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개념에 의해 해명되듯이, 리얼리티는 관점에 의해 설명된다. 이 연재는 청년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북향민의 리얼리티다. 그리고 다시금 통일에 대한 비전을 기록한다.[기자말] |
현재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 3만 5천여 명, 그중에 연령별 입국 현황을 보면 20~30대 청년이 60% 가까이 된다. 10대 청년 비율도 10%가 넘는다. 청년을 규정하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10~30대 MZ세대 기준으로 보면 무려 탈북민 70%가 청년들이다. 모두 새로운 정착지에서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려는 청년들이다.
전체 탈북민 중 70%가 넘는 청년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정규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탈북 시기에 몇 살이었는지에 따라 다르다. 10대 청소년의 경우 대부분 북에서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거나 학교를 다닐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받고 싶은 지원'이 뭐냐는 질문에 탈북민 청소년의 55%가 '학습, 학업지원'이라고 답했다.
북한에서 고등학교까지 정규교육을 마치고 왔더라도 교육 격차와 교육 내용의 차이로 인해 다시 기초부터 공부해야 한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탈북하는 청소년의 경우 그나마 다행이다. 비슷한 연령으로 들어가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성인이 되어서 탈북한 청년들의 경우는 다르다. 취업 현장에 뛰어드는 청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초중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은 어디든 취업을 하려면 적어도 '대졸'이 디폴트인 사회이기에 최소한 입사지원 기준에는 맞춰야 한다. 그렇게 탈북청년들은 늦은 나이에 입시공부를 시작해서 또래보다 적게는 서너 살, 많게는 띠동갑 나이에 대학생이 된다. 그나마 이것도 다행스러운 경우다. 공부할 여건조차 안 되는 청년들도 많다.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송금해주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청년들은 취업과 창업에 뛰어들며 이마저도 남한 또래 청년들과 출발선이 다르다. 이렇게 대부분 늦은 나이에 다시 학력이나 경력을 시작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시작이 늦었다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늦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탈북민 청년들은 차근차근 밟아야 할 정규교육 과정을 단기간에 습득해 버린다. 취업전선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곧잘 이겨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주는 능력인 것이다. 이렇게 탈북민 청년들은 또래 젊은이들처럼 각자 속한 곳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탈북청년에게 주어진 고난은 공부하고 취업하는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체제, 시스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걸 바꾸고 적응해야 한다. 오랜 기간의 교육공백을 메우는 것도 벅찬데 일상생활부터 문화와 역사까지 부딪히는 모든 것을 내면화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2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차별,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탈북민 청년의 비율은 19.5%, 없다는 응답은 80.5%다. 수치만 본다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19.5%가 무시할 만큼의 비중은 아니다. 19.5% 중에서 복수 응답으로 75%는 차별과 무시를 당한 이유가 '말투, 생활방식, 태도 등 문화적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라고 응답했고, 44%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결국 북한이탈주민은 '한국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적응하는 시간이 꽤 필요하고, 대한민국에 도착해서 대학교 졸업까지 '어느 정도' 정착했음에도 차별과 무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