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 은행 없었으면 지금쯤 애들 떼어놓고 노역하고 있을 거예요. 생명의 은인이에요"김아무개(32·여)씨는 11일 간절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김씨는 지난해 3월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으로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았다. 홀로 네 아이를 키우며 식당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교통 사고를 내면서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벌금도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은행권 대출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김씨는 "신용에 문제가 있어 은행 대출은 생각도 못 한다"며 "기초생활 수급자다보니 제대로 된 소득도 없고 하다 하다 안 되면 노역할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우연히 언론 보도를 통해 장발장 은행을 알게 됐고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대출받은 70만 원을 오는 5월부터 매월 20일에 7만 원씩, 10개월에 걸쳐 상환할 예정이다.
연간 4만 명 벌금 못 내 노역... 소외 계층 '무담보 무이자' 대출
'장발장 은행'이 소외 계층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빵을 훔치고 19년 징역살이를 해야 했던 '장 발장' 이름을 땄다. 인권연대가 중심이 돼 지난달 25일 탄생한 이 은행은 가난 때문에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을 해야 하는 생계형 범죄자들에게 벌금을 대출해준다. 무담보 무이자다. 벌금형을 선고 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이 한 해 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장발장 은행은 이자놀이를 하지 않고 시민 모금으로 운영된다. 취지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후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기준 성금 5360만 원이 모였고 이 중 1차 대출금으로 650만 원, 2차 대출금으로 2300만 원이 쓰였다. 2차 대출금을 노역 일당 5만 원으로 계산하면 464일 구금에 해당하는 액수다.
호응도 뜨겁다. 김보미 인권연대 간사는 "장발장 은행에 문의 전화가 하루 400~500통씩 온다"며 "모든 인력이 동원돼도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전했다. 또한 한 시중은행에서도 장발장 은행을 후원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장발장 은행은 지난 9일 "신청자 112명 가운데 13명을 2차 대출자로 최종 선정했다"면서 고 그동안 손을 내민 소외 계층들의 사연도 소개했다.
20대 아빠부터 장기 이식 딸 돌보는 엄마까지... 12일 3차 대출자 발표백아무개(27·여)씨는 무고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른 결혼으로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백씨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벌금 액수에 해당하는 300만 원을 도움 받았다. 백씨는 오는 4월부터 매월 25만 원씩 1년에 걸쳐 대출금을 상환하기로 약속했다.
오아무개(47)씨는 자동차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벌금 30만 원을 선고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지역자활센터에 등록해 자활 활동 중이다. 이에 장발장 은행은 벌금에 해당하는 30만 원을 빌려줬다.
이밖에도 26살 젊은 나이에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는 박아무개씨, 장기 이식 수술을 한 딸과 함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정아무개(44·여)씨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선정됐다.
은행장인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을 비롯해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김희수 변호사,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심사위원 9명이 심사했다.
장발장 은행은 11일 제3차 대출심사위원회를 열어 이르면 12일 3차 대출 대상자를 선정해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