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양육자로 처음 만났다.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 말고도 50년대 후반생 엄마 밑에서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실, 그리고 뭔가를 분출하고 싶은 내면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지 못하는 다른 양육자에 대해서도 동병상련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장착되는 걸 느끼는데 아무렴 비슷한 정서와 열망을 가진 양육자들의 만남이란, 거칠 것이 없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우리가 공유하는 정서와 열망이란, 각자가 양육되어 온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를 둔 자식들이 그러하듯 부모의 못 다한 꿈을 이룰 것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주입받았다.
친구 같은 혹은 남편 같은 딸의 역할을 기대받으며 부모의 감정을 끌어 안기도 하였다. 누적되어 온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나만의 길을 찾아 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느꼈다. 특히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가 되면서부터는 어떤 단절, 혹은 전환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글쓰기를 통한 치유와 연대
일단 사진 작업을 하면서 글을 쓰는 황예지 작가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글쓰기 모임을 갖기로 했다. 모임의 초반에는 글쓰기 수업이 아니라 심리상담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물의 연속이었다. 글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을 수 있게 하는.
황예지 작가는 각자가 외면하고 있던, 혹은 간과했던, 혹은 내면에 꼭꼭 숨겨두었던 사실과 감정에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스스로 힘을 가지고 바로 설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를 북돋으면서 생업과 양육 틈틈이 글쓰기를 이어갔다. 언젠가 중간 결산과 같은 결과물을 내야지, 생각하면서도 바쁜 일상에 떠밀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독립출판
그러던 와중 시각예술을 하는 팀원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4년 청년인문실험 공모에 응하여 당선이 되었고 80년대생 엄마들의 독립출판을 주제로 지원을 받게 되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책을 내야 했다. 내친 김에 책을 내고 전시도 하기로 했다. 각자 집안 여자들의 역사, 엄마의 죽음,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썼다. 각자의 소재는 달랐지만 결국 각자의 독립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독립의 과정은 결코 원만하거나 부드럽지 않았기에 책의 제목은 <사나운 독립_엄마가 된 80년대생 딸들>이 되었다. 비비언 고닉의 유명한 저서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것 말고는 세 개의 이야기를 포괄할 수 있는 다른 제목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그렇게 되었다.
7월부터 11월까지는 책 만들기와 전시 준비로 달려왔다. 10월의 어느 주말에는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평의 한 키즈펜션에 모였다. 아이들을 마음껏 놀리고 재운 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계획이었고, 그날 우리는 새벽 3시가 되어 잠들 수 있었다.
생업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작업을 하고 온갖 행정일을 처리하는 것은 대단한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병치레들을 치렀지만 온전한 우리의 것을 만든다는 설렘의 약발은 강했다.
독립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 <사나운 독립_엄마가 된 80년대생 딸들>
그렇게 11월 20일, 온라인 판매 형식으로 <사나운 독립_엄마가 된 80년대생 딸들> 이란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독립출판의 형식으로 발간을 했고 ISBN 번호를 받지는 않았지만 엄연한 우리의 결과물이었다.
처음 일을 벌이면서 생각했던 이 작업의 목표 중에는 예술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가 먼저 그 실험대상이었다.
실험의 결과?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높고 빛나보였던 창작의 길은 사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고, 꾸준히 무언가를 지속한다면 그것이 바로 창작이고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한 명 한 명 개별적이고, 그러면서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에 고유한 창작품을 만들면서도 누군가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예술의 고유성이고, 가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책을 딸이나 엄마라는 정체성 또는 역할에 가둘 수 없는 개별적 인간의 독립선언이자 함께 하자는 연대의 손내밈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 손을 잡아준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도서 구매는 인스타그램 @daughtersbecamemothers 를 통해 가능합니다.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