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우리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인터넷과 휴대폰이 아닐까 싶다. 변화라는 것이 모두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작용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변화를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 잃어버리는 것들 혹은 잊어버리는 것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런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들, 존재 조차 몰랐던 것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책이다(23쪽). 개인적으로는 X세대(1965년~1979년생 포함)에 속한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매우 흥미로웠다.
필름카메라에 대한 언급 부분에서는 어떻게 찍혔을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설렘의 감정을 증폭시켰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필름 한 롤을 다 찍어야만 현상소에 맡겨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고, 비싼 필름 가격 때문에 한 장 한 장을 정성들여 찍어야 했던 시절.
지금은 한 장의 사진을 건져내기 위해 100장의 컷을 버릴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MZ세대는 그 감성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가 집에 방문했을때 어릴 적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꺼내 보며 함께 웃고 쑥쓰러워 하던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어 쓸쓸한 감정도 든다.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온라인에서의 상시적인 연결은 엄청난 위안을 준다. 하지만 공유하거나 참여하지 않은 쪽을 선택한다면,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상황에서도 단절감을 느끼고 심지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달콤한 고독보다는 고립처럼 느껴질 수 있다. - 107쪽.
우리는 느슨한 연대이든 끈끈한 연대이든 목적을 위한 의도된 연대이든, 연대와 연결 없이 삶이 직조되지 않는 현재를 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바로 옆에서 소통하는 것 같은 친밀함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고립시키고 단절시킬 수도 있기에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연결의 적정선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질문은 존재하지만 해답은 찾을 수가 없다.
우리가 가장 지속적으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은 아마도 페이스타임, 줌, 구글 미팅의 화면을 통해 서로를 바라볼 때가 아닐까. 안전거리가 확보되었을 때만 우리는 타인의 눈을 바라본다.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에야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다른 창을 열고 다른 것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233쪽)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반강제적으로 가상의 공간에서 누군가의 눈을, 상대방의 표정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던 시기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눈과 귀는 수시로 핸드폰으로 향했었다.
알림 소리에 신경이 쓰여 앞에 앉아 있는 상대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줌이라는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발언자의 눈과 표정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다준 작은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쪽지 전달. 문자메시지와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 쪽지는 복잡한 우정 네트워크를 탐색하고 지루한 수업을 견뎌내고 방과 후 할 일을 계획하는 방법이었다. 쪽지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악의적인 사람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258쪽)
쪽지를 주고받는 일!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일 것이다. 초등학교때는 교내에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우편함이 있었다. 소소한 이야기들, 싸운 뒤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러브레터 등 무수히 많은 글들을 종이라는 물성에 적어 주고받았었다.
나 역시 그 편지와 메모들을 아주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보관했던 기억이 있다. 우연히 발견하고 다시 꺼내 읽어보면서 그시절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 지금은 문자메시지, SNS를 통해 언제든 대화할 수 있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쪽지에만 담을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인터넷은 마녀가 유혹하듯 우리의 비밀을 끄집어내 공개한다. 다른사람이 내 비밀을 알아내듯 우리도 다른 사람의 비밀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만족할 줄 모르는 염탐꾼이다. 모든 비밀이 밝혀질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호기심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된다.(263쪽)
많은 사람들이 헤어진 연인의 SNS를 몰래 염탐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카톡 프사가 바뀔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던 적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수많은 유혹들이 완벽한 단절을 방해한다. 때로는 잘못된 염탐꾼들이 잔인하게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완벽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 지켜야 할까?
최근 레딧의 한 스레드가 새롭고 무자비한 첫 데이트의 효율성을 깔끔하게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손실도 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알아가던 때가 그리워. 문자로는 같은 질문을 해도 미묘한 표정과 몸짓의 신호는 전달되지 않으니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같아. 매력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소가 배제되고 언어적 소통이나 조작에 얼마나 능숙한지에만 중점을 두게 되는 것 같고."(278쪽)
문자를 주고받다가 뉘앙스를 오해하고 불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목소리톤, 표정, 몸짓을 동반해서 전달했다면 오해하지 않았을 상황도 건조한 문자 메시지로 인해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우리는 단문 메시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즉각적인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의 개성과 성향이 배제된 채 텍스트 위주의 소통으로는 전할 수 없는 진심이 있다. 몸짓도 표정도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만든 기술에 뒤처진 것은 우리 인간일지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우리만의 것으로 붙잡고 간직하기 어려운 것도 우리 인간일지 모른다. 잃어버린 것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존재도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인터넷은 주어진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며 모든 것을 보관한다. 어쩌면 인터넷은 우리가 아직 놓칠 수 없는 것들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줄지 모른다.(320쪽)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좋았다는 식의 얘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시 인터넷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지도 모르고 잃어버리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323쪽)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읽혔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잊힌 그 시절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 상황들이 있다. 감정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그 시절엔 소중했으나 지금은 다시 찾을 수 없는 유실물이다. 이 책을 통해 깨닫고 다짐한다. 지금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