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문호 개방? 좌파는 틀렸다<새로운 계급 투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유럽 난민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향해던 난민선이 침몰해 8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비극의 단면에 불과했다. 터키 해변으로 밀려온 시리아의 세살배기 아기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비극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난민 사태와 파리 테러를 겪으면서 유럽은 난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난민을 언제까지 어느 정도 규모로 받을 것인지에 대한 난민 수용 문제부터 전쟁과 테러를 근절하기 위한 적극 대처 주문까지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책 <새로운 계급 투쟁>은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인정받는 슬라보예 지젝의 난민과 테러에 대한 전방위적 사색의 결과물이다. 지젝의 사유는 난민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전복하고 지적 기만의 허울을 꿰뚫을 듯 날카롭다.
그는 난민 사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폭력을 피해 쇄도하는 난민의 물결을 유럽이 전부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주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서 난민의 삶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들은 저임금 노예 노동이나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난민에 더 많이 문호를 개방하자'는 인도주의적 접근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금 세계는 서구 사회처럼 안정적으로 보호받는 '지붕 안' 사람들과 기아와 무차별 폭력에 노출된 '지붕 밖'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지붕 밖'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폭력, 난민의 발생은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계급 분리 현상이다. 지젝이 보기에 유럽의 진보좌파는 문화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라는 비판을 의식한 나머지 유럽의 역사적 유산인 '인류의 해방'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젝은 "단순한 관용을 넘어서서 타인과 진정으로 공존하고자 한다면 이 막다른 상황을 돌파할 유일한 방법은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다시 계급투쟁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세계적 연대'에 대한 관점없는 관용은 윤리적 가면을 쓴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온 마을이 학교가 된다<마을교육공동체란 무엇인가?>, 서용선, 김아영, 김용련 외 지음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을교육공동체란 무엇인가?>는 학교와 마을에서 교육문제를 고민해 온 교사와 마을활동가 등 현장 전문가들이 쓴 책이다. 저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을 집대성하고 현장의 언어로 우리 교육의 미래상을 제시한다.
공교육을 혁신하고 학교가 학교다워지기 위해서라도 '마을교육공동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는 담장을 허물고 학부모, 지역사회는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활발한 소통의 네트워크를 통해 '상생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 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을 중심에 놓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면서 행복한 학교와 교육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
마을교육공동체 실천의 모습은 다양하다. 교복협동조합, 매점협동조합, 수학여행협동조합 등 '학교협동조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저소득층 아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마을 속에서 아이들의 복지를 해결하는 '교육복지'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교육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중간지원조직을 만들고 마을교육공동체를 위한 민관거버넌스의 모범을 구축한 사례도 있다.
오늘날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삶과 배움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컴퓨터가 대체하지 못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그 능력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우리 주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라며 "이것은 아이들의 삶의 장인 마을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삶의 양상이 보다 적극적으로 학교 교육 과정 속으로 들어와야 하고 지역의 문제점들을 함께 고민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조직해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떡볶이집 아줌마도 국회의원이 되는 세상<지구를 구하는 정치책>, 홍세화, 고은광순, 조홍섭, 조효제, 이지문 지음
자하가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공자는 "두 가지가 핵심인데 하나는 속도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라고 했다. 속히 하려고 하면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소수의 이익만을 옹호하면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구의 한계는 무시하고 오로지 빠른 성장만을 추구한 대가로 우리는 생물다양성의 위기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협에 직면했다. 1%의 배만 불리고 있는 자본주의는 인간성을 잃어버렸고 정의는 실종됐다. 격차는 확대되고 소수의 이익만을 옹호한 대가로 다수의 삶은 고통받는다. 결국 정치의 문제다.
<지구를 구하는 정치책>은 홍세화, 고은광순, 조홍섭, 조호제, 이지문 등 시민사회운동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다.
'좋은 정치'가 행복한 세상, 행복한 지구를 만든다. 빵 한 조각을 훔친 대가로 19년 노역형을 선고받았던 장발장처럼 생계 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좋은 정치다.
홍세화는 벌금을 못내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 이야기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의 막장으로 모는 것이 정치인가?'라고 묻는다. 공적 분배 제도를 개선해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뜯어 고치는 것이야말로 행복 사회를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임무다.
기후변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환경전문기자 조홍섭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인류가 큰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한 방식의 경제는 이제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와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 삶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거에 기반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는 '1인 1표'를 내세워 정치적으로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를 갖는다.
정치학자 이지문은 고대 아테네의 '추첨 민주주의' 방식처럼 '제비뽑기'로 국회의원, 지방의원을 선출하자고 제안한다. 가방끈 길고 돈 많은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국회는 늘상 정치싸움이 끊이지 않는 콜로세움 같다.
이지문은 "제비뽑기를 한다면 20대 대학생도, 70대 어르신도, 장애가 있는 이도, 외국인 노동자도,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이도,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 사람도, 그리고 주부도, 떡볶이 장사를 하는 아줌마도, 이렇게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 다른 사람들로 의회가 구성되기 때문에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치적 상상력은 '선거'라는 틀에 가두지 말자는 것이다. 반드시 선거가 아니더라도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