 앞에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특별상을 수상한 오자와 다카시와 오자와 쿠미코 부부는 수상 소감에서 "솔직히 말해서 저희는 일본인인데 우리가 전태일 상을 받아도 되는지 망설임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원정 투쟁 오면 열심히 하라는 그런 격려와 앞으로 더 잘하는 질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저희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에 전태일 상을 받게 된 것은 저희 두 사람이다. 하지만 원정 투쟁을 오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지금 통역하는 통역자도 그렇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노동조합 그리고 많은 민중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그런 많은 사람에게 주신 거라고 저희는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투쟁하는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우리 일본 노동자들이 수상한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피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