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경기 가평,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여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
미국 대선이 있었던 지난 5일 나는 아이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인 친구네 집을 방문하기 위해 들렀던 것인데 어쩌다 보니 미국 대선의 분위기를 여행객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는 트럼프와 해리스, 두 후보가 대결 구도임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선거 운동 방식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길거리마다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정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투표 독려 방식을 재밌게 생각했다.
미국 선거날, 아이 눈에 띄인 것
우리는 리프트(미국의 승차 공유 서비스)와 시내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시내버스는 1회에 1.1달러였다. 5일,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웃으며 오늘은 무료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선 투표일은 공휴일이 아니라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투표일의 모든 버스비가 공짜였다. 'free ride today'라고 적힌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한번 놀랐다.
산타모니카의 바닷가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많은 집들은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10월 9일 한글날,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던 아이는 국경일이나 공휴일이 아닌데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성조기를 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게양한 수십 개의 성조기를 보며 도착한 바닷가의 어느 카페 직원은 가슴에 'I voted'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또 놀랐다. 로스앤젤레스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UCLA 해머 미술관이 거대한 투표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미술관 입구에는 투표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었고, 안내 데스크에는 귀여운 성조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투표 권장 스티커를 가슴에 붙인 미술관 직원이 투표를 위해 왔는지 단순 관람인지를 물었다. 여행객임을 밝힌 후 돌아다니며 전시를 관람했다. 투표장 근처에는 가슴에 투표 스티커를 붙인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었고, 유권자들은 미술관 벽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부모를 따라 미술관에 온 아이들은 공터에서 안전하게 놀며 투표하는 어른들을 구경했다. 아이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주민센터에는 어린이 쉼터가 없는데, 미국 아이들은 이렇게 예쁜 곳에서 투표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구나."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던 부모들이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간식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한국의 투표소를 떠올렸다. 좁고 기다란 주민센터 복도에서 시작해 건물 밖의 인도까지 늘어선 사람들, 투표권이 없는 어린이를 위한 휴게소는 존재하지 않았던 삭막한 풍경을 떠올리니 어쩐지 서글퍼졌다.
유권자의 편의를 존중하는 노력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밤 늦게까지 개표 현황을 구경하다 잠들었다. 다음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이가 물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에 좋아?"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이에게 답했다.
"45대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는 밑그림이 그려진 도화지에 밑그림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색칠을 하던 사람이었어. 47대 대통령인 트럼프는 밑그림이 거의 다 지워진 도화지에 밑그림을 마음대로 그리고 색칠을 할 것 같아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이야."
"한국은 분단국이고, 미군이 있는 나라니까 더 걱정하는 부분도 있어. 하지만 어느 나라나 대통령이 내린 결정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들의 행동을 보며 다음 투표를 기다리는 유권자들도 있고. 그래서 좋다 나쁘다는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모든 투표가 의미 있다고는 말할 수 있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말이야."
한국의 경우 투표율에 관한 우려는 주로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른다는 점에서 나 같은 정치적 중도층은 투표 결정이 참 어렵다. 투표일에는 어딜 가나 투표가 일상인 로스앤젤레스의 모습을 보며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투표를 알리는 미국의 방식이 조금 부러웠다.
단순히 투표를 하자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투표장 접근성을 염두에 둔 방식, 유권자의 편의를 존중하고자 하는 주정부의 노력이 인상 깊었다.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투표장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 대중교통 무료 서비스. 배리어프리 구역인 공공미술관 투표소 등은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한국은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유권자 등록이 어려운 국가고 경합주에 따라 표의 비중이 달라진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한국보다 높은 투표율을 자랑하기도 한다. 투표장 접근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주정부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선거 결과는 예측을 따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투표를 통해 드러난 정서를 바탕으로 정치인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많은 책임감을 느낄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공적인 사안으로 발전할 현안도 많아질 것이다. 공적인 사안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고 다음 투표에 참여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시민 교본으로 작용할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2027년이다. 성인이 된 큰 아이가 첫 투표를 할 의미있는 선거일이다. 2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니 지금부터 준비해도 결코 빠르다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대화를 나누며 다음 대통령 선거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