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등법원 내부 직원이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담은 문서 자료를 외부에 유출한 과정이 드러났다. 고소인인 A씨의 요청만으로 법원 직원들이 개인정보를 유출했는데 A씨가 전직 부장판사였다는 신분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전고등법원은 '나의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이장호(64)씨의 진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관련 기사 :
[단독] 법원서 자료 유출, 전직 판사가 낸 증거에 찍힌 '내부용' 문구 https://omn.kr/2akma ).
전직 부장판사 A씨, 감사관실 방문하고 전화 걸어 자료 제공 요청
감사 결과에 따르면 고소인인 A씨는 2022년 10월 19일 대전고등법원 감사관실을 방문해 이장호씨에 대한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감사관실 직원은 당시 감사담당관의 승인을 받아 해당 문서를 A씨에 제공했다. 이씨의 개인정보가 담긴 '내부 감사 문건'이었다.
A씨는 같은 달 25일 다시 감사실 직원에게 전화로 이씨에 대한 판결문 자료를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해당 직원은 감사담당관의 구두 승인만으로 A씨가 요청한 이씨 관련 판결문을 출력해 스캔한 뒤 이메일로 전달했다.
<오마이뉴스>가 이씨를 통해 확인한 한 자료에는 "내부업무 참고 목적 외 사용, 유출금지"라는 표시와 함께 "2022년 10월 25일 오후 3시 45분"라는 시간정보가 찍혀 있었다. A씨는 부장판사로 근무하다가 법원을 떠났고, 현직 변호사 신분인 상태였다. 법원 직원이 특정인인 이씨의 개인정보를 넘겨준 것은 A씨가 대전지방법원의 전직 부장판사였던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감사 결과, 법원 내부에서 A씨에 제공한 판결문은 모두 10건에 달했다. 관련법에는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가 분실, 도난, 유출됐음을 알게 됐을 때 바로 해당 정부 주체에게 알려야 한다'고 돼 있지만 이를 이씨에게 알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씨는 대전고등법원 감사실을 통해 제공받은 내부 감사문건과 판결문을 토대로 2022년 11월 이씨를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법원이 외부인의 고소를 도우려고 특정인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넘겨준 셈이다.
앞서 이씨는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A 전 판사가 재임 당시 자신의 사건을 잘못 판결해 가정이 파탄 났다'면서 실명과 사진을 담아 비난하는 현수막을 설치했다.
개인정보 유출 건과 관련해 대전고등법원은 이씨에게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있었음을 알려드린다"라며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대전고등법원은 현재 관련자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법원 내부직원 3명, 자료유출 관여
이번 개인정보 유출에는 C씨 등 모두 3명이 관련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관련자 중 한 명인 C씨는 이씨가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에 자신의 사건을 판결한 판사들을 실명으로 비난하는 현수막에 불을 질렀던 직원으로 확인됐다. 이씨에 따르면, C씨는 2023년 7월 6일 오전 1시께 법원 앞에 설치한 A씨 등에 대한 비난 현수막에 불을 붙여 손괴했다.
이씨는 지난 2009년에는 대전지방법원이 자신의 재심 사건 기록을 통째로 분실해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자신의 재심 재판기록 열람과 복사를 요구했는데 '행방이 묘연하다'는 답변이 돌아온 것. 대전지방법원과 대전고등법원은 문서 분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관련자들에게 '주의 촉구' 또는 '견책'의 경징계 처분했다. 이씨에게는 기록 분실에 따른 위자료로 300만 원을 지급했다(관련 기사 :
'오심 논란' 1500쪽 판결기록 통째로 사라져 https://omn.kr/b2c ).
한편 이씨는 "관련 판사들이 내 사건에 대해 법을 어겨 오심을 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가정까지 파탄이 나는 피해를 봤다"면서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A씨는 고소장을 통해 "이장호씨가 불리한 판결에 앙심을 품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라며 "이장호씨 관련 소송 과정이나 판결에서 법을 위반해 판결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비방을 해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고소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