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원전 관련 예산이 여야 합의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원전에 대한 입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탈원전' 기조를 고수하던 민주당이 방향을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오면서다.
실제 민주당 내 원전 기조가 바뀌고 있을까. 20일 <소리의숲>이 취재한 결과, 민주당 내부에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펴겠다는 큰 방향에는 여전히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별 의원마다 원전에 관한 입장이 다르고, 일부 의원들은 '친원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강한 원전 반대 입장을 보이지도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전날 산자위 예산결산소위원회에서 합의한 대로 2138억 8900만 원 규모의 원전 관련 예산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이는 정부가 제출한 원안보다 1억 원 증액이 된 금액으로, 지난해 민주당이 원전 생태계 정상화 관련 예산을 야당 단독으로 전액 삭감한 것과는 비교되는 결정이다.
"상임위 사정상 원전 예산 적극 삭감 어려웠다"
산자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9일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원전 예산 증액에 대해 여야 협의 과정에서 산자위 역학 구도 상 어쩔 수 없이 합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산자위 소속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의 (원전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상임위 사정 때문에 원전 예산 심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로 예결위로 넘긴 것"이라며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 동의해서 넘긴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난 21대 국회 때는 상반기가 문재인 정부 집권 시기와 맞물려 있었고 당시 산자위원장도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22대 국회로 넘어온 지금은 '친원전' 정책을 펴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처음부터 집권하고 있는 데다 산자위원장도 국민의힘 소속이어서 지난해와는 산자위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야당은) 원전 예산이 과도하다며 삭감하려고 했지만,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선 상임위원장이 방망이를 치지 않는 이상, 사실상 상임위 예산 심사는 하지 못한 채로 정부 원안이 올라가게 돼 있다"고 전했다.
김동아 민주당 의원도 통화에서 "산자위 예산소위 과정상 소위위원장이 (국민의힘인) 강승규 의원이어서 사실상 삭감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거기다 산자위원장도 (국민의힘인) 이철규 의원"이라며 "그래서 산자위 차원에서 적극 삭감은 어려운 것 같고 예결위에서 삭감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예결위서 원전 예산 감액 않고 재생에너지 예산만 추가할 수도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 내에선 원전보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다는 큰 방향에도 여전히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별 의원마다 원전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민주당 내에 친원전 기조가 우세한 건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탈원전 기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분위기도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공감한다는 것이, 예결위에서 원전 예산 삭감을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원전 예산은 그대로 두되 재생에너지 예산 추가를 추진하겠다는 것인지는 모호한 상황이다. 때문에 지난 18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예결위에서 원전 예산이 삭감될지 관심이 모인다.
김동아 의원은 "원전 관련해서 의원들마다 개개인의 생각이 다른 상황"이라며 "저도 원전 자체를 다 없애는 것이 최종적인 입장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국가 전체의 상황을 봤을 때는 실현 가능성 등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어 "민주당은 재생에너지를 좀 더 개발하고 효율화해서 경제적으로도 재생에너지가 원전을 앞서게 하는 것을 큰 방향으로 하고 있다"이라며 "재생에너지에 좀 더 투자를 해서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더 싸게 먹히면 더 이상 이런 논쟁을 할 필요 자체가 줄어드는 것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김성환 의원도 "(민주당 내) 의원마다 입장이 다르고 의견을 모아본 적은 없지만, 현 정부가 과도하게 원전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짜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반대한다"며 "그러니까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고 기왕 만들어 놓은 원전을 잘 관리하면서 점차 줄여 나가는 쪽으로 가는 게 현재 우리 당의 일관된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 정부는 기존에 있는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을 계속 수명 연장하겠다, (또 원전을) 신규로 더 짓겠다고 하고 있어서 이 부분은 적절치 않다고 보는 의원들이 다수"라고 덧붙였다.
탈핵시민행동 "민주당마저 국민 안전 무시?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이런 가운데 시민‧환경사회들은 민주당이 탈원전 기조를 선회해선 안 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이번에 정부의 원전 예산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을 보면서 탈원전 기조에서 완전히 선회한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된다"고 "시민사회가 보기엔 민주당이 (원전 기조에서) 거꾸로 후퇴하고 있다고 보인다. 지금이라도 (원전 예산안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핵시민행동‧원자력안전과미래도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자력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고 촉구했다. 조민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기자회견에서 "체코 원전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탈원전을 말해온 야당이 정부 예산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그간의 진위를 의심하게 한다"며 "재생에너지 활성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시대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는 "현 정부에서 가장 답답한 부분은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몰두하는 것"이라며 "민주당마저 이에 동의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도 "야당이 현 예산안에 동의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리의숲'(https://forv.co.kr)에도 실립니다. ‘소리의숲’은 2024년 9월 문을 연 1인 언론입니다. 소리의숲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더 많은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