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탓에 늦게 물든 단풍이 한창이다. 곳곳에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었다. 도동서원을 지키는 우람한 은행나무는 얼마나 물들었을까.
몇년 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는 도동서원을 찾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는 도동서원은 조선전기 유학자로 동방오현(東方五賢)의 맏어른이신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한 곳으로 소수서원,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5대 서원이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또한 서원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건물 담장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선조 38년(1605), 유림들은 김굉필의 위패를 봉안했고, 1607년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의 '도동(道東)'을 사액 받은 후 숙종 4년(1678), 김굉필 선생의 외증손 정구를 추가 봉안했다.
그후 홍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600여 곳의 서원이 없어질 때에도 살아남았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서원입구에 도착하니 온전히 노랗게 물든 우람한 은행나무가 보인다. 김굉필 나무라고도 불리며 수령이 400년이 넘는 이 은행나무는 한훤당의 외증손 한강 정구 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옆으로 여러 개의 가지를 한껏 뻗어 우람하고 위엄에 찬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서원의 정문은 누각 형태의 수월루다.
도동서원은 바로 앞쪽에 흐르는 낙동강을 품기 위해 특이하게 북향으로 앉아있다. 따라서 전망을 막는 수월루는 건립 당시에는 없었는데 상량문에는 고종 31년(1894년)에 세웠다고 한다.
수월루를 지나 환주문으로 오른다. 도포 자락을 여미고 겨우 오를 수 있는 계단과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문이다. 절병통이 얹힌 삿갓지붕을 이고 있는 환주문은 다른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예쁘고 매력적인 건물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유생들이 묵었던 거인재와 거의재가 있고 보물 제 350호인 넓은 중정당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중정당의 기단은 자연석을 깎아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쌓았다.
경주 불국사에서도 볼 수 있는 이런 기법은 우리 선조의 지혜와 소박함을 드러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양쪽으로 계단을 만들었으며 네 마리의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동입서출(東入西出)의 규칙에 따라 양쪽에 귀여운 다람쥐도 등장한다.
한쪽은 올라가는 다람쥐가, 또 한쪽은 내려가는 다람쥐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다소 지루했던 공부가 끝나고 한쪽에 있는 좁은 계단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유생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서원이 딱딱하고 권위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도동서원에 들어서면 소소하면서도 섬세한 공간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지루한 강학 공간에 보물처럼 숨겨진 장치를 하나하나 찾다 보면 서원 건축의 백미라는 말을 실감하며 선조의 깊은 마음이 보인다. 근처 현풍면에 한훤당고택이 있는데 고택 한쪽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